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한국에서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이 겪고 나눈 이야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한국에서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이 겪고 나눈 이야기
  • 장애인. 어감 자체가 무겁고 왠지 회피하고 싶어지는 단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그들 마음속에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어린왕자가 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구인이던 우리와 달리 먼 우주에서 온 듯 보이는 그들은 지구인의 생활양식을 매우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배워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2)
  • 신이 선물한 건 장애가 아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로 인해 나와 우리 가족이 얻게 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바로 신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25)
  • 비장애 형제자매들만이 느끼는 아픔이 있다. 고충이 있다. 부모는 낳은 죄라도 있지, 이 아이들의 죄는 무엇일까?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형제자매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눈은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63)
  • 이 아이는 대인관계에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주변을 포용할 줄 아는 성인이 될 것이다. 장애인 동생은 틀린 사람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걸 이미 삶 속에서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70)
  •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투사가 되어야 하고 싸움닭이 되어야만 한다. 말도 못하고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식을 대신해 엄마인 내가 싸움닭이 되어 내 아이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고 보자보자 하면 보자기로 본다더니 장애인 인권이라는 게 딱 그렇다. (79)
  • 무엇보다 '내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도 될까?'라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나쁜 엄마' 반열에 올라버렸다. 아이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 행복을 찾아가는 삶이란 아이를 포기하고 나만 행복해지자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면 이제부터 장애인 활동보조인에게 치료실에 왔다 갔다 하는 짐을 나눠 주고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119)
  • 장애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도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장애인은 삶의 한순간에 짧게 스쳐 간 불쌍한 '타인'이 아니다. 언제고 내가 당할 수 있고 내 가족이 당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겪고 있는 '이웃'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장애 이해 교육의 핵심이다. (128)
  • 나는 이제 앞으로 마트에서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아들이 진정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줬다가 장을 보고 싶다. 아들이 진정될 때까지 지하주차장이 아닌 마트 안에서 기다리고 싶다. 울고 떼를 써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들이 경험을 통해 배웠으면 좋겠다. 아들이 스스로 깨친 뒤 휴대전화 없이도 장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동네 주민들이 봐도 못 본 척, 도와주면 아마 가능할 것이다. 단지 시선을 거두어주는 일만으로도 내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83)
  • "장애인이 왜 장애인인 줄 아세요?" 내가 장애의 사전적 의미를 말하려던 찰나, 정아 씨가 먼저 답을 알려준다. "장(長), 애(愛), 인(人).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장애인이래요." 장애인(長愛人).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을 사람들. 터져 나오는 기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기쁨은 곧 여운이 되어 마음을 울린다. 長愛人…… 長愛人…… 長愛人…… 마음속에 충만함이 가득 차오른다. (236)
  • 나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장애'에만 매몰돼 '발달'이라는 측면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 아들은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기에 앞서 느린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한 명의 사람이기도 했는데 내가 그것을 무시하고 있었다. 자식의 인생을 부모인 내가 재단하려 하면 안 된다. 장애를 가졌다 해도 아이는 자기의 욕구가 있을 테고, 부모인 나는 자식의 욕구를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던 것이다. 부모인 내가 정해놓은 틀 안에 아이를 가둘 게 아니라. (260)
  • 그런 말이 있어요.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태산만큼 정성을 쏟아도 손톱만큼 자란다고요. 하지만 비장애인 자식은 장애인 자식에게 쏟는 정성의 반만 들여도 태산만큼 자란다고요. (266)
  • 사실 '장애도'라는 섬은 없다. 어느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무형의 섬 '장애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장애인 자식만이 전부인 섬 '장애도', 오로지 자식의 '장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섬 '장애도'. 그 섬은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고 있었다. (276)
  • 이제 나는 '장애도'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보통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엄마들처럼 말이다. 아들의 장애는 아들이 가진 특성일 뿐이다. 아들의 장애가 더 이상 우리 가정의 장애는 아니다. 그것을 알게 되었다. (281)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류승연/푸른숲 20180328 308쪽 15,000원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적어서가 아니라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장애인을 전염병 환자나 '장애인 바이러스'로 봅니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장애인에게 불평등한 사회라는 방증입니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025년 말 기준으로 263만 여명이고 전체 인구 대비 5.1%입니다. 후천적 원인에 의해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88.1%입니다. 즉 장애는 대부분 후천적입니다. 우리는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장애도(障碍島)에서 벗어나 長愛人하도록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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