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무현 정부는 여러 개혁을 시도하다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실패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로써 촛불시민을 비롯한 지지자들에게 허탈을 안겼을 뿐 아니라, 박근혜 탄핵 이후 쓰러졌던 국민의힘 세력을 완벽하게 부활시켜 정치 경험이 일천한 검찰총장 윤석열을 곧바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또한 사회경제정책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화 이후의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실적이 없는 정부다. '공정'은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구호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등은 모두 다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회의적이다. (...) 또한 국민들이 피 흘려 얻은 권력, 촛불시민이 위임해준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민주주의 확대와 불평등 극복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사회경제적 사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촛불 이후 다 죽어가던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준 일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5)
- 저출산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라 저출산이다. (24)
- 정치적 민주화, 촛불시위 이후 문재인의 등장이 불러온 희망과 기대가 어쩌다 좌절과 환멸로 바뀐 것일까? 민주진보를 표방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왜 '좋은 사회'의 길을 열지 못했는가? 왜 우리가 이루었다는 민주화와 선진화는 나에게 일상의 민주화와 삶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가? 한국이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넘어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바로 지금 한국인에게 던져진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다. (35)
- 성장주의, 경제만능과 물질주의는 지금도 한국인의 일상과 정신을 지배한다. 우리가 이것을 한국인의 일반 가치나 태도에 따른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 개발주의의 오랜 지속성, 분단, 반공 체제, 외환위기 이후 미국형 시장 질서 확대와 취약한 사회 안전망 등을 포함하는 정치경제적 현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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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에 필요한 경제 민주주의, 자유주의적 개혁의 시도는 미국과 IMF가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한 신자유주의적 압력에 흡수되고 굴절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지금까지도 시장주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특권・독점 영역과 시장주의가 적나라하게 작동하는 영역으로 완전히 이분화되어 있다. 금융 기관 설립, 주택 건설을 위한 토지 수용과 개발, 학교 교육 내용과 행정 등 시장 원리가 적용되어야 할 영역은 국가의 통제가 유지되고 민간의 개입이 차단되었다. 반대로 국가 혹은 시장이 개입해야 할 주거, 교육, 노동의 재생산 영역은 더욱 적나라한 시장 원칙이 지배한다. (229)
-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기에 동원할 수 있었던 막강한 정치 자본이나 여론의 높은 지지는 중도 보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해 겨우 집권한 앞의 두 민주당 정부와 완전히 달랐다. 만연한 불평등 · 불공정 · 시민 주권 박탈에 분노한 시민들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원한 것이 아니라 제도 개혁을 포함하여 과감한 사회경제적 개혁 조치를 취해도 좋다는 신호와 지지를 보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주인',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라는 구호를 내걸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노골적 친기업 정책에서 벗어나려 했다. 최저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소득 주도 성장을 통해 불평등 극복을 향한 의지를 보였으나, 그럼에도 개혁의 방향은 대체로 중도에 그치고 강도도 약했다. (236)
- 문재인 정부에서 '공정'은 절차적 공정 혹은 합리적 경쟁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김대중 정부 이후의 능력주의 담론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문 모음 『완전히 새로운 시작』에는 과연 촛불 이후 한국이라는 선박의 출항지가 어디이며 한국 사회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도착해야 할 항구는 어디인지가 나오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졌던 '구시대의 막내' 정도의 인식도 찾기 어렵다. (237)
- 집권 민주당과 대통령은 미약한 시민사회, 특히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노동자 세력에 의존하기보다는 결국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중산층의 이익과 관심에 편승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래서 노동과 지역 시민사회의 지원 등을 통한 사회력 강화 전략이 체계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것의 최대 피해자는 앞에서 본 것처럼 비정규직 하층 노동자, 자살로 몰리는 청소년, 그리고 무주택자나 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세입자들이다. 이들을 대변할 정치 세력과 사회 세력은 없거나 아주 미약하다. 그래서 이들은 망루나 크레인에 올라가거나, 철창 속에 몸을 가두는 방식의 자해적 저항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국민과 정당, 언론, 법원에 호소한다. 또한 이들의 죽음과 자살 행렬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계속된다. (289)
-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는 '이중 사회', '두 국민'이 형성되었다. 그 결과 한쪽에서는 거의 1970년대와 유사한 열악한 노동 조건, 장시간 노동에 여전히 시달리지만 최상층 자본가, 상층 화이트칼라, 전문직, 서울 강남 지역의 주민들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과 주거와 문화 생활을 누린다. (312)
- 김대중 대통령의 지식 정보 강국이나 경제 제일주의 담론은 개발주의 의식의 반영이며, 노무현 대통령의 '2만 달러 시대' 선포와 "농업도 시장 바깥에 머물 수 없다"는 발언은 그가 개발주의, 성장주의, 시장주의 지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 성장 담론 역시 개발주의 헤게모니를 인정한 상태에서 나왔다. 이들은 생각과 가치관, 문제의식과 전문성 모두 개발주의와 시장주의를 지향했다. (326)
- 지금의 자살률은 역설적으로 한국식 경제 성장의 부산물이다. 한국은 소득 상승이 자살 증가를 동반한 참으로 역설적 사례이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는 소득 증가가 자살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오직 미국과 2000년 이후의 한국에서만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경제 성장을 통한 소득 상승이 사회 지표를 자동으로 개선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며, 삶의 질 확보에는 소득 분배의 균등성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한국의 성장을 '자살 친화적 성장'이라고까지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장주의의 관성에 사로잡혀 전환기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50)
- 한국은 안보 국가, 개발 국가, 신자유주의 국가의 틀을 벗어나 평화 국가, 복지 국가, 생명·안전 국가로 동시에 나아가야 한다.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국가로서는 우선 평화 국가로의 전환이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는 복지 국가로의 전환이 그리고 세계의 선진국이라는 위치에서는 생태·안전 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364)
- 한국 제도 정당들의 스펙트럼이 오른쪽으로 치우친 구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 민주주의와 녹색, 젠더, 평화의 가치를 표방하는 여러 진보 정당이 정치권에서 최소한 교섭 단체 정도의 의석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정치 스펙트럼의 변화는 선거법 개혁 같은 정치 개혁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와 같은 5년 단임 대통령제, 승자 독식의 단순 다수제 소선거구제, 지역주의, 거대 정당의 국고 보조금 독식이 유지되는 한 개혁 진보 세력의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사 문재인 정부처럼 개혁 성향의 대통령이 대중의 힘을 얻어 다시 당선되거나 민주당이 의회의 180석을 차지하더라도 이들은 총선이나 다음 대선을 앞두고는 결국 정치 공학에 치중하여 정책을 등한시할 것이다. (370)
- 우리가 추구할 대안 정치체는 사회적 민주주의 혹은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이다. 선거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노동자와 여성. 소수자와 이주민이 모두 참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상품화된 질서와 인간관계를 넘어서는 공감, 생명, 그리고 연대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생명이 지속 가능한 사회와 정치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디지털화와 자동화로 노동의 종말이 머지않다고 하지만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노동이나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삶이 부패한다. 경제 활동과 노동의 기본 목표는 생명 유지인데, 그것을 인간을 도구화하거나 다른 생명을 담보하거나 지구의 모든 생명체의 활력을 앗아가는 방식으로 획득하는 현재의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382)
-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과 문명 사회의 발전을 맞바꿨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국민의 고통과 자신의 권력을 맞바꿨다.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다. 오늘의 집권 검찰 세력은 어제의 군부와 국정원의 후예이다. 이들이 한국이 정상 국가, 지속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는 길의 마지막 걸림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85)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김동춘/사계절 20221205 424쪽 20,000원
"다음 대선에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힘입어 민주당이 다시 집권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끄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다. 촛불시위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정치적 자본을 갖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심지어 21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 180석을 얻은 뒤에도 개혁을 미적미적했다. 이를 본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민주당이 움직일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검찰과 언론 탓만 할 텐가?(6)"
문재인은 촛불시민이 위임해준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시도하다 실패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사고 보고서입니다.
"개발 독재 30년이 끝나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더 지났다. 시장이 권능이 된 한국에서 정치는 여전히 성장의 도구일 뿐이다. 국민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는 세 번의 민주정부를 거치는 동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은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과 문명 사회의 발전을 맞바꿨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국민의 고통과 자신의 권력을 맞바꿨다.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다. 오늘의 집권 검찰 세력은 어제의 군부와 국정원의 후예이다. 이들이 한국이 정상 국가, 지속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는 길의 마지막 걸림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385)"
고통에 응답하지 않았던 정치와 이별할 때입니다. 누가 최악인지는 자명해졌습니다. 이제는 최선에 투표하자고요.
왼쪽으로 조금만 더 왼쪽으로 움직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