얼어붙은 속헹 - 이주여성 노동자 이야기
- 산재 지정 병원에서 만나는 이주 노동자들 가운데 특히 손가락을 잘린 경우가 많다. 주로 3D 업종에서 일하다 보니 손가락을 잘리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와 같은 원시적인 사고가 잦다. 지난 1970~80년대 생산직에서 일한 내국인 노동자들이 흔히 당한 산재 사고를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다. (21)
- 지난 70~80년대에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야간노동이 흔했다. 밤새워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 시절 많은 여성 노동자가 일한 사업장에 대한 자료를 보면 밤샘 노동을 밥 먹듯이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밤샘 노동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다. 철야 노동하는 자리가 내국인에서 외국인으로 바뀐 것이다. 외국인 가운데서도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젊은이들이 그 자리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대략 130만 명 정도다. 그들은 주로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하는데 노동하는 때가 야간인 경우가 많다. 물론 밤샘 노동은 농장보다는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35)
- 농장주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조선 시대에 지주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 때 많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주 노동자를 노비로 보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주 노동자를 단지 말하는 동물처럼 여기기도 한다. 우리네 밥상에 인권이 얼마나 있는가? 우리가 매일 대하는 밥상은 인권이 있는 밥상인가? 이런 물음을 가져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53)
- 이 농장 노동자들은 한 주당 6일 반을 일한다. 한 달에 이틀 이내로 쉬며 하루 보통 11시간씩 일한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길다. 6시에 일과가 끝난다고 해도 저녁에 비닐하우스를 관리하는 일이 계속 있다. 비닐하우스 온도를 관리하는 일이라든가 지하수를 돌본다든가 전기 시설을 점검하는 작업 등이 수시로 있다. 이 농장 노동자들의 한 해 노동시간은 연 3천 시간이 넘는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이다. 한국의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이 2,100시간 정도이고 서유럽 노동자 한 해 평균 노동시간이 1,300시간 정도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들의 노동시간은 참으로 살인적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말하는 동물로 보지 않는다면 결코 강요할 수 없는 노동이다. 고용주에게 절대 권한을 주는 제도 아래서 이주 노동자들은 이런 노동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강제 출국을 각오하지 않는 한 거역할 수 없다. 이 고강도 노동을 만약 거부하면 당할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 대다수는 그냥 굴종하며 지낸다. (73)
- 지자체들은 전국적으로 이런 불법 가건물을 수십 년 동안 철거하지 않고 방치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불법 가건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구 알선해왔다. 요즘 코리아는 해외에 K팝이니 K 드라마니 K 문화니 하며 요란하게 선전하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 자랑 바로 뒤에는 인간의 기본권도 누릴 수 없는 이주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구 들여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저 자본의 이윤 극대화만 노리고 마구 외국인 노동력을 들여오기에 혈안이 된 게 아닌가 한다. 국가가 자본의 심부름 노릇이나 하면서 말이다. (81)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은근히 스며 있는 차별의식이 있다. 나는 이것을 경제 인종 차별주의라고 칭한다. 이는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거나 피부색이 더 검거나 어두운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의식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동하는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이 차별의식의 대상이 된다. 이 의식이 있는 사람이 직장에서 고용주가 되거나 조금이라도 우월한 지위에 있으면 그 차별의식은 강하게 언행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이 되거나 수당을 아주 쉽게 떼어먹은 짓을 아주 자연스럽게 저지르는 거다. (90)
- 필리핀 출신 여성 노동자 럿(가명)을 만났다. 그녀는 월급명세서를 내게 보여주었다. 명세서를 보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이 낸 세금 항목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표시했다. 명세서에는 소득세와 주민세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금액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주민세를 매달 꼬박꼬박 내는 주민인데 왜 자신에게는 재난 지원금을 주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녀의 주장에 이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취업비자를 갖고 입국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7년째 노동하며 세금을 냈다. 알고 보니 그 주민세 속에는 교육세도 포함되어 있었다. (101)
- 이주 노동자들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소득세, 주민세, 교육세 등 직접세와 간접세 등을 내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재난 지원금 주지 않는 건 국가 범죄라는 생각도 한다. 이주 노동자는 재난 지원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 한 해에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경제에 생산과 소비로 주는 효과가 74조가 넘는다. 그 이주 노동자들은 보통 5년~10년 동안 세금도 낸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이주 노동자들도 내국인과 같이 고통을 당한다. 우리 사회 먹이사슬의 맨 끄트머리에서 기초산업을 떠받들며 고통당한다. (102)
- 폭염 특보가 내린 날, 오전이나 오후에 쉬는 시간 십 분도 안 주고 일을 강요해도 문제 제기조차 못 하는 이주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법과 제도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거나 항의하려면 강제 출국을 각오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소위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실제 불법체류자가 된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알선을 받아 채소농장으로 간 노동자가 살인적인 노동을 견디지 못해 쉬는 시간을 요구하다가 그냥 떠난 것이다. 사업주에게 쉬는 시간을 요구하고 일요일마다 휴일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업장을 임의로 떠났다. 합법적으로 입국한 이주 노동자는 고용주의 동의 없이 일터를 임의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그 노동자는 즉시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139)
- 한편 내가 자주 들르는 경기 북부 채소농장들에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거기는 남자 노동자들보다 여성 노동자들이 더 많다. 주로 동남아에서 온 여성 노동자들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네팔 등에서 온 20~30대 여성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일한다. 한 달에 보통 이틀 정도만 쉬며 하루 11시간 노동한다. 오이나 호박을 수확하는 여름철 한창 바쁠 때는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도 일한다. 농장 한 귀퉁이에 있는 짐승 우리 같은 숙소에 기거하고 세끼 밥을 간신히 챙겨 먹으며 그렇게 일한다. 그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최저임금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152)
- 우리 사회는 제 필요에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1990년대 초부터 그랬다. 이제까지는 그들을 단기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듯 했다. 5~10년 쓰고 버리듯 했다. 그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제는 정책을 바꾸었으면 한다. 포카(가명)처럼 성실하게 5년 이상 일하고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의지와 준비가 된 사람들은 정착하도록 받아들여 더불어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초저출산 고령사가 된 마당에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62)
- 매년 12월 18일은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이다. 공교롭게도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 이틀 뒤에 한파 속에 비닐하우스에서 이주 노동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고장 난 건 난방 장치만이 아니다. 2004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고용허가제는 올해로 17년이 지났지만, 이주 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고장상태이고 이에 따라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3년 넘게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 폭우로 수재민이 된 이주 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사망 이주 노동자 등 피해는 더 악화하고 있다. (174)
- 대책위의 끈질긴 노력 끝에 결국 속행 사건은 산재 승인을 받았다. 2022년 5월, 그러니까 사고 난 지 1년 반 만에 근로복지공단(노동부)은 속헹 씨 사망사건에 대해 산재 승인을 했다. 승인한 사유에서 중요한 점은 그녀의 죽음과 그녀의 노동환경과의 연관성을 인정한 점이다. 특히 주거환경과의 인과성을 인정한 점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속헹 씨가 산재로 동사했음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그녀의 언니와 어머니 등 유가족은 산재 승인 사실을 전달받은 뒤 대책위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192)
얼어붙은 속헹/김달성/밥북 20231103 224쪽 16,000원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인 눈 속헹(Nuon Sokkheng, 31)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2020년 12월 20일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난방시설이 가동되지 않았고, 농장주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동료 노동자들은 다른 농장 기숙사로 피했지만 속헹은 그냥 지내보기로 하고 머물렀다. 포천 지역은 이삼일 전부터 한파가 지속되고 있었다. 동료들이 발견했을 당시 속헹은 얼음 같은 방에 쓰러져 있었다. 매년 12월 18일은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이다. 공교롭게도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 이틀 뒤에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주 노동자는 한 달에 이틀 쉬며 하루에 11시간을 노동한다. 한국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이 2,100시간 정도인데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는 연 3,000시간이 넘는다. 고강도 노동을 하며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165만 원을 받는다. 농장주가 기숙사비로 25만 원을 잘라가고 남은 돈은 140만 원이다. 기숙사라 불리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시설은 열악하다. 속헹이 기거하던 숙소는 검은 비닐하우스 안에 낡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불법 가건물이다. 긴 가건물을 칸막이로 나눠 작은 방을 만들었다. 방 안에는 주방과 세면장이 있다. 옆방의 화장실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춥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거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의식이 있다. 저자는 이를 경제 인종 차별주의라고 한다. 이런 차별 의식은 이주 노동자에게 더 강하게 표출된다. 월급을 현금으로 주며 근무시간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사업장을 임의로 떠나지 못하는 것을 악용하고 산재는커녕 재해로 인한 부상 치료도 변변하게 해주지 않는다. 국가는 이를 방치하거나 외면한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 지원금은 직접세와 간접세는 물론 건강보험료를 성실히 내는 이주 노동자들을 처음부터 고려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우리가 필요해서 불러들인 외국인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행태를 반복한다. K-○○을 자랑할 때 인간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사람이 얼어 죽는 사회는 불법에 동조하는 야만의 사회이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최저임금과 최저인권을 지키며 사람답게 더불어 살자.
이주 노동자는 한 달에 이틀 쉬며 하루에 11시간을 노동한다. 한국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이 2,100시간 정도인데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는 연 3,000시간이 넘는다. 고강도 노동을 하며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165만 원을 받는다. 농장주가 기숙사비로 25만 원을 잘라가고 남은 돈은 140만 원이다. 기숙사라 불리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시설은 열악하다. 속헹이 기거하던 숙소는 검은 비닐하우스 안에 낡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불법 가건물이다. 긴 가건물을 칸막이로 나눠 작은 방을 만들었다. 방 안에는 주방과 세면장이 있다. 옆방의 화장실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춥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거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의식이 있다. 저자는 이를 경제 인종 차별주의라고 한다. 이런 차별 의식은 이주 노동자에게 더 강하게 표출된다. 월급을 현금으로 주며 근무시간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사업장을 임의로 떠나지 못하는 것을 악용하고 산재는커녕 재해로 인한 부상 치료도 변변하게 해주지 않는다. 국가는 이를 방치하거나 외면한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 지원금은 직접세와 간접세는 물론 건강보험료를 성실히 내는 이주 노동자들을 처음부터 고려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우리가 필요해서 불러들인 외국인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행태를 반복한다. K-○○을 자랑할 때 인간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사람이 얼어 죽는 사회는 불법에 동조하는 야만의 사회이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최저임금과 최저인권을 지키며 사람답게 더불어 살자.
덧1. 오탈자
59쪽 20행 성격의 뿌리이자 → 성경의 뿌리이자
덧2. 지난 2026년 1월 29일 대법원은 속헹씨의 유족에게 한국 정부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속헹씨가 사망한 지 1866일만이다.
덧3. 20260325
3월 10일, 경기도 이천의 한 자갈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대형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23세 이주노동자 고(故) 응우옌 반 뚜안 씨는 24일 베트남 고향 땅에 묻혔다. 사측은 산재 사망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있다.
덧4. 20260720
일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를 먹던 기억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어느 이주노동자의 답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