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과 마법사, 여성이 바꾼 운명은 역사가 된다
역사책에 딱 한 줄로 기록되고 싶은 아버지가 있었다. 왕의 형으로 태어난 아버지 영유는 송곳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뚫고 나올 정도로 날카로운 송곳이었지만 그런 적은 없었다.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스스로 정한 운명이었다. 영윤해는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싫었다. 윤해도 주머니에 갇혀 사는 송곳이고 칼날이고 창이었다. 한 줄보다 더 길게 기록되면 죽는 운명이었다.
칼끝을 돌려야 반역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 있기만 해도 반역이 되는 사람이 있다. 윤해가 그렇다. 운명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한 윤해를 북쪽으로 밀어냈다. 아비의 딸로 태어났다는 첫 번째 기록을 넘은 두 번째 기록이었다. 궁지에서 살아남은 윤해는 왕국 최북단으로 유배됐다. 변방의 초원에서 기병 달낙현을 만난 것도 운명이었다.
달낙현은 자기가 보낸 서신보다 먼저 도착하는 기병이다. 그는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를 객사 안으로 들인 사람은 윤해가 처음이었다. 덕분에 돌웃집 바닥이 뜨끈뜨끈한 것도 난생 처음 알았다. 살아 있기만 해도 반역자인 윤해가 달낙현과 함께 야인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반역이었다. 십이 년 동안 성군이었다가 폭군이 된 숙부가 그렇게 정했다. 열 배가 넘는 토벌군이 도성을 나섰다. 윤해는 역당의 수괴 마녀가 됐다.
북방의 겨울 한파1는 자비가 없었다. 거센 바람에 눈이 수평으로 날렸고, 불을 피우면 불까지 얼어 있는 듯했다. 피를 흘리는 자는 피가 얼고, 물이 얼어 밥을 짓지 못했다. 눈송이는 화살 같았고, 그림자마저 꽁꽁 얼려 바스러뜨릴 것 같았다. 목을 치라는 명령마저 아래로 내려가다 얼어붙었다. 동장군이 매서워질수록 윤해가 마법을 부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윤해는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이 됐고, 칼날이 됐다. 윤해는 운명에서 해방되었다.
1021년마다 한 번씩 이 세상을 파괴할 어두운 존재가 나타났다. 윤해는 더 큰 싸움을 생각했다. 결전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윤해는 자기에게 주어진 새로운 싸움을 준비했다. 이 또한 운명이었다. 세상을 구할 예언자가 됐다. 멸문의 운명은 윤해를 이기지 못했다. 윤해는 역사책에 딱 한 줄로 남을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이었다. 지금은 스스로 비석에 역사를 새기는 송곳이 됐다.
기병과 마법사/배명훈/북하우스 20250527 388쪽 17,500원
칼끝을 돌려야 반역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 있기만 해도 반역이 되는 사람이 있다. 윤해가 그렇다. 운명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한 윤해를 북쪽으로 밀어냈다. 아비의 딸로 태어났다는 첫 번째 기록을 넘은 두 번째 기록이었다. 궁지에서 살아남은 윤해는 왕국 최북단으로 유배됐다. 변방의 초원에서 기병 달낙현을 만난 것도 운명이었다.
달낙현은 자기가 보낸 서신보다 먼저 도착하는 기병이다. 그는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를 객사 안으로 들인 사람은 윤해가 처음이었다. 덕분에 돌웃집 바닥이 뜨끈뜨끈한 것도 난생 처음 알았다. 살아 있기만 해도 반역자인 윤해가 달낙현과 함께 야인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반역이었다. 십이 년 동안 성군이었다가 폭군이 된 숙부가 그렇게 정했다. 열 배가 넘는 토벌군이 도성을 나섰다. 윤해는 역당의 수괴 마녀가 됐다.
북방의 겨울 한파1는 자비가 없었다. 거센 바람에 눈이 수평으로 날렸고, 불을 피우면 불까지 얼어 있는 듯했다. 피를 흘리는 자는 피가 얼고, 물이 얼어 밥을 짓지 못했다. 눈송이는 화살 같았고, 그림자마저 꽁꽁 얼려 바스러뜨릴 것 같았다. 목을 치라는 명령마저 아래로 내려가다 얼어붙었다. 동장군이 매서워질수록 윤해가 마법을 부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윤해는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이 됐고, 칼날이 됐다. 윤해는 운명에서 해방되었다.
1021년마다 한 번씩 이 세상을 파괴할 어두운 존재가 나타났다. 윤해는 더 큰 싸움을 생각했다. 결전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윤해는 자기에게 주어진 새로운 싸움을 준비했다. 이 또한 운명이었다. 세상을 구할 예언자가 됐다. 멸문의 운명은 윤해를 이기지 못했다. 윤해는 역사책에 딱 한 줄로 남을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이었다. 지금은 스스로 비석에 역사를 새기는 송곳이 됐다.
기병과 마법사/배명훈/북하우스 20250527 388쪽 17,500원
- 겨울의 매서운 한파를 생생하고 절절하게 묘사한 부분은 단연 으뜸이다.
- 오탈자인 줄 알았으나 작가님이 줄바꿈이라고 알려줬다..
76쪽 18행 '5백이다라고 하던데 → 5백이라고 하던데'로 읽었지만, '5백이 (줄바꿈) 다라고 하던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