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 현재 대한민국에 상호 등록된 출판사가 약 9만 8천여 개다. 그러니까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름이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이름 짓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26)
- 평행하는 선들은 결국 만난다. 마름모의 슬로건은 "평행하는 선들은 결국 만난다"가 되었다. (...) 나는 이렇게 뜬금없는 출판사 이름에 말도 안 되는 슬로건을 갖다 붙여놓은 마름모 출판사의 대표다. 평행하는 선들은 만나지 않지만, 마름모의 세계관 안에선 만나게 된다. 서로 팽팽하게 평행선을 달리던 대결 구도들이 마름모의 세계관 안에서는 합의점을 찾게 된다. 이것은 나의 고급 유머이자 도도한 아이러니의 발현이다! (28)
- 인맥이니 사람 관리니 하는 말들이 있지만, 의식적으로 그런 '비즈니스 마인드'를 장착해본 적은 없다. 다만 내가 경험으로 배운 '처세술'이 하나 있다면, '진심'이다. 고마운 일에는 고맙다고 하고, 죄송한 일에는 죄송하다고 한다. 반면 죄송하지 않은 일에는 절대 죄송하다는 말을 남발하지 않는다. (47)
- 모종의 위계가 있는 인적 네트워크. 그곳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이른바 '사람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일이었다. 내가 혼자 일하는 작업실(우리 집)엔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와 인쇄소 부장님과 여러 작가님들과의 소통이 있지만 '정치'가 없다. 세상 평화로운 곳이 나의 작업실이다. 위계와 정치가 빠져나간 자리에,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에너지가 들어찼다. (102)
- 출판이 어려운 것은 무조건 '잘 팔리는' 책으로만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아니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라도 이름을 남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두가지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싶다. 이건 나만의 포부가 아니라 많은 출판인들의 희망일 것이다. 우리는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 (113)
- 펑펑 울었다는 그 작가님처럼 나도 오늘 울었다. 이젠 편집 일이 쉬워졌다고 말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용감하고 무식한 말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어쩌면 타성에 젖은 것이거나 일종의 슬럼프에 빠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깨닫게 되는 데 한 명의 작가를 잃었다. 혹독한, 혹독한 날이다. (117)
- 책은 '좋은 물건'이어야 한다. 팔리는 책을 찾다가 망할 수 있다. '좋은' 책을 찾다가 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확률은? 차라리 좋은 책을 좇자. 그러면 망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이 한낮 자본주의의 무의미한 놀음, 심지어 나무와 사회에 유해하기까지 한 짓이 되었다는 허탈감,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는 있지 않을까. 설령 망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존감까지 잃지는 않을 것이다. (135)
- 그런 상상을 한다. 모든 편집자가 적어도 한 번은 사장님이 제안하는 연봉을 거절해보면 어떨까? 그런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올려주면 좋고 아님 말고 말이다. 그러면 최소한 '너 말고도 쓸 만한 사람은 널렸어'라고 생각하는 사장님들에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까? 우리는 어쪄면 회사에 없으면 아쉬운 인재일지도 모른다. 아아, 이제 나도 사장인데, 이러다가 사장님들한테 몰매를 맞겠지? 하지만 나는 괜찮다. 나는 평생 1인출판사 사장만 할 거니까. (181)
- 나는 작가가 글을 쓸 때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행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되도록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원고를 썼으면 좋겠다. 내가 작가에게 바라는 것은 그게 다이다. (205)
편집자의 사생활/고우리/미디어샘 20230407 248쪽 16,000원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 해본 장르가 없고 노는 게 제일 좋은 탱자탱자 편집자가 1인 출판사 마름모를 차렸습니다. 평행하는 선들은 결국 만난다. 마름모 출판사의 슬로건입니다. 10만여 개의 출판사가 다 흥할 수는 없겠지만, 있어빌리티로 무장하고 10층 빌딩을 올려 작가에게 돈을 많이 뿌리는 편집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동네 공공도서관을 만 개 지어서 책을 내면 만 부는 기본으로 구매하는 사회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동네 공공도서관을 만 개 지어서 책을 내면 만 부는 기본으로 구매하는 사회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