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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書 역적은 도처에 있다

역적
역적은 도처에 있다. 영장판사가 법조 내란 세력의 최전선이다.

대한민국 3대 풍작
출렁다리, 파크 골프장 그리고 내일로미래로 현수막

낭만주의
거리에 넝마주이가 사라지자 먹고살만해졌다고 했다. 그러자 낭만주의도 없어졌다.

이윤
이윤은 밑에서 위로 올라오지 위에서 내려가진 않아요. 드라마 〈암살자 네로〉 3화 19:43에 나오는 말이다. 낙수효과는 상상이다. 승빙효과만 있다.

iOS 26.1
앱 이름 숨기기가 되고 이번에 리퀴드 글래스, 알람 인터페이스, 카메라 실행 방지 개선은 내게 안성맞춤 판올림이다. 이제 여한이 없다.

법원
법원이 내란의 마지노선일 줄 몰랐다. 역도들이 믿는 뒷배임이 분명하다. 판사가 공범이다. 빵야빵야~~~

맘다니
팔레스타인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태어난 이슬람교도 맘다니(33) 후보가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만유인력(萬有人力)의 법칙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

여성신문
내 기억에 여성신문 관계자는 꾸준히 한나라당 공천신청했지요. 그 뒤로 여성신문은 여성을 가장한 기관지라고 여긴답니다. 친내란당에 엄청 가깝지요.

만유인력(萬有人力)의 법칙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

유행
미국의 유명한 운동화 업체인 LA 기어의 고위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용도에 맞는 신발을 신는다면, 아마 당신은 한두 켤레의 신발만 있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패션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아마 몇천 켤레의 신발로도 부족할 것입니다. (...) 한국인들은 아이들의 책을 구입하는 데 쓰는 비용의 몇 배나 되는 돈을 아이들의 신발을 구입하는 데 쓴다. - 존 라이언, 앨렌 테인 더닝,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그물코, 2002), 49쪽

다시 언급하지만, 자본주의 최대 발명품은 '유행'입니다.

탄소 발자국
예전 중학교 가는 길에 건빵공장이 있어 갓 구운 건빵을 얻어먹으면 엄청 맛있었답니다.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길 건너 오뎅 공장에서 갓 나온 오뎅을 사다 먹으면 참 맛있었습니다. 개불을 직접 캐서 즉석에서 먹은 뒤로는 식당에서 나오는 개불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특히 먹거리는 가장 가까운 걸 사 먹으면 좋습니다.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과 물 발자국(Water Footprint)을 줄이는 식생활이라고 하지요.

냉소주의
소주는 차게 마셔야 좋다는 의지나 경향을 냉소주의(冷燒酒義)라 한다. 반대말은 미소주의

검찰
니들은 부관참시도 아깝다. 멸하라!

1999년 옷로비 사건 청문회
앙녕하세요
드자이너예요
레이름은
김봉남이예요

에어 프랑스
불란서 항공은 이메일을 편지처럼 보내요. 광고를 덕지덕지 처바른 항공사와 너무 달라요.

수능
수능 날엔 수험생과 관계자만 시험장으로 이동하고 가급적 모두 시험 끝날 때까지 누운 자리 근처에서 그대로 꼼짝하지 말았으면 싶다. 비행기도 쉬어가는 날인데...

LatteisHorse1
학력고사 보는 날 꼭두새벽에 깼답니다. 전날 엿을 너무 처묵처묵해서 배탈이 나서 그랬지요. 도시락이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모여 도시락을 처묵처묵했답니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눈이 수복하게 내렸습디다. 다음날 수험표 뒤에 적은 난수표를 가채점했죠. 국어, 수학을 채점해 보니 찍은 게 다 맞았습니다. 더군다나 수학은 하나만 틀렸죠. 하지만 영어와 과학은 죽을 쑤었답니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딱 모의고사+체력장(20점)만큼 나왔답니다. 수험생과 식구분들, 고생하셨습니다. 남은 전형도 잘 치르시기 바랍니다.

LatteisHorse2
신입사원교육 끝 무렵에 63빌딩 꼭대기 층에 있던 양식당에서 서양식 풀코스로 저녁을 먹는 과정이 있었답니다. 칼과 포크가 여러 벌이 있었고, 마티니로 시작해서 커피로 끝났답니다. 그 뒤로 풀코스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LatteisHorse3
내가 최고로 꼽는 삼행시입니다. 가족오락관에 나온 만화가 고우영 선생에게 사회자가 동반자를 제시하자
동그란
반지

라고 했답니다.

룸 투 리드
당신이 한 소년을 교육하면 이는 어린이 한 명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소녀에게 공부할 기회를 준다면 그녀는 가족 전체와 다음 세대까지 교육을 전달할 것이다. - 존 우드, 《히말라야 도서관》(세종서적, 2008), 210쪽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잘나가던 존 우드는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중에 책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1999년에 사표를 던졌다. 책과 도서관을 지어주고 소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룸 투 리드'를 설립했다.

데쓰노트
노트를 어디 뒀더라. 다시 쓸 일이 없을 줄 알았지...

동면
겨울잠 자는 체질로 바꾸기로 해요. 동면을 마치면 체중이 1/3까지 빠진다고 하네요.

빠루
때리는 빠루보다 말리는 판새가 더 밉다.

요런 단체장
"성남시가 판교동 상가주택단지 주차난 해소를 위한 노상주차장 설치를 추진하면서 가로수 일대 은행나무 100여 그루를 철거할 계획이다." 인도를 반으로 갈라서 자전거도로를 만드는 지방자치단체장 다음으로 요런 단체장을 싫어함을 고지합니다.

노포
우리나라 노포의 공통점은 건물이 자기 소유라는 것입니다. 건물이 자기 소유가 아니면 그렇게 오래 영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해마
남성용 피임약은 개뿔, 향해마성 알약 복용해야...

부러진 화살
전 대통령 27년 형
전 국방장관 26년 형
전 법무장관 24년 형
전 해군사령관 24년 형

부정선거라며 쿠데타 시도한 브라질 얘깁니다. 특검에서 한덕수에게 15년 형을 요청했습니다. 최고형으로 올려 치지 않으면 이번 화살부러지지 않을 겁니다.

자정
이 시각 오토바이 소리에서는 양념반후라이드반 향이 납니다.

꽃놀이패
정청래 "추경호 구속되면 국힘 해산, 기각되면 조희대 사법부에 화살" 꽃놀이패다. 지기도 힘든 판이다. 아주 쎄게 작살내시라!

시인의 말 - 전연옥

올겨울에는 코피 터지게 연애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나의 소박한 희망을 듣고 직장 선배 한 분이 "그럼 권투 선수와 연애하면 되겠네" 하신다.
나는 가끔, 가장 쉽고 가장 단순한 방법들을 놓치고 사는 것 같아 공연히 서글퍼진다.
그래 올겨울은 권투 선수다. (1990년 2월)

똑같은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시인이 시를 안 쓰고 어떻게 살아?"

그러게 말이다.
시도 안 쓰는데 나는 왜 무탈하게 사는 걸까?

아무래도 불치병이다. (2021년 6월)

불란서 영화처럼/전연옥/문학동네 20210731 88쪽 10,000원

불란서 영화처럼
지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라고
내 몸에 다디단 기름을 발라 구우며
그대는 뜨겁게 속삭이지만
노릇하게 내 살점을 태우려 하지만
까닭 없이 빈 갈비뼈가 안쓰러움은
결코,
이 빠진 접시 위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님을
비틀거리며 쏟아지는
한 종지의 왜간장에 몸을 담그고
목마른 침묵 속에
고단한 내 영혼들이 청빈하게 익어갈 때면
그 어느 것도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에
쓰라린 무릎을 끌어안고
여기는 에미 애비도 없는
서럽고 슬픈 저녁 나라이더냐
들풀 같은 내 새끼들
서툰 투망질에도 코를 꿰는 시간인데
독처럼 감미로운 양념 냄비 속에 앉아
나는 또 무엇을 잊어버려야 하며
얼마만큼의 진실을 태워야 하는지1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방법들은
어찌하여 이 모양 이 꼴로 매양 피곤한 것뿐일까
고통의 다리를 뻗고 누워 안식의 깊은 잠을 청할
미래의 내 묫자리가 사나워서 그런 것일까2

외로울 때는
가까운 사람의 잔소리도 위로가 될 텐데3

어차피, 미래는 끊임없이 이월되어
다시 태어나도
내 배후에는 길고 긴 겨울의 대열뿐인 것을4

사랑이란 원래
감춰두기 어려운 물건이잖아요5

밥 먹기 위해 시를 쓰는 일보다
어쩌다 끼니를 잇게 해주는 한 편의 시가
나에게는 고행처럼 즐거운 일임을6


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멸치」가 당선되어 등단한 시인이 민음사에서 낸 첫 시집을 문학동네에서 복간했습니다.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됐습니다. "다디단 기름을 발라 구우며" 슬픔과 고통을 통해 은근한 사랑을 얘기합니다.


  1. 멸치
  2. 불란서 영화처럼
  3. 로멘스 그레이
  4. 거미
  5. 에디트 피아프
  6. 시인, 그리고 쉬인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이 오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엄마는 혁명가였습니다. 급진적 혁명 조직 프렌치 75에서 활약하던 핵심 대원이었습니다. 이민자 수용소를 습격하거나 폭탄 테러는 물론 은행도 서슴없이 털던 과격한 혁명가였습니다. 가족보다 혁명을 택했습니다. 그럼에도 혁명의 최전선에 섰다가 혁명의 장애물이 됐습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엄마는 딸을 낳고 사라졌습니다. 혁명 동지였던 아버지는 16년이 흐르는 동안 무력해졌습니다. 딸이 납치됐지만 우왕좌왕합니다. 지금이 몇 시인지 몇 번을 물어도 모릅니다. 목숨이 위태롭던 딸은 한때 혁명가였던 아버지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합니다. 혁명가 엄마에게서 혁명가 딸이 태어났습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One Battle After Another 남태령대첩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 2025〉는 낡은 혁명가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혁명가가 나타났다고 선언합니다. 단, 미국은 영화로만 봤지만 우리는 남태령에서 봤습니다. 응원봉이 하나둘 모이며 위풍당당하게 변했습니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이 왔습니다.

낀 세대 생존법 - 40대 여성 직장인의 솔직 담백한 인생 이야기

낀 세대 생존법 - 40대 여성 직장인의 솔직 담백한 인생 이야기
  • 난 밀레니얼 세대에도 끼지 못하고 그렇다고 기성세대가 누리던 온갖 권력(?)도 누리지 못하는 낀 세대이다. 내가 보아온 기성세대는 사무실 청소를 지시하고, 커피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력자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위치에 도달하니 이젠 밀레니얼 세대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내 쓰레기통을 비워달라고, 커피를 타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며 부탁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겪었던 '라떼' 시절과 현재 직장 모습의 간극으로 인해 나와 같은 낀 세대들은 조금 외로운 느낌이랄까. 위로도 아래로도 소속될 곳이 없기에 그냥 홀로 지내는 것에 익숙하다. 위로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세대로 낙인찍혀 그들의 권력 남용을 계속 받아주어야 하고(지금 와서 밀레니얼 세대인 척 거부하기도 어색하니까), 아래로는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성심성의껏 경청해야 한다. (21)
  • 조직 내 막내이기 때문에 모든 험난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듯, 조직 내 연장자도 특별한 이유 없이 나이가 가장 많다는 이유만으로 '옛날 사람'이나 '꼰대'로 놀림받고 선 긋기를 당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 늙어간다는 것은 한 해, 두 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되는 것Being'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난 그대로인데 주변인들이 나를 늙은이로 '만드는 것Making'이라는 걸 깨닫게 될 때 그 충격은 꽤 크다. (30)
  •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섣부르고 어설픈 리딩 Leading과 '선배감'(내가 만든 단어인데 선배라고 느끼는 감정, 을 말한다)은 "라떼는 말이야" 또는 "나만 따르라”로 해석될까 봐 불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렇다. (38)
  • 당신의 브랜드는 당신이 자리를 비웠을 때 사람들이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43)
  • 어찌 보면, 세대라는 것은 태어난 출생연도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로를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부분까지 모두 드러내 놓고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같은 세대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76)
  • 그러니 우리도 회사한테 너무 정 주지 말자구요. 회사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애사심이 넘쳐흘러 새벽 달 보고 출근해서 새벽 달 보고 퇴근하는 그런 사람들도 많더라구요. 하지만 그 사랑과 열정을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 쏟아보면 어떨까요? 회사는 당신의 그러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무생물입니다. 애사심을 가지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다만, 적당한 애사심으로 맡은 업무는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어야겠죠. (133)
  • '행복이 무엇일까요? 행복하다는 건 어떤 걸까요?' 그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불행하지 않은 상태요. 그게 행복한 게 아닐까요?' (150)
  • 고전인문학자 배철현이 쓴 『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을 보면 '수련'이야말로 훈련으로 인해 갈고 닦고 덧입혀지는 게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즉 입은 다물고 귀는 열고 머리는 생각하고 필요 없는 말이나 생각 등을 더하지 않고 비우는 거였다. 지금 당장 할 말은 꼭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꾹꾹 눌러버리고, 길고 깊은 한숨으로 옆을 온통 뿌옇게 전염시켜서라도 입을 다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수련인 거다. (160)
  • 아무렇지도 않게 슈퍼맨은 영화 속에서나 찾으면서 현실 슈퍼우먼은 꼭 필요하다 강요하는 일종의 무뢰한들에게 '어라, 자긴 딸 안 키워? 나처럼 사는 딸 괜찮겠어?' 하며 씩 웃으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여유롭게 맞짱 뜰 수 있는 그릇, 마흔이 넘어 이제야 온전히 내 것으로 빚어가고 있는 중이다. (186)
  • 결국 물, 칼슘, 각종 유기분자들로 이루어진 인간은 바깥에 우뚝 서 있는 나무랑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우린 과거의 나무, 바위, 물, 동물에서 나온 후손인 셈이다. 이거 참 멋진 일이지 않은가? (214)
  • 진정한 사랑은 지루한 게 정상이다. 관계가 지루해졌다고 해서 사랑이 식은 게 아니라 사랑의 속성이 지루한 것이다. (238)
  • 젊은 시절엔 모든 것에 확신이 차서 말과 행동에 힘을 주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40대에 접어드니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에 분명한 건 없다는 걸.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늘 가지고 산다는 것. 이런 태도가 사람을 조금은 겸손하게 그리고 둥굴둥굴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257)
  • 나물에 소주 마시는 '으른'이 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위한 각양각색의 도구들을 잘 활용할 줄 아는 괜찮은 어른으로 농익어가고 싶다. (269)

낀 세대 생존법/서서히, 변한다/헤이북스 20211122 276쪽 14,800원

"겉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속은 코코아 같은 여자"와 "겉은 데낄라, 속은 막걸리 같은 여자"가 "설거지 좀 하라는 남편의 절규를 뒤로한 채 책상 앞에서" "아사리판에서 묵묵히 진득하게 살아가며" 겪은 40대 여성들의 낀 세대 이야기입니다. 위로도 아래로도 속하지 못한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마흔이 되며 어깨에 힘을 빼고 나물에 소주를 마시며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입니다.

행복은 불행하지 않은 상태라는 걸 알았고, 인간은 나무랑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게 멋진 일이라는 것도 깨닫습니다. 출생연도만으로 꼰대 취급받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애사심은 적당히, 인생은 비우며 살라고 조언합니다.

어쩔수가없다, 가까운 미래에서 보낸 반성문

어쩔수가없다
유만수(이병헌 扮)는 25년간 근속한 제지공장에서 하루아침에 짤렸습니다. 2019년 올해의 펄프맨으로 선정되어 동종 업계 최고상도 받았지만 무용지물이었죠. 생활고로 궁지에 몰린 그는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꼼꼼한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과 달리 어설펐지만 끝내 자기보다 더 뛰어난 제지 전문가를 차례차례 죽였습니다.

어쩔수가없다
경쟁자를 제거한 유만수는 마침내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불 꺼진 공장이었습니다. 올해의 펄프맨이었던 그가 깜깜한 공장에 처음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차례차례 불을 켜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며 두 손으로 몇 번이고 환호했습니다.

어쩔수가없다
불 켜진 공장에선 유만수와 동료들이 했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No Other Choice, 2025〉는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일하는 기계 사이를 돌아다니는 유만수 뒤로 불이 꺼지며 끝납니다.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유만수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서로서로 갈등을 이어왔습니다. 그사이 자본은 새로운 빈곤을 꾸준히 발명했습니다. 불 꺼진 공장Dark Factory은 점점 더 많아질 겁니다. 〈어쩔수가없다〉는 유만수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들이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노동자끼리 싸우지 말고, 자본에 맞서 투쟁하라는 후회 가득한 반성문입니다.

내란 1년

중심은 도처에 있고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꼭 있다

내란이 그렇다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
  •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2021년 여름은 뜨거웠다. 정치권도, 관련 학계와 단체도, 그리고 언론도 공포와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는 일부 혹은 다수 언론과 정치에 언제 뜨겁지 않은 계절이 있었겠느냐마는,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가능케 하는 조항이 담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는 사뭇 더 이례적으로 달아올랐다. 두고두고 자신들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 개정 사안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들 언론은, 그리고 그에 대해 '제각각의 이유로 동조했던 정치권 일각은, 언론자유 침해를 주된 반대 이유로 내걸었다. '언론재갈법'이라는 강력한 언사까지 등장했다. (4)
  •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을 경고하는 언론의 목소리'가 '실제로 보장되었던 언론자유의 크기와 범위'에 정비례하는 역설, 즉 언론자유가 작아질수록 언론자유 침해 주장은 줄어들고, 언론자유가 커질수록 도리어 언론자유 침해 주장이 늘어나는 역설에 해당한다. (25)
  • 사실상 한국 언론의 다수는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대행하고 기타의 민주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언론자유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과 그에 연계된 이해관계의 원활한 확대재생산을 위해 언론자유라는 수단 혹은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이익을 해쳐서라도 언론자유의 확대를 꾀하기보단 자유의 위축을 수용한 대가로 이해관계를 보장받는 길을 선택해왔다. (27)
  • 언론자유에는 두 개의 층위가 있다. 일차적으로는 시민에게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이며, 이차적으로는 이를 대행하는 언론기관에 주어진 자유이다. 언론기관의 자유가 증진될수록 시민의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자유의 존재목적이다. 그런데 언론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수록 오히려 시민의 자유가, 특히 약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경향을 마주한다. 그것이 언론자유의 제1역설이다. 또 언론은 억압하는 권력에게는 자유를 헌납하고, 관용하는 주권자와 그 대행자에게는 자신의 자유를 남용한다. 그것이 언론자유의 제2역설이다. 나아가 언론은 정치권력과 시민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자유를 달라 하지만 자본이나 언론사주가 통제하는 자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언론자유의 제3역설이다. (36)
  • 더보기...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정준희, 이정훈, 송현주, 김영욱, 채영길/멀리깊이 20221229 300쪽 19,000원

"언론자유가 작아질수록 언론자유 침해 주장은 줄어들고, 언론자유가 커질수록 도리어 언론자유 침해 주장이 늘어나는(25)" 걸 언론자유의 역설이라고 했다. 한국에 존재하는 언론은 "이익을 해쳐서라도 언론자유의 확대를 꾀하기보단 자유의 위축을 수용한 대가로 이해관계를 보장받는 길(27)"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언론기관은 언론자유를 "권력 감시에 쓰는 게 아니라 특정 권력 혹은 이익만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심지어 스스로 권력이 되기 위해서" 써왔고, 그 결과는 "자신보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127)"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언론은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수록 약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억압하는 권력에는 자유를 헌납하고, 관용하는 권력이면 자신의 자유를 남용한다. 더 나아가 정치권력과 시민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자유를 달라고 하지만 자본이나 언론사주가 자유를 통제하면 저항하지 않는다. 언론자유는 표현의 자유에 비해 상당한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언론이 언론자유를 제대로 쓰지 않으며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감시하지 않거나, 특정 이익을 보호하거나 스스로 권력이 되려고 한다면 그 자유는 회수하여야 한다.

한국 언론과 언론자유에 대해 아주 고상한 학술적 견해를 펼쳤지만, 한마디로 You are not alone, 니들은 언론이 아니라는 말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자연사박물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그것은 절단기, 멍키스패너,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펌프 종짓굽, 크고 작은 나사, T자관, U자관 그리고 줄톱 들이었다. 쇠로 된 것들뿐이었다. 모두 난장이를 닮아 보였다. (61)
  • 절단기, 멍키스패너, 플러그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펌프 종짓굽, 크고 작은 나사, T자관, U자관, 줄톱 들이 난장이의 공구였다. 모두 쇠로 된 것들뿐이었다. (74)
  • 나는 아버지 옆으로 가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둘러메었다. 영호가 다가오더니 나의 어깨에서 그 부대를 내려 옮겨 메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을 넘겨주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보았다. (95)
  • 말년의 그는 절단기, 멍키스패너, 플러그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펌프 종짓굽, T자관, U자관, 나사, 줄톱 들을 부대에 넣어 메고 다녔다. 난장이네 동네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났다. (207)
  • 아버지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나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옳았다.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은강에서는 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268)

조세희/이성과힘 20250410(통쇄 331쇄) 416쪽 15,500원

자연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 그는 아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해나 사랑 따위는, 추운 겨울밤, 먹지도 못할 닭똥집을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철탑이나 고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상에서의 선택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31)
  • 헬스장에 간 적도 없고 등산도 하지 않고 오직 공장에만 다녔던 것인데, 공장의 노동은 근육을 만드는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에게 주먹을 휘두른다면 근육을 빼앗긴 그의 몸은 저항할 틈도 없이 휘청, 나자빠질 것이다. (40)
  • 국가도 법도 그들의 편이 아니라는 걸 알만 한 사람들은 안다. 회사는 언제나 그들의 삶의 반대편에 서 있다. 결국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다가 누군가는 비틀거리고, 전향하고, 남은 몇몇은 거리나 굴뚝 위로 몸을 던질 것이다. 그런 그들을 연민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그 이상 무언가 더 하지는 못한다. (45)
  • 소송에서 이기지 못하거나 천막을 접는다면 또 다른 '아불들'이 생긴다 해도, 분쇄기에 손목이 날아간다 해도 슬퍼할 수조차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두 손 중 한쪽은 스스로 자르게 되는 거야. 끝까지 가봐야지." (127)
  • 재이는 저녁 내내 낡은 소파에 엎드려 소녀 그림을 그렸다. 모두 손이 없거나 발이 없거나 한쪽 눈을 감고 있었고, 그것도 아니면 아예 옆모습이거나 뒷모습이었다. 낮의 일도 그렇고 기형적인 그림들도 그렇고, 딸의 마음속에서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그냥 둘 일은 아닌 듯했다. (153)
  • 나는 루손 섬 강변에 지었다는 통나무 감옥을 떠올린다. 폭우가 내리고 강이 넘치면 안에서 익사하고 마는 그때서야 감옥 문을 열어 강으로 떠내려 보냈다는. (197)

이수경/강 20200528 216쪽 13,000원

조세희 작가는 "나는 지금도 박정희, 김종필 등 이 땅 쿠데타의 문을 활짝 연 내란 제일세대 군인들이 무력으로 집권해 피 말리는 억압 독재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10)"이라고 했다.

소설가 이수경은 "조세희 선생은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 폭압의 시대'였던 칠십년대, '내란 제일세대 군인들이 억압 독재를 계속하지 않았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글의 전문을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기억한다. 그리고 부조리한 시대와의 반목과 대결로 태어난 '난장이 연작'과 같은 소설이 있었기에, 나도 소설가가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212)"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난쏘공》 발간 30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조세희 작가는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라고 말했다. 30여 년 전의 불행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서글픈 역설이었다. 거인들은 직접 사람을 죽일 수 없게 되자 감옥을 만들었다. 난장이 자식들은 폭우가 내리면 익사하는 강변에 지은 통나무 감옥으로 여전히 꾸역꾸역 출근한다.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의 시대"에 태어난 《난쏘공》과 "21세기 노동가족 생존기"인 《자연사박물관》은 화자를 바꿔가며 하나의 실타래로 엮여 있다. 무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변한 건 없다. 난장이 김불이가 들고 다녔던 절단기, 멍키스패너, 플러그 렌치, 드라이버, 해머, 수도꼭지, 펌프 종짓굽, T자관, U자관, 나사, 줄톱을 여전히 들고 다닌다. 오히려 비정규직이라고 불리는 난장이들이 더 많아졌다. 거인은 더 거대해졌고, 지상에서의 선택마저 없어진 꼽추와 앉은뱅이는 철탑과 고공으로 올라간다.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들까지 절단기와 줄톱이 대물림될 《일만 년 후의 세계》라면 사랑도 희망도 죽는다.

《난쏘공》과 《자연사박물관》은 유명하지만 나와는 무관한 고전이 진작 됐어야 한다. 낙원구 행복동에 살던 난장이 가족과 철탑과 고공에 오르는 노동자,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비정규직은 자연사 박물관에 박제해 놓고 오로지 그곳에서만 봐야한다.

혁명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만국의 난장이여, 혁명하라!

신의 기록 - 로제타석 해독에 도전한 천재들의 분투기

The Writing of the Gods: The Race to Decode the Rosetta Stone, 2021
  • 1799년, 로제타석이 발견된 이 해에 이집트는 무덥고 가난한 오지였다. 괜찮다. 서방을 매료시킨 것은 '고대' 이집트였다. 그리고 이곳은 결코 그 매력을 잃지 않았다. (11)
  • 그 경외감은 성체자聖體字, hieroglyphs로 이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인상적인 쓰기 체계다. 로제타석의 비밀이 풀리기 이전의 그 오랜 시간동안 이 문자의 수수께끼는 모든 이집트 방문자의 면전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집트의 유적들과 무덤들은 매혹적이고 화가 치밀도록 정교한 그림문자로 뒤덮여 있었지만(한 초기 탐험자의 말을 빌리자면 "끝없는 성체자") 그 해독 방법은 아무도 몰랐다. (15)
  • 로제타석. 맨 위가 성체자이고, 중간이 속체자(성체자의 일종의 간체자)이며, 아랫부분이 고대 그리스 문자다. 학자들은 그리스 문자를 읽을 수 있었지만, 다른 두 문자는 해독할 수 없었다. (25)
  • 이 돌은 높이 1.1미터, 폭 0.8미터에 무게는 760킬로그램이었다. 위쪽이 울퉁불퉁해 이것이 본래 더 큰 것의 일부였음을 보여준다. (27)
  • 프랑스와 영국의 두 맞수 천재가 이 암호를 푸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둘 다 젊었고, 둘 다 언어에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모든 측면에서 상반됐다. 영국인 토머스 영은 역사상 가장 다재다능한 축에 속하는 천재였다. 프랑스인 장프랑수아 샹폴리옹은 한 우물만 파는 천재로,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이집트뿐이었다. 영은 차분하고 우아하게 예의를 갖추는 사람이었다. 샹폴리옹은 분노와 조바심이 넘쳐흘렀다. 영은 이집트의 '미신'과 '타락'을 비웃었다. 샹폴리옹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제국의 장려함에 탄성을 질렀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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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기록The Writing of the Gods: The Race to Decode the Rosetta Stone, 2021/에드워드 돌닉Edward Dolnick/이재황 역/책과함께 20221219 432쪽 25,000원

로제타석(Rosetta Stone)은 1799년 7월 15일 나폴레옹 원정군이 알렉산드리아 동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나일강 어귀의 로제타(현 지명 라시드 Rashid)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발견했습니다. 높이가 114.4cm, 너비는 72.3cm, 두께는 27.3cm이며 무게는 760kg인 화강섬록암으로 핑크빛이 도는 어두운 회색 돌입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넬슨이 지휘한 영국군에게 대패해서 1802년부터 영국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로제타석을 해석하려고 했지만 토머스 영(Thomas Young, 17730613~18290510)과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 Francois Champollion, 17901223~18320304)이 나타나기까지는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토머스 영은 의사였지만 물리학, 생리학, 광학, 언어학, 심리학,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쳐 다재다능한 천재였고(1807년에 ENERGY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샹폴리옹은 오로지 이집트에만 매달려 한 우물만 판 천재였습니다. 둘 다 10여 개를 넘는 언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였습니다. 토머스 영은 로제타석 성체자(상형문자) 해독을 여는 실마리를 제공했고, 샹폴리옹은 성체자를 푸는 마지막 문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을 잇는 계파는 한때 격렬하게 치고받으며 서로를 공격하기도 했답니다. 마치 "영광을 차지할 사람은 용의자를 처음 지목한 형사일까, 사건을 해결해 그를 감옥에 보낸 형사일까?"처럼 말이죠.

샹폴리옹과 영의 경쟁은 뉴턴과 라이프니츠 같은 지적 맞수들의 경쟁과는 달랐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서로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두 경쟁자는 이상적인 협업자였습니다. 영은 늘 맨 먼저 장애물을 제거했고, 샹폴리옹은 바통을 이어받아 오랫동안 수수께끼를 붙들고, 더 깊이 더 멀리 들여다봤습니다. 샹폴리옹은 방대한 주제에 매달리다 보니 이를 정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1822년 〈다시에 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판했지만, 그로부터 10년 뒤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토머스 영은 《이집트어 사전의 기초》를 96쪽까지 마치고 영원히 연필을 놓았고, 샹폴리옹은 《이집트어 문법Grammaire égyptienne》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제타석 문자는 3천 년이 넘게 존속한 나라의 문자이지만 천 년 넘게 아무도 쓰지 않은 글자입니다. 펼쳐진 책이었던 이집트는 갈피마다 그림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어떻게 읽는지 몰랐습니다. 영과 샹폴리옹이라는 두 천재가 나타나자 비로소 이집트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종교다

어떤 종교도 인류애보다 우선할 수 없다. 인류가 공동운명체며 모든 인간이 저마다의 천부적인 생명을 얻은 귀중한 존재임을 일깨우지 않는 종교는 종교라 할 수 없다. 빈 라덴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그런 테러를 저질렀다 해도 그가 주모자라면 그의 신이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그를 용서할 리 없다. 또한 미국이 아무리 정의와 정당방위를 외친다 하더라도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다면 미국인들이 믿는 신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 김선주,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한겨레출판, 2010), 131쪽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20조는 개인이 어떤 종교를 믿을지 결정하는 권리를 말한다. 동시에 그 권리만큼 종교가 다르거나 믿지 않은 이도 존중하라는 말이다. 차별금지법을 대놓고 반대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내란을 옹호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모시는 신도 모르는 불투명한 재산과 땅을 불리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혐오와 모멸, 폭언과 폭력을 행하는 종교는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떠벌리면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종교다. 그런 종교를 앞세워 떠벌리는 자는 그가 믿는 신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종교가 인류애보다 우선하면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사이비다.

차별 없는 사랑, 이것이 종교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과연 나는 이 지구에 머물 재능이 있을까? 그 재능은 어쩌면 '집요하고 끈질기게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가, 성공을 위해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는가'보다는 '지금까지의 내 방식을 버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젖어들 수 있는가'로 판가름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의 성패가 아니라 제대로 쉴 수 있는지 여부로 말이다. 가만히 두면 마음은 금방이라도 계획과 근심의 세계로 달아날 것처럼 날뛴다. 행복을 현재에 단단히 묶어 두기 위해선 제대로 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23)
  • 멈춘다는 것은 주류를 이루는 가치에 '정말 그런가?' 하고 의문을 던지는 것이며, 엄숙함을 가장한 가짜 권위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멈춤은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도전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들은 세상이 그럭저럭 이 상태 그대로 돌아가길 바란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세력에겐 사람들이 멈춰 서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41)
  • "사랑이란 슬픔 속에서도 의연하게 이해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헤르만 헤세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집념이 강하다고 말해준 엄마가 생각난다. 의연하게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상대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 안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있기에 의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못난 점도 가볍게 받아들여 끌어안을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다. (72)
  • 혼자 자겠다고 하던 그밤처럼 살아. 그때 자네가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았어. 사람들은 생각만큼 다른 사람 사정에 큰 관심 없어. 그런데 늘 남이 어떻게 볼까, 재다가 일생을 보내지. 그러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때가 와서야 후회하지. 좀 더 나답게 살아도 좋았을 걸 하고 말이야. (119)
  • 나는 실수라는 명사에는 '배우다'라는 부담스러운 동사보다 '만나다'라는 동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만난다. 대부분의 실수는 몰라서 저지른다. 부주의 때문에 생긴다. 자신을 모르고, 자신과 타인의 욕망을 모르고, 자신이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간과한 결과 일어난다. (142)
  • 그래도 인간에게 끝까지 가 볼 권리가 있다는 것, 그걸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미치도록 좋다. 굳이 어디에 도착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가 보는 것이다. 그저 해 보는 것이다. 세상에 무익한 일이란 없다. 올바른 관점만 지닌다면 모든 일이 행복을 발견하는 오솔길로 이어진다. 아, 굳이 행복해지거나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끝까지 가 본 경험은 그 자체로 눈부신 생의 선물이 되어 생존이 아니라 진정한 여행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161)
  • 심심한 시간은 무엇인가를 우격다짐으로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비우고 또 비워 내는 고독한 순간이다. 사회가 강권하는 통념을 의심해 보고, 승자독식주의가 자아내는 초조함을 비우고,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막막함마저 비우는 시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장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것들은 바로 그 지루한 시간들을 거친 뒤에야 나온다. (175)
  • 폭설 때문에 한 달 동안 산장에 갇혀 있으면서 1300쪽에 이르는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고 또 읽었다는 어느 산장지기의 고백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언젠가 그런 때가 올 경우를 대비해 나는 270쪽 분량만 읽어뒀다. 고전을 아낄 권리도 있는 법이니까. (195)
  • 우리가 '성공'으로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나이와 상당 부분 관계가 있습니다. 인생은 돌고 돕니다. 한 살짜리 아기의 성공은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고, 25세에는 성행위, 50세에는 돈이 성공이며, 75세에는 여전히 성행위를 하는 것이, 그리고 90세에는 다시 대소변을 가리는 것이 성공입니다. (203)
  • 모든 반복은 지겨움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빚지만 걷기만은 예외이다. 걷기의 반복은 활기찬 중독으로 이어진다. 걷기는 환경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세계를 친근하게 알아 가는 수단이다. 인간의 권리장전 중에 윗부분을 차지해야 마땅할 걷기. 똑같은 길도 날마다 다르게 변주되기에 어제의 그 길이 아니다. 걸으면서 나는 어제의 나, 한 발을 내딛기 직전의 나와 흔쾌히 결별한다. (210)
  • 돌과 씨름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반드시 인생에서 패배자라는 뜻은 아니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돈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에너지를 사업 말고 다른 활동에 쏟는 쪽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현금이 아닌 다른 것에서 부유해졌다는 뜻일 수 있다"고 말했다. (218)
  • '생각하지 않을 권리'라고 해서 문제에서 달아나거나 책임을 회피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적 태만이나 무관심을 정당화하려는 주장도 아니다. 생각하지 않을 권리를 달리 표현하면 생각을 비울 권리가 될 것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기존의 가치에 괄호를 치고 원점에서 재점검해 볼 권리, 다시 말해 타성에 젖은 생각에서 자유로울 권리'인 것이다. (244)
  • 알면서 속아 주는 일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역지사지 정신을 잊지 않을 때 가능하다. 요즘 세상에는 이런 마음의 여유를 지니며 살기가 쉽지 않다. 같은 물건을 두고도 더 싸게 산 사람이 있으면 속이 쓰린 게 사람 마음 아니던가. (256)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정희재/갤리온 20120823 288쪽 13,800원

"내 그림을 내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유감이군. 그러면 완전히 자급자족이 될 텐데(106)." 고흐 말처럼 누구나 자급자족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해 "사람은 가진 것으로 제사 지낼 수밖에 없(31)"는 것이겠지요. 사람은 "일과 사랑, 그리고 상상력(231)"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상상력이 없어도 살아갈 수는 있지만 세상은 더 이상 풍요롭지 않을 겁니다. "상상력이란 다른 말로 희망을 품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232)"이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란 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트렌드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 인생을 버틸 수 있는 여유와 창의력을 길러 준다(7). 고로 '나는 몽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235).'

우주 헌법 1조는 "모든 생명은 멍때릴 권리가 있고, 모든 존재는 무조건 협조해야 한다"로 해야 합니다.

樂書 을사년 첫눈

첫눈 오는 날 목을 날리자
첫눈 오는 날 목을 날리자
첫눈 오는 날 목을 날리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을사년 첫눈은 내린다

Tiger mouth
모든 권력은 공포가 내재 돼 있지만, 민주당이 집권하면 Tiger mouth(호구)로 안다. 매섭고 톡 쏘는 맛을 보여줘야 한다.

내용증명
될 수 있으면 보내지도 받지도 않았으면 하는 편지

찰리
자업자득이다. 끝

만리포
천리포수목원에서 가장 가깝게 서식하던 시절엔 외부에 개방이 되지 않았답니다. 그나저나 일리포 십리포 백리포 천리포 그리고 만리포라 내 사랑~~~

은중과 상연
남의 떡이 엄청 훨씬 심하고 지나치게 커 보인 두 친구가 살아온 둥근 삼각형 이야기

북극성
장르를 오가며 너무 벌려놨다가 수습도 못 한 드라마를 꾸역꾸역 본 내가 대견스럽다.

기레기
민주당 "내란잔당 청산" vs 국민의힘 "독재정권 끝장" 매일노동뉴스도 요렇게 기사를 쓰네요. 두들겨 패도 시원치 않은데 자로 잰 듯한 중립형 기사를 쓰네요. 잘 났어요.

오세훈
한강 버스가 아니라 버스를 한강 작가로 도배할 생각을 해야지요. 10월은 한강절이라며…

변영주
사마귀를 연출한 변영주 감독은 이름 뒤에 DGK를 병기했네요. 궁금해서 찾아보니 한국영화감독조합이고 변 감독은 회원이랍니다.

한독훈
독산동(禿山洞)은 벌거숭이 산에서 유래했고, 독수리(秃수리)는 대머리수리란 뜻이랍니다. 禿은 '대머리 독'이라고 합니다. 한동훈은 한독훈이 틀림없습니다.

역적청산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

자본주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근 삼백 년을 우려먹다가 지금은 시간이 돈이라며 사부작사부작 멍때릴 틈을 주지 않는다.

모가지
지금쯤이면 역적 모가지 18개는 저잣거리에 걸렸어야 한다. 꼬락서니를 보니 글렀다. 국무회의 열 번 중계보다 역적 모가지 하나를 더 따야 한다. 역적청산은 기레기부터 잡고 하나회보다 더 빨랐어야 한다. 늦었다. 비정규적 애국심을 내려놓는다. 산티아고에 비가 또 내린다.

한글
닭도리탕도 일본말이니 쓰지 말라며 온통 영어로 도배하지 말고, 영어의 한글화는 이북이랑 같이했으면 싶다. 손전화, 물크림과 기름크림, 계단승강기…

학교
초딩 - 수영, 중딩 - 응급처치, 고딩 - 노동법. 돌이켜보면 우리가 알아야 할 건 학교에서 다 배웠지만, 꼭 필요한 것은 학교에서 빼먹었습디다. 학교에서 다 배웠으면 싶네요.

백신과 백반
유행접종보다 예방접종은 비용이 훨씬 덜 드니까 이참에 백신 맞으면 동네 백반집 할인권을 주면 좋지 싶다. 백신 접종률도 높이고 백반으로 기력을 차리면 좋잖아요.

K-자본주의
보증보험에 가입하려고 갔더니 보증서야 한다며 업체끼리 맞보증을 하라고 하데요. 그거 때문에 보증보험에 가입하려고 하는데 보증 없이는 아니 된답디다. 이십여 년 전 얘깁니다. 신입사원을 뽑으며 경력을 따지는 거와 비스무리하지요. 1대 창업주는 신입을 뽑아 교육했는데 2대, 3대로 넘어가며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라고 하지요. 정작 2대, 3대는 경력도 없으면서 부장, 임원을 달고요. 요때부터 K-자본주의의 불행이 시작했지요.

흔한 음식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은 pH 1.5 전후인 강산으로 음식을 살균하는 효과도 있다는 걸 생물 시간에 배웠습니다. 그 뒤로 대충 아무거나 막 먹습니다. 매일 흔한 음식을 먹는다는 말입니다.

오바로크
첫눈 오기 전에 오바로크 칠 놈은 치고 묻을 놈은 묻자. 너무 더뎌!!!

깃털 달린 여행자

Migration: Exploring the remarkable journeys of birds, 2020
  • 이주라는 단어는 라틴어 'migratus'에서 유래했는데,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엄청난 지리적 변화를 내포하는 말이다. 새들의 세상에서는 무리 전체가 반영구적으로 계절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현상, 즉 철새의 여정을 일컬어 흔히 '이주한다'고 표현한다. 그 이동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얼마나 자주, 얼마나 멀리까지 가는지는 새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전 세계에는 약 1만여 종의 새가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은 어느 정도 이주를 한다고 본다. 그러니 대략 계산해도 5000가지가 넘는 이주 형태가 있을 수 있으며, 그중에 어떤 새도 정확히 같은 경로로, 정확히 같은 시기에, 정확히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진 않는다는 점에서 이주 경로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진다. (16)
  • 극제비갈매기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왕복으로 약 4만 킬로미터, 중간에 헤매는 거리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7만 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거리를 이동한다. 동시에 북아메리카 서부의 높은 산에서 서식하는 추위에 강한 회색잣까마귀(Nucifraga columbiana)는 한겨울에는 산꼭대기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단 수백 미터 아래로 이주해 산허리에서 평화롭게 겨울을 난다. (31)
  • 이주를 떠나기 몇 주 전부터 달라지는 일조시간은 새의 뇌에서 호르몬이 변하도록 자극해 새들이 포만감을 덜 느끼고 더 많이 먹게 만든다. 이렇게 식욕이 늘어난 상태를 '과식증'이라 하며, 그 덕분에 철새는 살을 엄청나게 찌울 수 있다. 평소 12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흰뺨솔새(Setophaga striata)는 이주를 위해 몸무게를 두 배 가까이 늘리는데, 이렇게 과도하게 찌운 살은 캐나다와 남아메리카 사이 3200킬로미터 이상의 여정을 날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연료로 사용된다. 새들은 비행할 때 시간당 몸무게의 1퍼센트를 소모할 수 있다. (48)
  • 이주는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몸이 가장 작은 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벌새류는 몸무게가 단 3그램, 몸길이는 7~10센티미터로 아주 작지만 대부분 두 서식지 사이의 어마어마한 거리를 혼자 날아서 이주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만 상공을 쉬지도 않고 날아서 지나는 루비목벌새(Archilochus colubris)는 여정의 시작과 끝 지점에 따라 짧게는 800킬로미터에서 최대 15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70)
  • 이주 경로 중 사하라사막, 히말라야산맥, 태평양 같이 거대한 지리적 장애물을 가로질러야 하는 새들은 중간에 안전하게 머무를 곳도 없이 내내 인내력이 뛰어난 비행으로 맞서야 한다. 예를 들어 줄기러기(Anser indicus)는 히말라야를 넘기 위해 해발고도 1만 미터 이상의 높은 곳을 날아가야 하는데, 이는 전 세계 철새가 이동하는 높이 중에서 가장 높다. 이렇게 높은 고도의 매우 차갑고 산소도 희박한 대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러기는 이주를 시작하기 전에 혈액 내 헤모글로빈 농도를 높이고 허파도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진화시켜 근육에 충분한 연료를 공급한다. (74)
  • 큰뒷부리도요는 주기적으로 아주 먼 곳에 있는 목적지까지 여정을 떠나는 습성이 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하는 새들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개체들의 여정은 특히 놀랍다. 이 지역에 사는 큰뒷부리도요는 매년 가을이면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멈추지도 않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데, 대략 8일 만에 1만1000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이는 전 세계 어느 철새보다도 쉬지 않고 한 번에 가장 멀리까지 이동한 기록이다. 그러나 봄이 되면 이들은 동아시아 해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훨씬 더 자주 멈춰 에너지를 충천하고 최상의 상태로 번식지에 도착하려고 한다. (80)
  • 궁극적으로는 수많은 철새가 한 가지 항해술만으로는 긴 이주를 안전하게 끝낼 수 없고 여정 전반의 환경 변화에 따라 여러 기술을 적용하면서 날아간다. 새들은 '지구자기장'을 보면서 자신의 위치 정보를 얻는 동시에 몸속에 저장된 '지리학적 지도'로 경로를 보강한다. 시끄러운 암석 해안가에 다가가거나 소리가 울리는 협곡을 지날 때와 같이 어떤 구간에서는 '소리'가 경로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자외선'은 특히 구름이 잔뜩 낀 낮이나 밤에도 철새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어떤 새들은 알에서 깨어난 지 단 몇 주 만에 부모와 함께 이동하면서 배웠던 첫 번째 이주 경로를 기억하고 더 보강해가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는다. (84)
  • 알바트로스와 슴새 종류를 포함한 수많은 바닷새와 기러기, 오리, 고니 종류와 같은 물새는 수면에 내려앉아서도 쉴 수 있지만 다른 새들은 그렇게 쉽게 수면에 떠 있을 수 없다. 그 대신 지빠귀, 솔새, 벌새, 도요새, 제비, 종다리 종류와 같은 새들은 이주하는 동안, 그러니까 비행 도중에 잠을 잔다고 알려져 있다. 뇌의 절반은 최소한의 기능만 하면서 쉬고 나머지 반만 깨어서 활동하는 단일반구서파수면(Usws)이라는 휴식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들은 정신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뇌의 각 부분을 서로 다른 시간에 재충전하는 동시에 깨어 있는 한쪽으로는 지속적으로 비행 환경을 추적하고 경로를 조정하며 포식자를 비롯한 여러 위협을 주시한다. (116)
  •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새가 뚜렷하게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미국쏙독새는 겨울잠을 자는 유일한 새로, 멕시코 북부와 미국 남서부 토착 지역에 있는 동굴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틈새에서 잠을 자며 겨울을 난다. 그 외 수많은 새들은 단기간에 수면 상태에 접어들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겨울잠을 자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수면 상태에 빠진 새들은 대사 속도를 늦춰 에너지를 아낀다. 다만 이런 상태를 몇 시간 동안만 지속하고 한 계절 내내 유지하지는 않는다. 벌새, 칼새, 쏙독새 같은 종류의 새들은 무기력한 상태를 하룻밤 혹은 일시적인 한파 기간 동안 유지하기도 하지만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데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122)
  • 줄기러기는 장거리 이주를 할 때 높은 고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새들이 높은 산을 피해서 더 수월하게 날 수 있는 경로를 찾아 이동하지만 줄기러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인 히말라야 위를 넘어서 날아간다. 심지어 에베레스트산 바로 위를 지나가는 장면도 목격됐다. 최고 1만50미터 높이로 난 기록이 있으며 단 하루만에 1600킬로미터를 이동하기도 했다. (130)
  • 이주하는 새들의 미래에 대해 지금 우리가 단언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결국 변한다는 것이다. 새들은 많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고 결국은 해내겠지만 우리도 옆에서 도울 일을 찾아 함께하면 좋을 것이다. (128)

깃털 달린 여행자Migration: Exploring the remarkable journeys of birds, 2020/멜리사 마인츠Melissa Mayntz/김숲 역/가지 20230201 160쪽 19,800원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철새가 계절에 따라 다른 종으로 변한다고 했고, 1500년대 스웨덴 대주교인 올라우스 마그누스는 겨울잠을 잔다고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첫 부총장이 되었던 찰스 모턴은 철새가 주기적으로 달로 이주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가설은 1680년대 후반부터 1720년대까지 하버드대학교와 예일대학교에서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철새의 이주 행동에 관해 잘 모릅니다. 지금까지 극히 일부만 파악했을 뿐입니다. 그림도 아름다운 책을 보며 다시 겸손해집니다.

혼모노, 당신은 바나나 우유인가 바나나맛 우유인가?

혼모노
신애기1가 앞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삼십년 차 박수무당인 문수는 심기가 불편하다. "편의점 가판대 앞에서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는 뭐가 다른지 한참 고민하는데, 옆에서 누가 하나 남은 바나나 우유를 쏙 채간다.(133)" 바나나 우유마저 빼앗기고 별수 없이 바나나맛 우유를 집어들었다. 문수가 모시던 장수할멈이 떠나자 신령들도 떠났다. 신애기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문수는 "바나나맛이 나지만 바나나는 아닌 우유(135)"를 마신다. 장수할멈이 신애기로 옮겨 붙었기 때문이다.

문수는 삼십년을 모신 장수할멈이 떠났지만, 목단을 제단에 올렸다. 생전에 할멈은 지화(紙花)가 아닌 생화만 좋아했다. "혼모노라면 환장(137)"했다. 신통했던 장수할멈은 혼모노2였지만 "존나 흉내만 내는 놈(120, 154)"이었던 문수는 니세모노3 박수무당이었다. 신빨이 다한 문수는 혼모노 목단을 넣은 화병을 집어 던졌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145)" 모른 채 작두를 탔다. 소설 〈혼모노〉 속 박수무당 얘기다.

소설집 《혼모노》에는 순도 높은 사랑이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65)"로 변하는 〈길티 클럽: 호랑이 길들이기〉, "무인도에서 구명보트를 발견한 기분(90)"처럼 아주 좋은 하루(?)일지도 모르는 〈스무드〉,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기도 뱉지도 못한 채(240)" 머금고 있는 〈우호적 감정〉, 지지4라는 말을 끔찍이 싫어하는 연리목집 며느리가 하소연하는 〈잉태기〉, "은빛 비늘을 품은 대어일지, 다 녹슨 해양 쓰레기일지(332)" 모르는 〈메탈〉 이야기가 있다.

특히 인간을 중시하여 "채광과 통풍에 신경(169)" 쓰는 건축가가 인간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는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그럴듯하다. 갈월동 98번지에 세워진 경동수련원은 수련원이 아니라 '구의 집'으로 불리며 고문했던 건물이다.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192)"이라는 걸 알고 수직 창을 설계했다. 수직 창은 "단 십분만 빛이 들어오도록 치밀하게 설계(192)"했다. 세월이 흘러 "구의 집의 '구'가 두려워할 구(懼)인지, 구원의 구(救)인지, 혹은 그저 자신의 성을 딴 것인지(201)" 다 늙은 건축가 구보승은 여전히 모른다. 정말 그럴듯하다. 그럴듯하다는 말은 역사의 빈틈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채운다는 뜻이다. 취향에 맞아 더 재밌게 읽었다.

소설들은 무슨 일이 이어지려는 순간에 끝난다. 마지막 마침표가 찍혔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상(理想)과 이상(異常) 사이를 넘나들며 상상하게 만든다. 소설에는 모두 진짜와 가짜가 등장한다. 진짜라고 여기는 인물은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가짜라는 인물은 바나나맛 우유를 마신다. 둘 다 바나나는 들어있지 않은 가짜인데 대부분 바나나 우유를 고른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린다. 세상이 그렇다. 모든 현상을 덩어리로 보면 더 그렇다. 혼모노인지 니세모노인지 세심하게 볼 일이다.

"문학은 항상 예외의 자리에 있다. 문학은 한 사람을 주목하고 천천히 가는 것이다. 문학의 힘은 침묵으로 남을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성해나 작가의 말5이다. 매력적인 오독(誤讀)으로 답하는 것은 독자의 특권이라고 덧붙였다. 바나나 우유와 바나나맛 우유 앞에서 멈칫한다.

혼모노/성해나/창비 20250328 368쪽 18,000원


  1. 신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무당을 일컫는 말
  2. ほんもの. 本物, 진짜 물건. 이 부분은 각주를 달지 않았다. 혼모노가 무엇인지 독자 상상력에 맡기려는 뜻으로 짐작한다.
  3. にせもの. 偽物, 가짜. 여기서는 '선무당'을 가리킨다.
  4. 지지한다와 일본말로 할아버지라는 이중 뜻
  5. 북토크에서 문학에 대해 성해나 작가가 한 말이다. 작가의 부모님은 운동권이었고, 이청준 작가를 좋아하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전태일 열사를 꼽았다. 지금은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364)"라며 《혼모노》를 극찬한 박정민 배우는 무명기에서 꺼내준 귀인이지만, 출판사 무제랑 계약한 지금은 마감의 짐이 됐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성해나 작가는 사인받는 독자에게 진심이었다.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로 받았는데도 지친 기색 없이 어떤 소설이 좋았냐고 묻고 환하게 웃으며 사인해 줬다.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지금의 의료 서비스가 계속되리라 믿는 당신에게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한국의 의사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58.3명의 환자를 진료합니다(2019년 기준). (...) 놀랍게도 같은 해에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의사들은 하루에 고작 환자 8.1명 정도를 진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7)
  • 태움을 뚜렷하게 정의하긴 어렵습니다. 괴롭힘의 방식과 양태가 제각각이기도 하고, 외견상으로는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에게 '교육'을 하는 형태를 띠니 교육과 괴롭힘을 딱 잘라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태움의 대략적인 유형은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데요, '불공정한 업무 분담, 꼬투리 잡기, 망신 주기, 뒷말, 없는 사람 취급' 등입니다. (...) 본인이 태움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61%에 달했습니다. (16)
  • 종합병원의 병동 간호사 1명이 하루에 담당하는 환자의 수는 대략 10.1명입니다(2019년 기준). 이렇게만 보면 적은 숫자인지 많은 숫자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한데, 해외의 간호사 1인당 환자 수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가 있습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많은 주에서 간호사 : 환자 비율을 법으로 정해 놓고 있는데요, 뉴욕주는 일반적인 내과 병동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 4명 정도, 캘리포니아주는 간호사 1인당 환자 5명 정도를 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수간호사와 같은 관리 인력은 제외하고 실제 근무를 서는 인력만으로 잡은 것이니, 한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죠. (20)
  • 각자의 1인분을 하는 것으로도 벅찬데, 업무 역량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신규간호사가 구멍을 만들면 그 업무를 다른 간호사 혹은 교육 책임자인 본인이 져야 하니까요. 그 상황을 견디는 사람은 병원에 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병원 밖으로 밀려나는 게 '태움'이라는 현상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
  • 상당히 높은 업무 강도 및 교대근무제와 함께 젠더적 요소까지 더해지면,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간호사라는 직업을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는 거죠. 전체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의료 기관에 종사 중인 활동간호사의 비율이 50.6%(2019년 기준) 수준에 불과한 것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25)
  • 외과 수술은 사회·문화적 변화와도 무관한 꾸준한 수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수요는 꾸준히 많은데도 공급이 부족한 상태는 지속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하게 된 게 바로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서 의사 업무의 일부를 대신 수행하는 간호사인 진료보조인력 (physician assistant, PA)입니다. (40)
  • 의사는 개별 환자를 최대한 짧게 진료하고, 짧아진 진료 시간으로 인해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벌충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처방함으로써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모아야만 합니다. 그런 결과들을 받아 최종 진단이 나오면 빠르게 약을 처방하고 다른 환자를 봐야만 하죠. 종합병원에서 의사의 대면 진료는 잠깐이지만,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고 몇 시간씩 병원 안을 떠돌아다니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묘한 냉대에 환자들도 불만이 많지만, 진료하는 의사들도 불만이 많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병원의 수익 구조가 그렇게 돼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을 뿐이죠. (50)
  • 종합병원에서는 의사 등의 전문적 인력이 인적 행위를 통해 얻는 수익보다 의료 기기를 이용하여 진단·검사를 하는 수익이 훨씬 크며, 운영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의료 기기 구매에 대해서는 회계적 특혜까지 주고 있죠. 종합병원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보단 새로운 장비를 계속 채우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지이고, 또 그래야만 가까스로 유지라도 되는 구조인 겁니다. (56)
  • 의사를 포함한 의료 인력 임금은 서울보다 지방이 훨씬 높습니다. 물론 의사의 경우에는 전문의인지 아닌지, 전문의라면 어떤 과를 전공했는지, 그리고 근무 형태는 어떻게 다른지에 따라 매우 달라지므로 구체적인 데이터를 소개하기는 여러모로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략 전공한 과가 같고 근무 형태가 유사하다고 했을 때, 서울에서의 임금보다 지방 광역시에서의 임금이 최소 2~2.5배 정도는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여성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은 약사의 경우, 같은 수도권 내에서도 강남-분당 지역의 임금과 그 외 지역의 임금이 1.5배 정도는 차이가 납니다. 지방의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 수준과 주택 가격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임금 격차는 그 이상으로 커지는데, 이런 임금 차가 꾸준히 유지되는 이유는 그럼에도 의료 인력들이 지방 근무를 꺼려서입니다. (95)
  • 실제로 2009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 1인이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은 64~66세를 넘긴 노년 시기에 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삶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노년기에 내가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이 집중된다는 거죠. (152)
  • 지방으로 갈수록, 그리고 도시가 아닌 읍·면 지역으로 갈수록 의료 접근성은 급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의사 수 자체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새로 배출된 의사들이 똑같이 서울에만 모여 있다면 의료 접근성 문제는 거의 개선되는 바가 없습니다. 숫자 자체도 문제이긴 하지만 의사가 지역별로 얼마나 고르게 나뉘어 진료를 보느냐가 의료 접근성 문제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주제란 거죠. (162)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박한슬/북트리거 20221020 184쪽 14,500원

의사 한 명이 하루 평균 환자 58.3명을 진료한다. 주요 선진국 의사들은 평균 8.1명을 진료한다. 종합병원 간호사가 하루에 담당하는 환자는 10.1명이다. 미국은 간호사 1인당 환자를 4~5명 정도를 돌보도록 규정하고 있다. 병원에는 의료진이 부족한 대신 검사 장비로 가득하다. 신규 간호사 60%는 태움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활동간호사는 50.6%이다. 의료 인력은 임금이 더 높아도 지방을 기피한다. 그래서 지방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서울에선 임금이 하락한다. 환자는 서울 병원으로 몰리고 지방 의료는 몰락하고 있다.

저자는 태움, 기피과, 진료보조인력, 진료는 짧아지고 검사는 늘어나는 문제점의 배경과 해법을 제안한다. 생산가능인구보다 노령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현시점에서 의료 정책에 대한 숙제를 풀지 못하면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가울과 겨을 사이

나무와 풀

가을이 사라졌습니다. 계절이 가울과 겨을 사이입니다. 그럼에도 현명한 너무나 현명한 나무와 풀은 의연합니다. 며칠 따듯하다고 봄이라고 예단하지 않고, 며칠 춥다고 겨울이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나무와 풀은 인간처럼 이기적이지 않고, 혹독할수록 더 나누려고 애쓰는 뿌리는 지독한 좌파입니다. 어리섞은 인간만 가을이 사라졌다고 호들갑입니다. 나무와 풀은 굳세고 끄떡없이 알록달록하게 순응합니다.

시인의 말 - 류근

진정한 지옥은 내가 이 별에 왔는데
약속한 사람이 끝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상처적 체질/류근/문학과지성사 20100408(20240126, 초판 20쇄) 162쪽 12,000원

류근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서 남김없이 썩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다1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매달아두었으리라2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3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내 삶은 방금 첫 꽃송이를 터뜨린
목련남무 같은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아도 음악이 되는
황금의 시냇물 같은 것이었다4

하루 종일 장래희망이 퇴근이었던 나는
풀려난 강아지처럼 성실하게
아랫도리를 흔든다5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6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시인에게 근황을 묻지 말자
시인이란 전과 다름없이 지내면서
대답할 필요도 없이 시를 쓰는 사람들이다7

사람을 만나면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떠나지 않으려는 기대 때문이었다8

하늘이 함부로 죽지 않는 것은
아직 다 자라지 않는 별들이
제 품 안에 꽃피고 있기 때문이다9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10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하라는 대로만 하는 놈들은 오징어 꽁치 고등어 멸치 들처럼 삽시간에 한 그물에 잡혀들게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한번 생각해보라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오징어 꽁치 고등어 멸치가 대오를 이탈해 제멋대로 쏘다니는 편이 그나마 그 무지막지한 그물에 일망타진되는 수모를 조금이라도 면할 수 있지 않겠나11

우리 캄캄한 벌판에서 하인의 언어로
거짓 증거와 발 빠른 변절을 꿈꾸고 있을 때 친구여
가을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살아있는 나무만이 잎사귀를 버린다12

진실로 사랑한 사람과 작별할 때에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이승과 내생을 다 깨워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눈 감고 독하게 버림 받는 것이다
단숨에 결별을 이룩해 주는 것이다13


"이제 우리 다시는/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그립던 날들도 묻어 버리기/못다한 사랑/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시인은 무명시절에 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먼 전생에 쓴 유서였다고 밝혔다. 시집 《상처적 체질》은 그 시에 대한 주석이고 술꾼 류근에 대한 변명이자 참회록이다.


  1. 벌레처럼 울다
  2. 그리운 우체국
  3. 어떤 흐린 가을비
  4. 첫사랑
  5. 퇴근
  6. 상처적 체질
  7. 시인의 근황
  8. 極地
  9. 반성
  10. 너무 아픈 사랑
  11. 생존법
  12.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13. 獨酌

樂書 지지합니다

지지합니다
나는 양경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1인 시위를 지지합니다. 트럼프를 규탄하는 손솔 의원을 지지합니다.

공공대출권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서적이 도서관에서 대출되는 경우에 주로 그 서적의 저작자에게 그 대출에 대해 보상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공공대출권(PLR: Public Lending Right)이라고 합니다. 유럽은 공공대출권을 법으로 정했다지요. 우리도 꼭 필요합니다만 도서관은 예산 확보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독식할 우려가 있어 반대하네요.

내란공감범
김문수와 이준석이 받은 표가 절반입니다. 적어도 판사 둘 중 하나는 내란공감범이라는 말이지요. 두들겨 맞은 판사들이 내리는 서부지법 판결이 낯설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판결은 판사 맘대로 하는 관심법이니까요.

실명은 개뿔
비시정부 총리 라발은 총살형을 피하려고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2시간에 걸쳐 위를 세척하고 결국 총살형으로 심판했답니다. 반역자는 스스로 목숨을 결정할 기회조차 주지 말아야 합니다. 내란 수괴가 실명 위기라면 한쪽 눈이라도 살려서 총알이 날아오는 걸 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걸레 맛
난 커피 맛을 몰라서 마루 훔친 걸레 맛이라도 색깔만 커피색이면 그냥 마십니다.

군다
영화 〈군다〉에는 소들이 둘씩 짝을 이뤄 서로 파리를 쫓아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난 이 장면을 좋아합니다.

언테임드
드라마 〈언테임드〉 줄거리는 그냥저냥 하지만, 배경인 요세미티 공원 풍경만 봐도 괜찮습디다.

질문
남편 면회는 언제 갈건가요, 혹은 빤쓰 논란에 대해 한말씀 해주세요! 라고 질문했어야 한다. 아무튼 군밤 까먹으며 출두현장을 보니 군밤이 엄청 고소합디다.

K-개발
Park를 만들기 시작해 parking으로 끝납디다.

내란 우두머리 특별법
검사정원법이라고 있습니다. 단 두 줄입니다. 내란 우두머리 특별법을 단 한 줄로 만들어야 합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는 관습법에 따라 조선시대 형벌로 다스린다."

검정고시
"검정고시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시험이다. 그것밖에 우리나라에서 쓸만한 시험이 없다. 검정고시는 떨어트리기 위해서 보는 시험이 아니라 붙이기 위해서 보는 시험이다. 이런 시험이 많았으면 좋겠다." 농사짓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입니다. 실현하기 어렵지만 꼭 실천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주술
"3617 + 4398 = 8015" 모든 게 주술적이지요.

독방
미니멀리스트가 지향하는 입니다.

불멸의 명언
내란 세력과 협치하자는 놈이 배신자다. 간첩(間諜), 간자(間者), 오열(五列), 밀정(密偵)들이 슬슬 나타나지요.

유담
털자. 털자. 털자. 한 번만 더 털자꾸나

고난의 길
그건 모르겠고, 주한미군 빼세요…라고 하면 그 병력을 당장 뺄 데도 없지요. 요래 지르고 고난의 길을 걸읍시다. 굥서결의 난이 성공했을 때보다 몇 배 나을지 싶네요.

대멸종
인류가 대멸종을 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버틸 휴먼은 한반도인이라고 주장합니다. 텃밭, 동식해산물 섭렵, 잡초의 식용화 등등을 보며 종종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지요.

발상의 전환
중수청을 만들기로 했는데 소속이 문제라면 여성가족부나 중소벤처부에 놨으면 합니다. 독립된 기관이라면 장관이 일해라절해라 못하니까요. 이참에 신설하는 공소청은 고용노동부 밑에 놓고요.

해킹
개인정보 해킹하는 김에 개인채무까지 해지하면 평생 기립박수 받지 싶네요.

아파트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어라, 뜰이 없네유.

유통거리
특히 수도물과 막걸리와 채소는 유통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좋습니다.

K-낙수효과
15억 불법모금 벌금 2천만원, 벌금 내자며 불법으로 15억 모금, 15억 불법모금 벌금 2천만원, 벌금 내자며 불법으로 15억 모금...

사계절 2.0
봄 산불, 여름 폭염, 가을 홍수, 겨울 혹한...

추분
한여름 바람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하소설이었다면 오늘 밤바람은 피천득 선생이 쓴 수필 같아요.

첫, 사랑을 위하여
엄마는 나의 첫사랑이다. 인생 드라마 〈유나의 거리〉 이후 〈첫, 사랑을 위하여〉를 3회부터 본방사수했답니다. 서로 첫사랑이었던 청춘이 이십여 년이 지나 40대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얘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설탕과 조미료를 치지 않은 이북 음식 맛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특히 나찌-를 대하는 태도가 나찌에게 점령당한 유럽은 강경하고 그렇지 않았던 영국과 미국은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견해가 있더군요. 제 눈에 시방 우리는 강점기 없는 영미보다 더 관대해 보입니다. 삼일절에 일장기를 걸어도 해프닝 취급합니다. 이 건은 왜 조국과 이재명처럼 털지를 않나요. 털면 먼지 한 톨이라도 날 텐데 말이죠.

협치
실수나 실언이 아니라니까요. 본심이라니까요. 협치는 개뿔!!! 12월3일 밤을 잊지 말자고요. 내란은 진행형입니다. 자칭 기자들은 외람된 시절이 아니라 또 해프닝으로 끝나나요. 적어도 석달 열흘은 가루가 되도록 쪼사야지요.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사람이 한세상 살다 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구의 부모로 살면서 그 핏줄의 의무에만 충실하게 살다가 가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거라면 다른 동물들도 다 하는데 사람의 삶이라면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수십억분의 1만큼은 좋아지길 바라고 수십억분의 1만큼만 힘을 보탠다면 사람으로서 살다 간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정도로 나는 인생의 의미를 정리했다. (49)
  •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유전자 수나 인간이 만든 문명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문명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자존심을 갖고 남을 둘러보면서 사는 모습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며, 그런 지혜를 어떻게 얻었는지,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결코 유전자로는 밝혀낼 수 없는 비밀의 영역일 것이다. (59)
  • 뇌물도 선물이라고 우기고 받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지만, 선물도 뇌물일 거라고 생각하고 안 받는 사람도 있다. 올바르지 않은 일인지 알면서도,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말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오고 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인정'이라는 사고방식이 내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63)
  • 어떤 종교도 인류애보다 우선할 수 없다. 인류가 공동운명체며 모든 인간이 저마다의 천부적인 생명을 얻은 귀중한 존재임을 일깨우지 않는 종교는 종교라 할 수 없다. 빈 라덴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그런 테러를 저질렀다 해도 그가 주모자라면 그의 신이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그를 용서할 리 없다. 또한 미국이 아무리 정의와 정당방위를 외친다 하더라도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다면 미국인들이 믿는 신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131)
  • 젊은 세대들이 '사랑밖엔 난 몰라' 하고 사는 것도 곤란하지만 '사랑 따윈 난 몰라' 하면서 사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젊은이들이여, 힘들지만 그래도 사랑은 할 수 있다. (144)
  • 그 뒤로 여성 문제에 관해 글을 쓸 때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내 시각보다 앞서는 글을 썼다. 내가 페미니스트의 소양이나 여성적 시각이 기본적으로 부족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각적으로 반응을 못하고 항상 뒤에 가서야 당시에는 급진적으로 보이는 문제 제기가 옳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 문제는 여성의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보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는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온갖 박해와 방해, 비난 속에서 시작해 이루어놓은 성과물을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 무임승차로 공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처럼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여성의 권리는 법적으로 눈부시게 신장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들 모두가 페미니스트들한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나 자유에 대해 무심하다. 당연히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번쯤은 그것이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대를 무릅쓴 투쟁에서 얻어졌으며, 거기에는 그런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170)
  • 우리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 서먹서먹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춤주춤 다가간다.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 인생에서 많지 않았던 그 뜨거운 사랑의 순간들을 잿빛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우리는 이별을 맞아야 하고 고통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모든 사랑했던 순간들에 대한 예의고 또한 이별의 예의다. (194)
  • 예언자에게 가장 비참한 사태는 예언이 빗나가는 것이다. 그다음 비참한 사태는 예언이 적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길한 예언은, 예언자에겐 안된 일이지만 빗나가는 것이 다행스런 일이다. 예언까지는 안 가더라도 불길한 예측이 적중하는 것을 보면 비참하다. (199)
  • 그렇게 잘 키워진 사회 각 분야의 스타들이 국위도 떨치고 돈도 잘 벌어 잘 먹여 살릴 테니 '너희 능력 없는 사람들은 박수부대로 살아라', 이 말이다. 만약 태어나서부터 기회를 얻지 못하고 나라가 적절하게 대책을 세우지 않아 인생의 길목 길목에서 실의와 좌절을 겪게 될 젊은이들이 더 이상 박수부대는 되지 않겠다면 어쩔 것인가. 후배가 뱉은 "그러니까 세상이 한번 뒤집어져야 해요" 라는 말이 칼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249)
  • 기자 생활 중도에 영화 공부를 위해 전문대에 들어간 동료가 있다. 당시 서울대와 그 전문대의 학력고사 점수 차이는 백 점 이상이었기 때문에 서울대 출신인 그는 상위권 성적을 자신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가 얕보았던 동급생들이 자기보다 못하는 과목은 국, 영, 수뿐이고 이해력이나 학습 능력, 학업 열정과 성취도가 모두 자신보다 월등한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명문대 출신 또는 각종 고시와 시험을 통과한 이 사회의 전문직업인이나 지식인들을 '국어, 영어, 수학 잘했던,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지론을 자주 편다. (262)
  • 삼성전자의 이사 연봉은 52억 원이다. 로또복권에 여러 번 당첨되는 수준이다. 전자 분야의 세계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의 이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에 입이 벌어지지만 배가 아프지는 않다.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를 목표로 하는 현대자동차가 생산직 노조원들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것도 배 아프지 않다. 비록 나의 연봉이 그에 못 미친대도 말이다. (270)
  •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침묵하는 것,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분노하면서 가정폭력에 무심하게 되는 것은 가치관의 혼돈이 일어난 탓일 것이다. 모든 폭력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도덕심의 잣대는 하나여야 한다. (276)
  • 요즘은 민중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시민이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민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뜨끈하고 울컥거리는 감동과 때로는 성난 파도와 같이 휩쓸려가는 거대한 힘, 그리고 그 거대함 속에 개인이나 개인의 이익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 그 익명성의 낱말을... (355)
  •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어떤 부모도 자식을 선택해서 낳을 수는 없다. 부모 노릇 면허증을 받고 부모가 되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나를 어떤 부모로 추억할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 부모도 자식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처럼, 자식도 부모에게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나를 포함하여 요즘의 부모들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히 관찰하고 일일이 간섭하며 자식의 인생에 너무 깊게 개입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넓게 울타리가 돼주고 믿어주면 자식도 거기에 부응한다는 사실을 내 경험을 통해 잘 알면서도 말이다. (372)
  • 평생 한 번도 확고해본 적이 없었다. 신념도 없었다. 지금도 매일 매순간 흔들리고 자신이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 매번 두려웠다. 죽을 때까지 이런 갈등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사람으로 태어나 최소한 사람으로서의 예의, 안 되면 염치만은 차리자, 라는 생각으로 살고 글을 썼던 것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378)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김선주/한겨레출판 20100615 380쪽 14,000원

한겨레 논설주간이었던 언론인 김선주가 세기말 전후로 쓴 글을 모았습니다. 왕언니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에 지나치거나 외면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야 하는 나이지만 슬그머니 0.7을 곱하고 있습니다. 줄어든 나이만큼 예의 있고 염치 있게 살라는 뜻이겠지요. 더 염치 있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 - 피임할 권리와 여성 해방의 시작

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 - 피임할 권리와 여성 해방의 시작
  • 현대의 여성 운동은 노동 운동과 마찬가지로 18세기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 운동은 인구 과잉, 무한 경쟁, 사회적 빈곤과 무질서를 낳은 산업혁명 때문에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전체적인 인권 신장 및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확장하는 프랑스 혁명의 부산물 정도로 경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9)
  • 현대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발전한 분야는 성적 구속에 대항하는 여성의 저항이다. 세상을 재건하는 가장 중추적인 힘은 자유로운 모성이다. (17)
  • 여성은 스스로 깨닫고 무지의 결과에 대해 알아야만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첫 단계가 산아제한이다. 산아제한을 통해 여성은 자발적인 모성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에 도달할 때 기본적인 성적 자유를 찾을 수 있고 자신과 인류의 노예화가 중단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재된 본능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끊임없이 치유해 나갈 수 있다. 이를 통해 여성은 세상을 재편하게 될 것이다. (23)
  • 피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여성은 모성이 되는 경험과 불행한 삶 중 어떤 선택도 강요받지 않는다. 또한 사회적 및 정신적 활동과 모성의 균형을 맞출 것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모성은 모든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성이 어머니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서 친구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아니며, 남편, 친구, 문화 그리고 삶의 기쁨에 필요한 모든 다양한 경험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75)
  • 산아제한이라는 문제는 페미니즘 정신이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여성은 번식 능력을 통해 자신을 노예화하는 한편, 세상 사람들마저 속박하게 되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여성이 겪는 육체적 고통이다. 지나친 다산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여성의 성생활이다. 인류의 미래는 여성에게 달려 있다. 인류가 번창할지 아니면 쇠퇴할지 여부는 여성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123)
  •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자유는 여성의 자유다. 자유로운 인류는 노예나 다름없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날 수 없다. 속박당한 어머니는 아들과 딸들에게 어느 정도의 속박을 물려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육체를 소유하고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어머니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를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여성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124)
  • 여성의 사명은 남성 정신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남성이 만든 세상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상의 활동 영역에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불어넣어 인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129)
  • 여성에게는 자유가 있어야 있다. 그러려면 어머니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아이를 몇 명 가져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자유가 있어야 한다. 남성의 태도가 어떻든 관계없이, 이것은 여성의 문제다. 남성의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여성만의 문제다. (130)
  • 여성의 삶에서 필요한 것은 억압이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높은 곳에서 이들의 바람을 최대한 크게 펼치고 수행하는 것이다. 무지와 강요를 통해서는 더 높은 곳에 절대 도달할 수 없다. 지식을 통해 그리고 성에 대한 보다 즐겁고 수준 높은 태도를 함양할 때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성생활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피임의 위대한 기능 중 하나다. 두려움에 휩싸이면 병적인 상태가 된다. 병적인 상태가 진정으로 아름다울 리 없다. (146)
  • 사회는 과도한 출산의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페미니즘 정신의 오랜 노력에 대한 중요성을 아직 잘 모른다. 특히 영아살해, 아동 유기, 낙태 등에 관한 실질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눈뜬 장님과 다를 바 없다. 사회는 여성의 본성에서 가장 고결하면서도 가장 강력한 것을 방해하고 바꾸려 했으며, 억압하고 혼란스럽게 했다. 사회의 억압으로 인해 여성의 내적 충동이 폭력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고 여성은 스스로 가족 수를 제한하기 위해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회는 이를 즉각적으로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려고 했다. 사회는 귀머거리처럼 여성의 애원이나 역사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을 이런 '범죄'에 강제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151)
  • 여성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자발적인 모성인가? 일반적인 자유인가? 아니면 새로운 인류의 탄생인가? 자유만으로 충분하다. 더 고매한 결실이 풍성하게 열리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여성 자유의 가장 신성한 측면인 자발적인 모성이 가장 위대하다. 자유로운 모성은 구속받지 않으며,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려는 여성의 요구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자발적인 모성은 새로운 도덕, 즉 왕성하고 건설적이며 자유로운 도덕성을 함축한다. 이 도덕성은 무엇보다 여성의 본성이 모성애에 파묻히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여성이 기계적인 출산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기를 원한다. (271)

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Woman and the New Race, 1920/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김용준 역/동아시아 20230109 280쪽 16,000원

1879년에 태어난 마거릿 생어는 피임에 대한 광고와 정보제공을 금지하는 콤스톡법(The Comstock Act)의 전성기에 성인이 되어 여성에게 피임 정보와 장치를 제공하며 적극적으로 도전했습니다. 생어가 피임에 대해 헌신한 것은 개인적인 비극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열한 명의 아이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마가렛은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겨우 50살이었던 어머니는 11번의 출산과 7번의 유산을 했습니다.

생어는 간호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시에서 방문 간호사로 일하며 가난한 이민자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에 직면했을 때 낙태에 의존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생어는 더 나은 피임약의 필요성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1914년에 '산아제한(birth control)'이라는 말을 만들며 여성들에게 피임 정보와 피임약을 제공했습니다. 1916년에 미국 최초의 피임 클리닉을 열었다는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생어가 피임할 권리와 인권 운동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지만 우생학 애호가이기도 했습니다.

생어는 피임 방법에 관한 활동으로 1914년 8월 콤스톡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콤스톡법은 생어가 81세 때인 1965년에 파기됐습니다. 20세기에 여성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은 마거릿 생어는 1966년에 타계했습니다. 생어가 백여 년 전에 자유로운 인류는 노예나 다름없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날 수 없다고 했지만, 지금도 어머니가 될지 말지를 여성이 선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