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도 심리가 있을까요?

Tacit Knowledge vs. Explicit Knowledge
  • 암묵지는 경험의 보고라는 점에서 경험기반의 학습콘텐츠로서 가치가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성때문에 구두설명보다는 직접시범이나 실제연습과 같은 방법으로 전수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암묵지는 반드시 암묵지를 보유한 숙련자를 통해서 전수된다는 점에서 숙련자를 어떻게 교수전달자로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암묵지는 숙련자의 온몸에 보유되어 있어서 약간의 설명이나 신체일부를 동원한 연습 정도로는 전수되지 않는다. 즉 '온몸으로' 배워야 한다. 그것이 손기술을 요하는 요리기술이라 하더라도 '온몸'이 투영되지 않으면 단순 스킬에 불과하게 된다. 암묵지는 숙련자인 다양한 선배들과의 상호학습을 통해 습득하는 것이기에 공동체적 성격을 띤다. 이러한 지식공동체를 통해 조직이 하나의 학습조직'이 되는 것이다. 숙련직원을 통해 축적되는 암묵지를 학습콘텐츠 및 학습창고로 소중하게 다루고 체계적으로 전수할수록 '학습조직'으로 발전하게 된다.
  • 명시지는 언어나 기호로 쓰여 그것의 외양이 겉으로 드러난 지식이고, 그것에는 수학적 공식, 과학적 법칙, 지도 등이 포함된다. 명시지는 명백하고 객관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Polanyi는 겉으로 명백히 드러나 있다는 것, 즉 객관성만으로 지식을 모두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겉으로 드러난 지식의 이면에는 물론이고 살아 있는 사람의 전신체에 존재하는, 묵시적 성격의 지식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암묵지의 영역이다.
  • 가령, 자전거 타는 경우를 예로 생각해 보자. 자전거 타는 사람(초보자가 아닌 어느 정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사람)은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나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가락 그리고 페달을 밟고 있는 발이나 안장에 앉아 있는 엉덩이 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의 주의와 관심은 자전거 타는 행위 자체와 관련된 것, 즉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했던 그의 목적지나 방향 또는 길의 상태 등에 모아져 있다. Polanyi의 설명방식에 따르면, 이 예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의 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길의 방향이나 길의 상태는 관심의 초점이 생기고, 핸들을 잡고 있는 손이나 페달을 밟고 있는 발의 느낌은 보이지는 않지만 경험으로 습득된다. 자전거를 타고 난 후에 자전거 탄 행위를 돌아보며 생각해 보면, 경험을 통해 습득된 암묵지는 거의 의식되지 않아, 말이나 글로 표현되기 어려운 반면, 관심을 두었던 생각이나 설명은 확인 가능한 형태로 말이나 글로 표현될 수 있다. 여기에서 글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사용하여 표현하려고 할 때 표현가능하다는 것이어서, 특정한 상황에서 글로 표현하지 않았을 경우, 그 순간 존재하다가 사라지고 말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당장 글로 기술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사한 상황을 만나면 전존재적 기억을 통해 재생될 가능성이 높지만, 암묵지형태의 '경험'은 그것이 지금 막 나타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하는 점이 기술(記述)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중에라도 말이나 글과 같은 형태로 되살리기가 어렵다.
  • 조직 내에서 '선진'은 암묵지와 열정적 태도를 가진 우수한 선배사원이고, 이를 후배사원인 '후진'이 올바르게 제대로 전수받는다면, 해당분야의 전통과 역사는 제대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선진이 후진을 교육하거나 후진이 학습하는 것은 단순히 스킬만을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의 암묵지와 열정적 태도와 그에 녹아 들어가 있는 전통과 역사를 전수받는 것이다.
  • 조직구성원들 중에는 20년 가까이 업무를 경험하면서 암묵지를 축적한 숙련자들이 있다. 그러한 숙련자들이 보유한 암묵지를 좀 더 체계적으로 명시지화함으로써, 그냥두면 숙련자 개인이 가지고 사라질 수도 있는 암묵지를 조직지화하는 것이다. 조직은 조직지화를 통해 개인들이 보유한 숙련기술, 노하우, 실제지, 암묵지등을 조직의 지식으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조직의 전통과 역사가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조직의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는 중심에 '암묵지'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암묵지를 직접전수하거나 명시지로 전환하여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경험이 지식이 되고 지식이 후배 조직구성원들에게 공유된다.

- 신범석. (2018. 3). 암묵지(暗默知)의 학습적 가치. 휴먼웨어 연구, 1(1), 25-54.


석유화학 공장은 정기적으로 공장을 멈추고 대정비 작업(Turnaround, T/A)을 합니다. 약 한 달간 정비하고 재가동할 때 어이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종합 검진하고 수술해 더 건강하게 만들었는데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문제없이 돌아가던 기계를 멈춰 세우고 목욕만 시켰는데 다시 가동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장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농담으로 기계가 심술이 났다거나 이놈 심리를 알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자전거를 책으로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전거를 직접 타서 운전하며 몸으로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경험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몸에 자연스럽게 익히는 자전거 타는 기술이 암묵지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학 철학자인 마이클 폴라니에 따르면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관심사나 특정 상황에 기반한 지식으로, 공식적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지식' 즉 묵시적 성격의 지식을 뜻합니다.

암묵지라는 어려운 학술 용어 대신 우리는 '짬밥'이라고 불렀습니다. 기계도 사람을 가릴곤 합니다. 매뉴얼을 들고 있는 초보자는 쩔쩔매게 합니다. 짬밥 좀 먹은 고참에겐 고분고분하고요. 기계공학에는 3대 학파가 있다고 썰을 풀곤 합니다. 기계철학, 기계체조 그리고 기계심리입니다. 기계체조는 국가대표도 있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합니다. 더불어 기계가 왜 고장 나는지 알아보는 걸 내 맘대로 기계심리라고 부릅니다.

집에서 고장 난 가전제품이 서비스 기사가 방문했을 때는 어쩐 일인지 멀쩡하게 작동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미심쩍어 기사가 방문하기 전에 재확인도 해보고요. 세탁기를 옮기면 잘 돌던 놈이 속을 썩이는 경우도 있고요. 기계에도 나름의 심리 상태가 있어 인간을 골탕 먹이는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요물딱지라고 생각하며 웃는다면 기계도 심리가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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