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 그전까지 나는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관계를 부모자식 같은 혈연과 비슷하게 여기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물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동물을 인격화하는 것이다. 이름을 가진 동물과 함께 살게 되자 인간이든 아니든 가족 공동체에 소속된 존재에게는 그 역할에 걸맞은 대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의 역할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는 점에서, 또 보호자와 평생 종속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사람이 반려동물에게 건네는 말은 자연스럽게 부모-아이의 언어가 된다. (27)
  • 특정한 종의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더라도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취향과 아무 상관없다. 씽어가 비유했듯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을 유색인종 애호가라 부르지 않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을 여성 애호가라 부르지 않는다면, 동물의 고통에 반대하는 사람을 동물 애호가라고 부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50)
  • 사람들은 이곳을 강아지 공장puppy mill이라 부른다.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 번식장에서는 강아지를 생산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은 기계지만 번식장에서 강아지를 찍어내는 것은 모성을 가진 엄마 개다. 생명을 다룬다고 해서 여기가 공장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엄마아빠 개는 기계보다 나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65)
  • 누군가는 동물 활동가면 번식장을 없애라고 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 하지만 번식장은 없어지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유기견을 입양하지도 않아. 앞으로도 사람들은 품종견을, 새끼 강아지를 갖고 싶어할 거야. 그러면 번식장의 동물복지를 보장하는 쪽으로 가야지 무조건 없애라고만 하면 개들이 받는 고통은 어쩔 건데? (92)
  • 우리나라에서 강아지를 판매하는 일반적인 경로는 번식장경매장-판매처(애견숍, 동물병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000여개의 번식장이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훨씬 많은 3,000여곳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어쨌든 신고된 번식장은 188개다. 농축산부의 통계를 따르더라도 전체의 약 80퍼센트가, 동물보호단체의 통계를 따른다면 약 94퍼센트가 불법 번식장인 셈이다. (95)
  • 훈련사라는 사람, 동물 애호가라는 사람, 개를 입양 보내는 사람, 개를 입양하는 사람, 개를 오래 키웠다는 사람, 그런 사람들조차 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대부분은 자기 생각, 자기 감정에 따라 개들을 일관성 없이 막 키워요. 그러다 개가 문제 행동을 하면 자기가 잘못 키운 줄은 모르고 개 탓하면서 갖다버려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 반려동물 문화의 현주소예요. 유기견 문제를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생기는 거냐고 물으면 난감해요. 개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는걸요. (116)
  • 어떤 번식업자들은 더 작은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적용해요. 엄마 개 아빠 개 교배해서 딸이 나오면 아빠랑 딸이랑 교배하고, 극 근친교배로 3대만 내려가면 사이즈가 거의 70퍼센트까지 줄어요. 이만하던 몰티즈가 요만해져요. (그녀는 양손을 50센티미터 가량 벌렸다가 30센티미터 정도로 모았다.) 이렇게 태어난 개는 열성인자가 결합되어서 온갖 유전병에 시달리게 돼요. 그럼 사이즈만 보고 귀엽다고 샀던 사람은 아픈 개 뒤치다꺼리하기 싫어서 갖다 버리겠죠? (119)
  • 입소한 유기동물이 살아서 보호소를 나갈 확률은 50퍼센트 정도다. 원 주인도 찾지 않고 새로운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은 나머지 동물은 보호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20퍼센트는 안락사, 22.7퍼센트는 자연사다(2016년). 많은 사람들이 보호소가 안락사를 얼마나 시키는지에는 주목하지만 자연사 비율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호소에 들어간 동물의 자연사란 신체가 노쇠하여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상태를 뜻하는 언어가 아니다. 그저 '안락사가 아닌 죽음'을 의미하는 언어다. (139)
  •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용 개농장이 있는 나라다.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시스템을 통해 식용 개를 조직적으로 사육하고 유통한다. 다른 개식용 나라의 개들이 잡힌 순간부터 수난을 겪는다면 한국 개농장 개들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의 연속이다. 내가 만난 개농장 주인 김씨처럼 모든 개농장이 모견을 두고 교배를 시킨다. 모견은 출산 능력이 있는 동안은 죽음을 면하지만 새끼들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지켜보며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물론 모견도 출산 능력이 떨어지면 도살당한다. (190)
  • 어쩌면 개식용 문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동물학대나 환경오염이 아니라) 오직 이것,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이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학대당하는 소, 돼지, 닭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동물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 때문인 것처럼. (196)
  • '사실'이 항상 '진리'는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될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 남존여비사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오늘날의 여권 운동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실을 당위로 착각하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불과하다. 사실 자체는 도덕적 영역에 있지 않고 어떤 관습의 존속과 폐지를 결정하는 일과도 무관하다. 관습적 사고방식으로만 바라보면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은 존재도 될 수 없을 것이다. (233)
  • '개 한마리 죽었다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에 대해서도 상실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다. 상실에서 중요한 것은 동물이냐 사람이냐가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259)
  •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구해봤자 한해 8만마리 이상이 버려지는데 무슨 수로 다 살리겠어요. 그래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싸우는 건 번식업자, 육견업자, 동물학대자 같은 개인이 아니라 바로 이 시스템, 생명을 싸구려 물건 취급해온 이 사회의 시스템이에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이십대에도, 유기동물 구조 활동을 시작한 사십대에도, 그리고 오십대가 된 지금도, 내 목표는 똑같아요. 약자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 나는 이 '더불어'라는 말이, '함께한다'는 뜻이 참 좋아. (273)
  •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인권 수준이 높고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이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인권과 동물권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관관계다. (281)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창비 20180413 316쪽 15,000원

사람이 헬조선이라고 외치는 나라에 동물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죽어가는 개(소, 돼지, 닭 등등)를 지켜보는 활동가는 "다음 생에 강아지로 다시 태어난다면 헬조선에 아닌 나라에 태어나라"고 한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동물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크게 새겨야 한다. 뭐라도 행동하면 그만큼 세상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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