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노트 - 만화로 그린 치매일기

제로노트 - 만화로 그린 치매일기
  • 살면서 많은 일들은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맞이한 일들을 허둥지둥 수습하며 살아간다. 그게 인생이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급하게 밀고 들어오는 업무가 그렇고, 뜻밖의 사고가 그렇고, 만남과 헤어짐이 그렇고, 누군가의 부고가 그렇고, 내가 겪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그렇다. (5)
  • 수학적으로 의미가 없었다가 무한한 존재로 의미를 탈바꿈한 '제로'처럼 아버지 역시도 기억이 사라져 원점으로 돌아오는 모습이지만, 만화의 형태로 기록하여 간직하고 읽히는 동안 무한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8)
  • 나와 다른 속도로 흘러가던 아버지의 시간은 당신의 생각이나 행동도 변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한 적도 없이 아버지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가는 것인지, 되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13)
  • 치매가 진행된 이후, 평소에 지니고 있던 습관이나 버릇이 더 견고해져서 난감한 경우가 참 많다. (27)
  • 수면 시간이 원래부터 길지 않았지만, 치매 이후로는 수면 패턴까지 불규칙해졌다. (63)
  • 잘 해오던 행동도, 어느 날부터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더러 있다. 특별히 조건이나 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늘 하던 행동이 갑작스럽게 바뀌게 되면 이유를 몰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96)
  • 참지 못하고 조급해하는 아버지를 보면, 아버지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보다 더 빠르게 흐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117)
  •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토록 선명한데, 아버지는 조금씩 자신을 지우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간속에서 아버지는 아직 할 일이 더 남아 있는 듯하다. (119)
  • 치매 환자들의 고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계속 관찰해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고집과 망각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듯하다. 고집을 피우는 것인지, 정말 잊어버려서 그런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을 때가 난감하다. (144)
  •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지워진다는 게 무엇인지 눈으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머릿속에선 라면 끓이는 법이 지워졌고 가스불 켜는 벙이 지워졌고 전등 스위치 사용법이 지워졌고 지퍼 닫는 법이 지워졌고 옷 입는 법이 지워졌고 휴대폰 사용법이 지워졌고 TV 리모콘 사용법이 지워졌고 나도 지워질 것이다. (149)
  • 영화 〈테넷〉에서 인버전(시간의 흐름이 거꾸로 흐르는 것)된 것처럼 치매 역시 시간이 거꾸로 간다. 우리는 아기에게 설명한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 화내지 않는다. 치매 환자에게도 아기를 대하듯 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대화가 가능한 치매 노인을 마주하면 그 다짐은 자꾸만 잊힌다. 내 마음의 평정을 먼저 찾아야 한다. (194)
  • 고생하셨어요. 이제 쉬세요... (203)

제로노트/김범석/아침달 20221026 208쪽 16,000원

기억이 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치매일기입니다. 김범석 작가는 @zziziree로 활동하며 재치 있는 만평을 그립니다. 치매가 심해질수록 좌절도 더 커지므로 내 마음의 평정을 먼저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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