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 김혜순
ⓒ 김혜순 시인 엄마, 이 시집은 읽지 마, 다 모래야.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김혜순/문학과지성사 20220418 274쪽 12,000원 잡초들은 다 자신이 잡초1이라고 생각한다. 잡초는 죽은 사람들의 육체가 제1차로 윤회된 생물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 잡초가 되기 제일 쉽기 때문이다. 1 엄마는 시인들보다 말을 잘한다. 우리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죽음과 삶 중간에 있는 거라고 한다. 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라고 한다. 2 엄마는 이제 테두리가 없고 내 그리움도 테두리가 없다 3 한국어 모래의 어원은 물애 물을 거절한다는 의미 모래는 평생 몸을 비비지만 한 덩어리가 되지는 못합니다 4 달에서도 보이는 오징어잡이 배의 밝은 빛을 바라보며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구를 돌지? 상담자 F와 내담자 H가 전율을 참고 있다. 5 언어는 항상 왜 뒤에 올까? 시는 왜 그림자를 찍어서 쓸까? 6 흑흑, 나는 시를 쓰는 짐승 흑흑, 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짐승이 있어 7 결국 엄마는 나를 두 번 배신했다 첫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낳아서 두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두고 가버려서 (왜 신생아는 태어나서 새끼를 빼앗기고 온 어미 새처럼 울까?) 8 내가 모래(구멍)만 말하자, 제일 먼저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났다. 그들은 말했다. 모래(구멍) 얘긴 듣고 싶지 않아. 존경하지 않는 선생님은 이메일을 보냈다. 다시는 모래(구멍) 얘기하지 마. 모래(구멍)는 혼자야, 모두 혼자야. 웅얼거리던 나는 답장을 보냈다. 모래(구멍) 얘기하지 않고는, 미치고 말 거예요. 9 가끔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단어의 영지를. 사실 명사들의 영지가 넓은 것 같지만,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영지가 더 넓다. 그중에서도 부사들의 영지가 제일 넓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명사나 대명사에 달라붙지 않게 된 그들의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