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감히 '밥을 먹는 자'라고 답하고자 한다. 불로 밥을 해 먹으면서 인간은 진화를 거듭해 왔다. 먹어야만 살아남는 숙명이야 짐승이나 사람 모두 매한가지이지만, 인간은 생존과 존엄, 그 모두를 갖추어 먹어야 하는 식사의 존재다. 먹이가 아닌 밥을 먹기 때문에 인간의 삶으로 나아온 것이며, 밥을 통해 사랑과 질투를 느끼고 협력과 경쟁을 배우며, 사람의 꼴을 갖추며 살아왔다. 그러니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밥 먹을 자격은 갖추고 사는지를 묻는 매서운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 질문 앞에서 서성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는 밥에 과연 인간성이 깃들어 있는지를 곱씹어 보면 끝내 미궁 속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자연 모두가 상처 받은 밥상을 무람없이 받아 들고 입만 흥겹고 배만 두둑해진 것은 아닐까. (7)
  • 식사를 갖추기 어려운 이들이 고립된 식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역량이다. (17)
  • 인간이란 실체를 정의하자면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의 총체이다. 음식은 오로지 물리적 맛과 영양, 칼로리의 총합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의 모든 음식에는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자연의 변천까지 망라되어 있고, 여기에 개인의 기억과 사연까지 깃들어 있다. 포도가 보통의 과일이 아니라 어느 한 여인과 그 가족들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그 무엇이었던 것처럼. 하여 오늘 우리의 입으로 쓸려 들어가는 지상의 모든 음식들이 무겁고 복잡하며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4)
  • 다시 인간의 식사를 생각한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신체와 영혼의 칼로리를 채우는 것. 그것이 엄연한 식사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은 5천원 안짝으로 오로지 열량을 좇느라 허기진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편의점에나 가라 하고, 청년이 되어서는 돈이 모자라 스스로 편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27)
  • 어쩌면 오늘도 학교급식 메뉴는 '사골 곰탕'이다. 누군가의 '고기와 뼈를 우려내는' 사골곰탕 말이다. 채식 급식 선택제. 그 뜻이 아무리 정당하고 옳더라도 고기 대신 사람을 갈아 넣는 일이어서야 되겠는가. (46)
  •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미끄러지듯 오늘도 쇼핑을 한다. 주문한 물건은 잘 도착하지만, 현관 앞에 택배 박스를 두고 가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차세대 택배 기사로 불리는 드론이 놓고 간 느낌이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냉동물류센터의 대형 화재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로켓배송을 하던 쿠팡맨이 계단에 쓰러져 목숨을 잃기도 한다. 온라인은 평화롭지만 실제의 오프라인 세계는 지옥일 때가 있다. 어젯밤 늦게 시킨 물품이 새벽녘 현관 앞에 놓여 있다면 사람이 다녀갔다는 뜻이다. 다만 그들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을 뿐이다. (95)
  • 한국에서 가장 혹독한 직업군은 자영업자들이다. 700만명 정도로 보지만, 부부가 함께 하거나 동료들과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들 전체의 생계가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구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들은 오너가 아니라 실상은 스스로의 봉급을 만들어 내야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자영업이 많은 나라의 특징은 공공 부문의 일자리가 취약하고 고용안정성이 아주 낮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영업은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너도나도 장사에 뛰어들어 생계 수준 이하의 수익을 내거나 만성 적자이다. (110)
  • 지난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겨우 국회를 통과했고 2022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원안에서 후퇴하여 결국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적용을 3년간 유예하는 데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이 법에 해당하지 않는다. 5인 미만의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노동조건이 열악해 다치고 죽는 일이 더 많건만, 이 중대 사안이 빠져 버렸다. 이 법이 제정되면 기업들이 망한다는 반발 때문이었다. 하나 이는 그간 사람 잡아 가며 기업을 운영했다는 자백과 다름 아니다. (134)
  • 소비자 물가 품목에는 농수축산물과 식음료, 그리고 공공요금과 각종 서비스 요금이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 농산물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토록 낮다며 '동네 바보' 취급하다가 왜 명절 때만 되면 17대 1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일진'이 되어 있을까? 아무리 올라 봐라. 배춧값이 무섭나? 애들 학원비가 무섭지. 돼지고기 값이 무섭나? 2년 만에 오른 전세비 6천만원이 나는 제일 무섭다. (168)
  • 음식에 대한 과도한 정보로 먹기도 전에 질려 버리는 세상이지만, 음식의 근간인 농지 문제는 내 삶과 멀기만 하다. 누가 농사를 짓든 그저 싸고 맛있고 양만 많았으면 좋겠다는 세상이다. 하지만 소작농이란 말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부재지주들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 농민이 절반 이상이다. 강남이나 분당처럼 논밭 밀어내고 언젠가는 한방이 터지길 기다리는 부재지주들에게 농업직불금도 흘러들어가는 판이다. 그런데 그나마 힘없는 경자유전의 원칙마저 싹둑 잘라 낸다면 우리의 밥은 어찌 될까. (207)
  • 농촌에서 농사만 지어서 먹고살기 힘들다. 오래전부터 '향토 축제'란 이름으로 축제를 부추긴 이유는 뭐라도 해 보란 뜻이었다. 나비도 길러서 날리고 산천어도 길러 얼음 강물에 풀 수밖에 없던 속사정이 풀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디에서든 또 잡고 먹고 할 것이다. (250)
  • 세월호의 추모공원은 안산 시내 화랑공원에 조성될 예정이다. 아직은 예정이어서 여러 변수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간을 납골당으로 만드는 일이라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뼈 한 조각 묻지 않는 납골당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테마파크라 이름 짓는 것만큼 졸렬하다. 죽음을 왜 치워 버리려 하는가. 죽음은 쓰레기가 아니다. 죽음이 죄인가. 죽음이 죄가 아니라, 무고한 죽음을 일으키고 진실을 덮어 버리는 자들이 죄인이다. 가해자의 여죄를 제대로 따져 묻지 않고 진실 속에 묻어 버린 결과가 지금도 반복되는 황망한 죽음들의 실체이다. 일터에서 배움터에서 죽은 이들을 애써 기억하며 애도를 보낸다. 부디 '고히 잠드소서'. (270)
  • '농자천하지대본' 같은 말들은 이명처럼 귀에서 뭉개지곤 했다. 내게는 그저 '농자천한자'로 들렸다. 농사는 천한 자들이 짓는 일이었다. '밥은 하늘'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러했나. 시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귀한 일은 비싼 급료를 받는 일이고, 헐값을 받는 일은 천한 일일뿐이다. 농업이 그렇고 배달 일이 그렇다. 귀한 일이었다면 자식에게 물려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공부를 해서 농사는 짓지 말고 살기를 간절히 바랐고, 나는 그 바람만큼은 충실하게 따랐다. (273)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정은정/한티재 20211018 280쪽 15,000원

저자는 "혹여 지나가다 누군가라도 이 책을 들춰 보다 세상의 모든 먹거리는 농촌과 사람이 촘촘히 엮여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합니다. "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 차갑고 서러운 타인의 밥상을 살펴보는 일"이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일 겁니다. "식사를 갖추기 어려운 이들이 고립된 식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역량"이라면 우리는 아직 멀었습니다. "사람이 맞느냐?"라며 죽비를 내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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