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선언 - 개혁이냐, 혁명이냐
- 저널리즘의 적실성relevance1을 위한 보호장치를 자처해온 이 환상들은 사실상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생존을 바란다면 저널리즘은 자율성, 중심성, 응집력, 영속성을 그 핵심에서부터 재고해야 한다. (38)
- 오늘날 저널리즘 제도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적실성은 감소하고 있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저널리즘 제도는 소멸할 것이다. 비할 데 없는 수준의 기술 발전과 데이터의 정교함을 가진 시대, 어쩌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용자층을 확보했을지도 모를 시대이다. 그럼에도 저널리즘의 현대적 가치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보다, 그리고 언론인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낮은 상태다. 또한 21세기 공동체적 삶에 필요한 의미 있는 감각을 사회가 회복하는 과정에도 저널리즘은 관여하는 바가 거의 없고 그 역할이 미미하다. 이러한 단절은 저널리즘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할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엘리트, 규범, 수용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에 저널리즘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너무 늦기 전에,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저널리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전에 저널리즘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더 생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저널리즘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다시 상상해야 할 때다. 즉, 이상 속의 조건을 현실의 조건과 다시 결합해야만 한다. 재결합을 향한 저널리즘의 노정을 위해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한다. 바로 개혁적 노선과 혁명적 노선이다. (45)
- 서구와 북반구, 나아가 남반구의 여러 국가에서 저널리즘은 엘리트의 활동이 되었다. 엘리트 정보원에 의존하는 엘리트 언론인에 의해 취재가 이뤄지며,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정치에 관심을 가질 만한 자원과 성향이 있는 엘리트 수용자를 위해 고안된 활동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여러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이 생각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우리도 공화주의 정치 이론하에서 이러한 저널리즘의 상황이 민주주의와 양립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처럼 민주적 기대치를 낮춘 버전의 시나리오에서마저도 저널리즘은 좌초하고 있다. (70)
- 저널리즘의 규범적 부적실성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학자들은 규범적 합의가 기자들이 보도하는 현장, 언론사가 존재하는 맥락에서 벗어나서는 번창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걸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저널리즘은 개혁이냐 혁명이냐, 엄연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부적실함의 삼위일체2는 저널리즘의 쇠퇴가 정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생존 가능성이 줄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은 총괄적·집단적·지속적인 성찰과 수정으로만 생존할 수 있다. 규범은 계속해서 높은 수행성을 통해 과업을 이행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며, 그 부적실성은 결국 모든 곳에 있는 언론인들을 나가떨어지게 할 것이다. (102)
- 저널리즘은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112)
- 근대성 프로젝트는 언제나 국가 등의 정치체 지향적이고, 합리적이고, 수용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소통을 열망하는 수용자의 존재를 상정해왔다. 하지만 현재 수용자의 의미 형성 과정은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맥락,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연대, 차이, 감정, 표현, 사회성, 회의론과의 연결 속에서 진화하여 산출된 수용자들의 관행은 근대성이 영원할 수 있다는 미련과도 같은 꿈을 앗아간다. 번성, 아니 생존하기 위해 저널리즘은 더 이상 근대성과 근대화의 프로젝트여서는 안 된다. 그 프로젝트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128)
- 개혁 경로의 핵심은 암묵적인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버리고 노골적이고 명백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으로 이동하는 데 있으며, 변혁적인 행동을 저널리즘이 가야 할 길 그 자체로서 강조하는 것이다. (...) 개혁을 향한 길을 채택한다면 이런 식의 암묵적인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아닌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명백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지를 이해하는 핵심으로서 변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134)
- 개혁 경로의 주된 추진력이 암묵적인 것에서 명시적인 것으로, 배제적인 것에서 포괄적인 것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이동시키는 데 있다면, 혁명 경로는 저널리즘의 상상을 어지럽힌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감춰져 있던 차원과 파생물을 끄집어내어 세상에 공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바람직한 저널리즘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에 대한 특정 가정이 정정되지 않은 채 지속한 데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혁명적 관점은 저널리즘을 불필요하게 협소한 위치에 머무르게 만든 책임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살아남기 위해 저널리즘이 필요하지만, 저널리즘은 자유주의적이든 비자유주의적이든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의 도움 없이 여러 형태로 증식할 수 있다. (142)
- 저널리즘 재설정의 종착역으로서 혁명을 향해 선회한다면, 언론인들은 엘리트에 대한 의존과 규범에 대한 존중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수용자로부터 구분되고자 했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혁명을 수용하려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만든 모든 조건을 근절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방식, 그리고 그 사고방식에 동력을 제공하는 엘리트, 규범, 수용자와의 관계는 저널리즘이 절제된 제도적 감수성을 갖게 한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려면 저널리즘의 인터페이스로서의 엘리트, 규범, 수용자는 사라져야만 한다. (144)
- 어쩌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저널리즘 혁명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152)
저널리즘 선언The Journalism Manifesto, 2022/바비 젤리저Barbie Zelizer, 파블로 J. 보즈코브스키Pablo J. Boczkowski, 크리스 W. 앤더슨Chris W. Anderson/신우열, 김창욱 역/오월의봄 20230522 168쪽 14,800원
- 저널리즘은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 어쩌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저널리즘 혁명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드골은 제일 먼저 부역 언론인을 처단하며 프랑스 대숙청을 시작했다. 한국 언론은 내란범들에게 마이크를 대줬다. 기계적 중립인척 반격, 논란, 불투명, 의혹, 대란, 충돌, 우려, 공방 등을 가장하며 내란에 부역했다. You Are Not Alone. 니들은 언론이 아니다. 한국 저널리즘은 기레기로 고착했다. 언제 멸종하느냐만 남았다. 과거로 돌아갈 의지는커녕 일말의 반성도 없다. 새로운 K-저널리즘 탄생이 빠르다. 고쳐 쓰기보다 새로 장만하는 게 빠르고 깔끔하다.
- 적실성 : 適實性(실제에 들어맞는 성질)
- 부적실함의 삼위일체 : 자유민주주의에 영합한다, 권력에 영합한다, 북반구에 영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