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역배우 김순효 씨

단역배우 김순효 씨
엄마는 기차를 타고 어디를 좀 가자고 했다. 경주는 그렇게 고창에 가게 됐다. 미국에서 결혼해 살던 경주는 남편과 사이가 틀어져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베개에 머리가 닿은 순간 그 말이 잠꼬대"가 되는 엄마는 기차에 오르자 잠을 청했다. 여든셋인 엄마는 일흔 넘어 단역배우가 됐다. 정읍에서 내려 앞장선 엄마를 따라 고창행 버스를 탔다.

엄마와 경주는 고창읍성으로 향했다. 읍성에 도착해 걸어가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앞서가던 엄마는 손으로 나무를 가리켰다. 소나무가 대나무의 몸을 휘감은 채 뻗어 있었다. 엄마가 물었다. "누가 누구 땅에 들어온 거 같노?"

사람들이 떠난 논이 습지로 변한 운곡습지에는 세계 최대 고인돌이 있었다. 누가 여기에다 돌을 고였을까. "그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고인돌만은 남아 삼천 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다." 고인돌처럼 쪼그려 앉은 엄마는 돌멩이로 고인돌을 만들고 있었다. 굄돌을 고이고 윗돌을 얹었다. 엄마는 고인돌이 몇 개인지 물었다. 경주는 고창 지역에만 천오백 기가 넘는다고 알려줬다. 엄마는 그보다 천배는 많다며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쌓은 돌탑들이 천지빼까리로 있었다.

윤슬. 한국계 1.5 세대 이민자인 인철은 제일 예쁜 한글 단어라고 했다. 딸을 낳으면 '윤슬'로 이름을 짓고 싶다고 했다. 경주는 아기를 갖고 싶지 않았다. 영어 이름을 채근하는 인철에게 경주는 아무 뜻없이 그냥 말했다. 엠마. 경주는 결혼하고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지난 7년 동안 피임해 온 걸 인철에게 들켰다. 경주는 태어난 곳이 어딘지 모르는 첩년 딸이었다.

엄마는 오래전에 고창에 땅을 사뒀다. 경주와 함께 그 땅에 오르자 빈터 가운데쯤에 산소가 하나 있었다. 산소 옆쪽에는 상석으로 보이는 돌이 있었다. 엄마는 산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절을 하라고 했다. 엄마는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외손녀 절 받으이소. 경주라예." 경주는 산소 앞이 아니라 옆에 상석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상석이 아니라 고인돌이라며 절을 올리라고 했다. "그짝 딸이 왔어예. 마이 보고 싶었지예. 고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예. 경주라예. 절 받으이소." 엎드린 경주는 그 뒤로 엄마가 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경주는 태어난 곳을 물으면 '고창'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됐다. 낳아준 사람의 이름도 알게 됐다. 고창에 다녀오고 얼마 안 돼 엄마가 아팠다. 항암치료도 거부했다. 거처를 고창으로 옮기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 영화를 끝으로 엄마가 사람을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엄마는 산소 옆에 있는 고인돌은 바로 알아보았다. 전부 기억했다. 단역배우 김순효 씨는 고창에 다녀온 이듬해 같은 계절에 돌아가셨다.

미국으로 돌아간 경주는 다섯 살난 딸아이를 입양했다. 운이 좋게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엄마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는 아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 엠마
  • 왜.
  • 엠마라고. 엠, 마.
  • 오냐, 엄마 여그 있다. 와, 잘 안들리나?

경주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듬해 봄에 인철과 엠마와 함께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수목장으로 치러져 소나무가 되어 있었다. 고창에도 들렀다. 엠마는 처음 먹어보는 대봉감을 좋아했다. 경주는 엄마가 만든 고인돌 옆에 새로이 엄마의 고인돌을 만들었다. 엄마 고인돌 옆에 돌을 주워다 조그마한 고인돌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엠마는 자기가 만들었다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햇빛이 만든 세 고인돌의 그림자가 같은 방향으로 드리워지면서 하나의 그림자로 합쳐졌다. 그림자가 된 고인돌들은 몸피가 커졌다. 서로 고인 돌처럼 함께 하는 고인돌은 세계 최대의 고인돌만큼 커졌다. 소설인 듯 소설 아닌 소설 같은 작가의 말까지 재밌고, 팟캐스트는 더 재밌다.

단역배우 김순효 씨/이수정/다산책방 20250314 280쪽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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