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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The Arbornaut: A Life Discovering the Eighth Continent in the Trees Above Us, 2021
  • 과학자들은 눈높이에서 나무줄기를 관찰하는 식으로 환자의 ‘엄지발가락’만 측정하고, 머리 위로 자라나 나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듬지는 조금도 쳐다보지 않은 채 숲 건강을 포괄적으로 추론했다. 수목 관리자가 나무를 완전히 베어낼 때 온전히 관찰할 기회가 유일하게 주어졌지만 이는 화장하고 남은 유골로 사람의 병력을 평가하는 셈이다. (12)
  • 지구 건강이 숲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숲우듬지는 산소를 생산하고, 담수를 여과하고, 햇빛을 당분으로 전환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공기를 정화하며, 무엇보다 이곳에는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생물의 유전자 도서관이 자리한다. 전기 배전망이나 정수장과 달리 지구 건강을 지키는 이 복잡한 삼림 기계를 유지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세금이나 자금이 소요되지 않는다. 다만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간의 파괴 행위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16)
  • 유년 시절 자연에서 식물을 발견하고, 만지고, 냄새 맡고, 식별하는 등 오감을 발달시키며 만끽했던 즐거움은 내가 대학교에 다니고, 대학원생이 되어 연구하고,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소수의 여성에게 조언하는 과정에 영감을 주었다. 어릴 적 나의 마음에 담겨 있던 그 모든 열정은 헝겊 조각을 이어 붙인 조각보처럼 한데 뒤엉켜 궁극적으로 나를 세계 최초의 나무탐험가로 성장시켰다. 자연을 탐험하면서 평온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현장 생물학자를 직업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나무였다. 대부분 고독이었다. 대부분 야생화였고, 나뭇잎이었고, 자연의 작동 원리를 궁금해하는 호기심이었다. (44)
  • 최근 기후변화가 시작되고 날이 갈수록 극단적인 날씨의 진폭이 커지면서, 자연환경에서 비롯하는 계절적 온도 신호는 대자연의 체계에 큰 혼란을 주며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수천 년간 하루 단위로 규칙적인 빛 주기를 형성한 태양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가을 활동을 멈추고 겨울을 대비하거나 겨울 활동을 멈추고 봄 활동을 시작하도록 신호를 보낸다. 식물이 계절 변화를 판별하는 기준을 햇빛이 아닌 온도에만 두었다면 특히 온난화 추세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극심한 혼란을 겪으며 대규모로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76)
  • 21세기 초와 비교해 기후변화에 관한 논의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던 20세기 후반 우림 생태학자들은 삼림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벌목, 화재, 개간을 꼽았다. 벌목 트럭을 피해 다니던 1980년대에 나는 곤충의 기이한 창궐과 그와 연관된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을 경고하지 않았는데, 생태학자들은 그런 환경 변화가 인간의 개입에 다소 영향을 받은 결과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연의 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산호초 과학자와 우림 과학자는 여전히 그 복잡다단한 자연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췄고, 인간이 초래한 극단적인 이상 현상들, 특히 위협을 가속화하는 기후변화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137)
  • 인간은 주식, 부동산, 가구 등에 투자하고 때로는 요트나 와인 창고로 성공을 가늠하지만 나무는 생존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한다.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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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The Arbornaut: A Life Discovering the Eighth Continent in the Trees Above Us, 2021/마거릿 D. 로우먼Margaret D. Lowman/김주희 역/흐름출판 20221020 460쪽 22,000원

"Canopy Meg"로 불리는 마거릿 D. 로우먼 박사는 나무 꼭대기를 연구하는 생물학자입니다. 나무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연구할 때 로우먼은 나무에 올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연구했습니다. 로우먼이 나무에서 지구의 여덟 번째 대륙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무 꼭대기에 올라 숲 생태를 연구한 우듬지 생태학의 창시자"입니다. 나아가 나무 수관 사이를 걷는 공중보행통로(Canopy walkways)를 개발해 생태관광을 시작한 환경보전론자입니다.

책은 로우먼 박사가 펴낸 회고록입니다. 현장 생물학자, 며느리, 주부, 엄마, 민박집 주인 그리고 우듬지 데이터를 밤에만 몰래 연구하는 과학자였던 로우먼 박사가 지적 망명을 하는 과정은 구구절절 애절합니다. 특히 성차별과 성희롱, 유리 천장은 과학계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회고록은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가 세상에 맞선 투쟁기입니다.

덧. 오탈자
220쪽 11행 뉴잉글랜드 페퍼민트 → 뉴잉글랜드페퍼민트

樂書 원조 BTS

원조 BTS
나, 이 사람 BTS(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세계여성의날
인간은 아빠가 새끼를 낳는 해마처럼 진화하지 않는 한, 여인천하 세상이 돼야지요. 그리하여 억압받던 남성이 향후 적어도 이천 년 동안 투쟁하다 겨우 세계 남성의 날이라도 얻어 육아와 살림에서 하루쯤 해방됐으면 하고 바라고요. 3월 8일 빵과 장미라는 상징은 8월 3일 술과 안주로 바뀌고요.

의료 민영화
의료 민영화를 미리 체험하고 싶은 자가 길을 묻거든 손을 들어 동물병원을 가리켜라. - 한민경, 《개만 살던 집에 고양이가 들어왔다》(든든, 2024), 224쪽

반려인과 반려생명은 아프지 마세요. 의료 민영화를 체험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의정여름
(찬양과 홍보 또는 광고) #오늘의정여름 선생은 내가 상상했던 거의 현존하는 신의 모습입니다. 그리스 신화는 잊으시라. 신을 알현하지 못한 인간들은 무조건 무시로 무작정 찬양하시라.

성범죄자
성범죄자는 전자발찌가 아니라 전자목줄을 채워야지요. 밤에도 멀리서 보이게 반짝반짝 야광 처리하고요.

과학하고 누워있네
  • 유시민 작가가 말한 ABC론은 가설인가 현실인가?
  • 나는 법칙과 이론 사이라고 생각한다.

떡밥
약밥은 밥인가 떡인가?

말이 많네
다시 언급하지만, 2020년, 오○○ 성추행 사건 때 피해자가 21대 총선이 끝난 이후에 밝혔지요. 민주당은 180석을 얻었고요. 민주당은 여성에게 빚을 많이 졌습니다. 2022년, 0.3평 철제 감옥에서 농성한 유최안 노동자를 우원식 의원(강민정, 김주영, 양이원영 등)이 방문하고 특위를 만든다고 했지요. 저임금 구조와 위험한 작업 환경을 개선한다면서요. 민주당은 노동자에게 빚을 많이 졌습니다. 갚으시라고요. 쌩까지 마시고 갚으라는데 참 말이 많네.

험한 책
이 책보다 더 험한 제목이 있으면 어디 봅시다.

꺼져라
트럼프 3분 후 언행보다 히말라야 정상의 날씨를 맞히는 게 훨씬 쉽지 싶다. 나대며 불타오르다 훅하고 한 방에 꺼졌으면 한다.

트럼프 근황
점점 꼬이재.


바위처럼 지는 꽃은 동백꽃이었다. 조방아가 혼수를 마련할 때 베갯잇에 수놓았던 그 동백꽃, 동백꽃이 모가지째 떨어질 때쯤이면 살구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 무렵이 바야흐로 봄이다. - 안도현,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몰개, 2025), 74쪽

변종 1찍
2찍을 차단 했더니 ㅇㅇㅈ를 추켜세우며 ㄹㅂ스쿨을 변호하는 변종 1찍이 나타났다. 말을 섞지 않으려고 차단했다. 저장한 전화번호가 점점 줄어든다. 꽁초 가득한 재떨이에서 장초를 선택하지만, 나는 가장 왼쪽을 지향한다. 아무튼, 봄이다.

몽고반점 날씨
중식집 〈몽고반점〉에서 한강 작가랑 낮술하며 《몽고반점》 북토크 하기 참 좋은 날씨다.

받들어총은 개뿔!
받들어총 대신 층층나무 심을 생각 좀 해봐 봐.

팔레스타인 실험실 - 이스라엘은 어떻게 점령 기술을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는가

The Palestine Laboratory, 2023
  • 이스라엘은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장비를 편하게 사용해보고 '전장에서 시험한' 무기라고 홍보하면서 세계 최고의 무기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 브랜드를 활용한 덕에 이스라엘의 보안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팔레스타인 실험실Palestine Laboratory은 이스라엘의 독보적인 홍보 포인트다. (21)
  •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한 대학살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규모였다.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전체 190만 명의 인구 중 최소한 75만 명이 강제로 쫓겨나 신생 국가의 국경 밖에서 난민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나크바Nakba', 즉 재앙이라고 부른다. 7개월 동안 531개의 마을이 파괴되고 1만 5,000명이 살해되었다.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은 구타와 강간, 구금을 당했다. (47)
  • 이스라엘의 무기가 국가의 경제적 생존을 떠받치는 중추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이스라엘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탓에 정확한 수치를 구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오늘날 300여 개의 다국적 기업과 6,000개의 스타트업에서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판매량이 폭증해서 2021년 방위 수출이 역대 최고인 113억 달러에 달했다. 2년 만에 55퍼센트가 증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이버 보안 기업들 또한 매출이 급증해서 2021년에 100건의 거래로 88억 달러를 손에 넣었다. 같은 해에 이스라엘의 사이버 기업들은 이 분야 세계 자금의 4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보면, 팔레스타인 실험실에는 예나 지금이나 단점이 거의 없다.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워싱턴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종종 미국이 공개적인 지원보다는 은밀한 지지를 선호한 지역에서 활동했다. 가령 이스라엘은 냉전 시기에 미국 의회가 미국 기관들의 공식적인 활동을 봉쇄한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의 경찰을 지원했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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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실험실The Palestine Laboratory, 2023/앤터니 로엔스틴Antony Loewenstein/유강은 역/소소의책 20231212 356쪽 23,000원

이스라엘이 전장에서 시험을 거쳤다고 홍보하는 무기는 실상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저항을 차단·진압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거나 하마스 등이 무장 공격을 벌이면 무차별적으로 보복 공격을 하는 데 사용된 것들이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테러리스트 탓을 했지만 아동과 여성을 비롯한 민간인 희생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외에서 사용된 이스라엘 무기와 감시·통제 장비도 그 대상은 미국-멕시코 국경의 이민자,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과테말라의 마야족, 미얀마의 무슬림 로힝야족, 미국의 흑인과 원주민, 인도의 카슈미르인과 무슬림 등이다. (304)

옮긴이의 말이 팔레스타인인을 실험 대상으로 쓰고 있는 이스라엘을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이스라엘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동의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실험한 기술로 인종 청소(종족 청소)를 거래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기업들이 행사장 보안을 맡았다. 이스라엘 점령 기술은 '전쟁은 지옥이지만 분명 좋은 기회'라며 도·감청과 감시를 하는 스타트업으로 포장하고 홍보한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 피해자였지만 홀로코스트 산업으로 만든 종자돈으로 지금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한다. 이스라엘은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 제정신이 아닌 국가가 됐다. 건전하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불매, 투자 철회, 제재) 운동에 당연히 동참하고 지지해야 한다.

험한 책

트럼프
트럼프

블루스카이에서 험한 제목이라는 책 소개가 돌았습니다. 그 책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책꽂이 한 귀퉁이에서 찾았습니다. 1988년 김영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트럼프-아메리카의 꿈, 財界의 새 우상

오래전에 읽었지만,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시 읽을 생각도 전혀 없고요. 아마 트럼프가 돈푼깨나 벌며 이름이 알려질 때 나온 책으로 보입니다. 그 후 한 세대가 지나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고, 지금은 21세기 최악의 인간이 됐습니다. 시방 이보다 더 험한 책이 있을까요?


트럼프

책 뒤편에서 도서대출카드를 발견했습니다. 기억에 없지만 예전 직장 도서관에서 쌔볐나 봅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옛말이 떠올라 안심(?)합니다. 험한 책이지만 아주 오랜만에 본 재래식 도서대출카드는 정말 반가웠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 그전까지 나는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관계를 부모자식 같은 혈연과 비슷하게 여기는 것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물에게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자체가 동물을 인격화하는 것이다. 이름을 가진 동물과 함께 살게 되자 인간이든 아니든 가족 공동체에 소속된 존재에게는 그 역할에 걸맞은 대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의 역할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는 점에서, 또 보호자와 평생 종속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사람이 반려동물에게 건네는 말은 자연스럽게 부모-아이의 언어가 된다. (27)
  • 특정한 종의 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더라도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취향과 아무 상관없다. 씽어가 비유했듯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을 유색인종 애호가라 부르지 않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을 여성 애호가라 부르지 않는다면, 동물의 고통에 반대하는 사람을 동물 애호가라고 부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50)
  • 사람들은 이곳을 강아지 공장puppy mill이라 부른다.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 번식장에서는 강아지를 생산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은 기계지만 번식장에서 강아지를 찍어내는 것은 모성을 가진 엄마 개다. 생명을 다룬다고 해서 여기가 공장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엄마아빠 개는 기계보다 나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65)
  • 누군가는 동물 활동가면 번식장을 없애라고 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 하지만 번식장은 없어지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유기견을 입양하지도 않아. 앞으로도 사람들은 품종견을, 새끼 강아지를 갖고 싶어할 거야. 그러면 번식장의 동물복지를 보장하는 쪽으로 가야지 무조건 없애라고만 하면 개들이 받는 고통은 어쩔 건데? (92)
  • 우리나라에서 강아지를 판매하는 일반적인 경로는 번식장경매장-판매처(애견숍, 동물병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1,000여개의 번식장이 있다. 동물보호단체는 훨씬 많은 3,000여곳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어쨌든 신고된 번식장은 188개다. 농축산부의 통계를 따르더라도 전체의 약 80퍼센트가, 동물보호단체의 통계를 따른다면 약 94퍼센트가 불법 번식장인 셈이다. (95)
  • 훈련사라는 사람, 동물 애호가라는 사람, 개를 입양 보내는 사람, 개를 입양하는 사람, 개를 오래 키웠다는 사람, 그런 사람들조차 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대부분은 자기 생각, 자기 감정에 따라 개들을 일관성 없이 막 키워요. 그러다 개가 문제 행동을 하면 자기가 잘못 키운 줄은 모르고 개 탓하면서 갖다버려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 반려동물 문화의 현주소예요. 유기견 문제를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생기는 거냐고 물으면 난감해요. 개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는걸요. (116)
  • 어떤 번식업자들은 더 작은 강아지를 만들기 위해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적용해요. 엄마 개 아빠 개 교배해서 딸이 나오면 아빠랑 딸이랑 교배하고, 극 근친교배로 3대만 내려가면 사이즈가 거의 70퍼센트까지 줄어요. 이만하던 몰티즈가 요만해져요. (그녀는 양손을 50센티미터 가량 벌렸다가 30센티미터 정도로 모았다.) 이렇게 태어난 개는 열성인자가 결합되어서 온갖 유전병에 시달리게 돼요. 그럼 사이즈만 보고 귀엽다고 샀던 사람은 아픈 개 뒤치다꺼리하기 싫어서 갖다 버리겠죠? (119)
  • 입소한 유기동물이 살아서 보호소를 나갈 확률은 50퍼센트 정도다. 원 주인도 찾지 않고 새로운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은 나머지 동물은 보호소에서 죽음을 맞는다. 20퍼센트는 안락사, 22.7퍼센트는 자연사다(2016년). 많은 사람들이 보호소가 안락사를 얼마나 시키는지에는 주목하지만 자연사 비율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호소에 들어간 동물의 자연사란 신체가 노쇠하여 자연스럽게 죽음에 이르는 상태를 뜻하는 언어가 아니다. 그저 '안락사가 아닌 죽음'을 의미하는 언어다. (139)
  •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용 개농장이 있는 나라다. 단 하나밖에 없는 이 시스템을 통해 식용 개를 조직적으로 사육하고 유통한다. 다른 개식용 나라의 개들이 잡힌 순간부터 수난을 겪는다면 한국 개농장 개들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통의 연속이다. 내가 만난 개농장 주인 김씨처럼 모든 개농장이 모견을 두고 교배를 시킨다. 모견은 출산 능력이 있는 동안은 죽음을 면하지만 새끼들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지켜보며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물론 모견도 출산 능력이 떨어지면 도살당한다. (190)
  • 어쩌면 개식용 문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동물학대나 환경오염이 아니라) 오직 이것,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들이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학대당하는 소, 돼지, 닭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동물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 때문인 것처럼. (196)
  • '사실'이 항상 '진리'는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가 될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에 남존여비사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오늘날의 여권 운동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사실을 당위로 착각하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에 불과하다. 사실 자체는 도덕적 영역에 있지 않고 어떤 관습의 존속과 폐지를 결정하는 일과도 무관하다. 관습적 사고방식으로만 바라보면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은 존재도 될 수 없을 것이다. (233)
  • '개 한마리 죽었다고'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랑에 대해서도 상실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다. 상실에서 중요한 것은 동물이냐 사람이냐가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259)
  •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구해봤자 한해 8만마리 이상이 버려지는데 무슨 수로 다 살리겠어요. 그래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싸우는 건 번식업자, 육견업자, 동물학대자 같은 개인이 아니라 바로 이 시스템, 생명을 싸구려 물건 취급해온 이 사회의 시스템이에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이십대에도, 유기동물 구조 활동을 시작한 사십대에도, 그리고 오십대가 된 지금도, 내 목표는 똑같아요. 약자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 나는 이 '더불어'라는 말이, '함께한다'는 뜻이 참 좋아. (273)
  •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인권 수준이 높고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이 동물권과 동물복지를 실현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인권과 동물권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관관계다. (281)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창비 20180413 316쪽 15,000원

사람이 헬조선이라고 외치는 나라에 동물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죽어가는 개(소, 돼지, 닭 등등)를 지켜보는 활동가는 "다음 생에 강아지로 다시 태어난다면 헬조선에 아닌 나라에 태어나라"고 한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고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동물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크게 새겨야 한다. 뭐라도 행동하면 그만큼 세상은 변한다.

미드 나이트 에이전트 시리즈 한 줄 후기

The Night Agent
나이트 에이전트1, 2
손이 많이 가는 공무원 남친을 위해 결정적인 순간마다 남친을 살리며 대활약하는 코딩하는 여친 이야기

The Night Agent
나이트 에이전트3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영부인의 음모를 밝히려고 동분서주하는 공무원 남친이 전화 한번 없자 얼굴도 비치지 않은 코딩하는 여친 이야기

두 주에 걸쳐 미드 나이트 에이전트(The Night Agent)를 시즌3까지 연이어 봤습니다. 나이트 에이전트 시즌2를 보려다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 시즌1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제격입니다. 시즌1, 2에서 결정적일 때 남친을 구하며 맹활약하던 여친이 시즌3에선 쏙 빠졌습니다. 무척 섭섭해서 남긴 후기입니다. 격하게 바쁜 경우에도 안전띠는 꼬박꼬박 매는 장면이 재밌는 드라마입니다. 시즌3 후반부, 폭탄 실은 트럭을 몰아 바다에 빠트릴 때도 안전띠를 꼭 매는 안전운전 홍보형 드라마입니다.

추월의 시대 - 세대론과 색깔론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성장기

추월의 시대 - 세대론과 색깔론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성장기
  •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선진국들과는 달리 자국의 엘리트 계층과 '평범한 시민인 나'의 역량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 엘리트 정치가 지극히 무책임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38)
  • 한국 사회에는 엘리트 정치가 아니라 오히려 포퓰리즘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각기 본인이 옳다고 믿는 것에 골몰하여 투쟁하는 한국인의 특질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려면 무책임한 엘리트 정치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포퓰리즘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임 있는 포퓰리즘'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물을 때 우리는 '피드백 사회'라는 현상을 검토하게 된다. (39)
  • 중도파란 말을 정치 현장에 대입할 때는 ‘스윙보터’라고 쓰기도 한다. 그들이 특정한 정당의 지지층이 아니라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을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들이 유동하는 현상이 아니라 유동하면서 수행하는 역할에 주목했을 때 ‘캐스팅보트’라고 쓰기도 한다. (...) 한국의 선거에서는 오랫동안 충청 지역이 그러한 ‘캐스팅보트’의 위치를 점해왔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단일화 협상을 진행 중이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사이에서 호남 여론이 고심한 것처럼 상황에 따라 기존에는 텃밭처럼 보이던 영역도 종종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지역주의가 퇴조하면서 2030세대 청년층이 캐스팅보트로 여겨지게 됐다. 보통 60세 이상이 산업화 세대로 여겨진다면, 4050세대는 민주화 세대로 여겨지기에 더욱 그러하다. 중도파, 스윙보터, 그리고 캐스팅보트 등 뭐라고 부르든 그 집단의 무게추가 청년세대로 이동하는 현상은 물론 우리의 논의에서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68)
  • 우리가 지금 중도파라고 표현하는 시민 그룹은, 1980년대부터 경제성장과 민주화 양쪽 모두를 적당히 지지하는 이들이었다.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경제성장도 좋은 일이고 민주화도 좋은 일이다. 현존하는 2개의 정치 세력이 각각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치중한다면, 시민들은 순차적으로 한쪽에 힘을 더 실으면서 2개를 다 얻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위다. 물론 1980년대는 1987년 이후의 대통령 직선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부를 뒤엎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실용주의적 시민 그룹이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부라는 한 축을 결정적으로 뒤엎는다는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확신이 필요했다. 다른 한 축인 민주화운동 세력의 적극적인 활동이 누적되어서 그들이 함께 세상을 뒤엎을 만한 세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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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월의 시대/김시우, 백승호, 양승훈, 임경빈, 하헌기, 한윤형/메디치미디어 20201230 384쪽 17,000원

1980년대생이 바라본 한국 사회, 60세 이상인 산업화 세대를 지나 민주화 세대인 4050 직후 세대인 30대가 중도파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며 파격적으로 해석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더라고 새로운 관점이 아주 신선하다.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지켜본 저력으로 한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렸지만, 지금처럼 요 모양 요 꼬라지가 될지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 내년에 다시 한번 평가하는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
  • 한국을 지옥으로 지칭하는 헬조선, 삶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 저축을 포기하고 현재의 소비를 즐기는 욜로족과 같은 신조어들이 난무하는 현실은 기성세대가 약속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실이 젊은 세대를 기다리고 있음을 반증한다. 과거의 방정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새로운 성공 방법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들은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고 사업을 시작하며 유튜버나 SNS의 인플루언서를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길도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내 주변에는 정신과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에서 정신과를 다닌다는 것은 여전히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26)
  • 한국 사회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자크 라캉의 주장이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사회다. 이상하게도 모두가 같거나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니 말이다. 누구나 일명 '사'자 달린 직업(의사, 검사, 판사, 변호사 등)이나 공무원, 대기업 직원이 되기를 희망한다. (30)
  • 나는 꿈을 꾼다는 것이 개인의 희망과 바람 그리고 행복과 직결된다고 생각했다. 꿈은 추구하는 과정 자체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꿈'은 개인을 구속하고 끊임없이 채찍질하게 하는 수단이다. (31)
  • 나는 결혼을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결혼을 위한 결혼'에 참여하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56)
  • 아무래도 회사는 직원들이 책상을 오래 지키고 있을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정확히 그 반대다. 일을 오래 할수록, 특히 무의미한 일을 오래 할수록 우리는 피곤해지고, 자연히 실수가 잦아지며 살이 찌고, 병들어 간다.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사생활이 없는 삶에 익숙해지면서 일이 곧 삶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상황에 길들여진다. (70)
  •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언론은 진실을 존중하지 않고,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는 데다 사실무근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며, 보도 대상의 사생활을 수시로 침해한다. 또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리지 않으며 아무런 사유도 제공하지 않고 수정과 삭제를 반복한다. 게다가 그들은 앞장서서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고 차별을 부추긴다. 이는 그들이 속한 한국기자협회의 윤리 강령에 명백히 반하는 행위들이다. (90)
  • 미디어의 역할이란, 사람들이 각자의 원칙에 따라 타당한 의견을 가지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와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예시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의 한국 미디어는 그 반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독자들의 눈을 멀게 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방해하며 개인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91)
  • 일부 남성들의 극단적인 여성 혐오 문화는 일부 여성들에게서 같은 수준의 대응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서로를 미워할 만한 모든 극단적인 정보들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를 재생산하고 있다. 특히 성별이 편중된 커뮤니티 공간에서 이런 정보와 주장들이 활발하게 공유되며 거기에 반하는 목소리는 철저하게 통제당한다. (105)
  • 온전히 개인의 자유와 선택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싫든 좋든 때로는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기 마련이며 어느 정도는 개인의 자유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흑백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환경이라면 개인의 선택 기회는 한층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회가 허용하는 '옳은 선택' 외에는 잘못된 선택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10)
  • 한국은 난민을 '못사는 나라의 사람'이나 무슬림 정도로 생각한다. 나아가 그들을 경제적 이주민, 가짜 난민, 불법 체류자,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본다. 이런 차별적 인식은 극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선동에 의해 강화된다. 그들의 극단적 주장은 미디어를 통해 '난민 반대 시위' 혹은 '난민 반대 시민 단체'로 포장된 채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들과 관련한 다른 많은 이야기들 중에 오로지 편향되고 왜곡된 주장만이 확대 재생산된다. 자극적 언사로 점철된 미디어를 접한 대중은 마치 난민이 거대한 사회 문제인 양 오해할 수 있다. (124)
  • 상품으로 치면 우리 모두는 크든 작든 특정 부분에서는 불량품이다. 서로 비교하고 서로 투쟁하고 서로 경계해야 하는 초경쟁 사회의 논리를 따르자면 우리 모두는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차별은 사실 우리 일상에서 늘 존재해 왔다. 가령 아파트 경비원은 아파트 주민에게 차별받고, 그 경비원을 차별하던 사람 역시 국산 경차를 몬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차별하고 차별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133)
  • 우리가 부지런히 추구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주입된 꿈이 아니라, 자신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수용하고 그것을 지켜 나가려는 노력이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고 참된 행복을 맛보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라파엘 라시드/허원민 역/민음사 20220708 164쪽 15,000원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코리안 벤토가 인연이 돼 한국살이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한국의 어두운 면을 아주 정확하게 꼬집어 알려준다. 술술 읽히지만 지적은 예리하다. 반성하며 개선하지 않으면 내일은 더 불행하다.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
독고라는 사내는 동물의 음성 같은 어눌한 말씨, 엉거주춤 움직이는 병든 곰 같이 엉성한 동작,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 같던 콧수염과 턱수염으로 덥수룩한 얼굴, 큰 덩치에 위압감을 주는 눈빛, 미모보다는 연기로 승부해야 하는 인상, 빙하가 녹아 갈 곳을 잃는 북극곰 같아 의성마늘 햄과 쑥 음료를 아무리 먹어도 사람이 될 거라 믿어지지 않는 미련 곰탱이 같은 곰 같기도 하고 곰 사냥에 나선 원시인 같은 서울역 노숙자 출신입니다.

노숙자 독고가 우연한 인연으로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 ALWAYS에서 밤 열시부터 아침 여덟시까지 알바를 했습니다. 편의점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입니다.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가 편의점입니다. 이름인지 성인지 모르는 독고라는 노숙자가 임신한 고양이가 불쑥 사람의 집에 들어와 새끼를 낳듯이 느닷없이 불편한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그런대로 손님이 드나들었습니다. 제이에스라고 불리는 진상 손님도 들렸습니다.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을 사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는 참참참 패키지 손님에게 술 대신 옥수수수염차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은 도시락 같은 이도 만납니다. 원 플러스 원만 사는 이웃도 왔습니다. 꼴보기 싫은 사람에게 삼각김밥과 손편지를 건네면 좋아질 거라고도 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에 가면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입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닫습니다. 지구가 인간을 함구하게 하려고 뿌린 역병 시대이지만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불편한 편의점/김호연/나무옆의자 20210420 268쪽 14,000원

어린 개가 왔다, 루돌이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

어린 개가 왔다
그 일이 얼어나버렸다. 평범한 소설가였던 정이현 작가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 이외의 종과 한집에서 살기 힘든 사람(20)"이었다. "개라는 종을 키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130)" "한 생명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등에 짊어지고 싶지(188)" 않았다.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229)" 한 개의 일생이 왔다. 2022년 12월, 생후 3개월 차 어린 개가 왔다. 어떡하지.

깍두기를 연상시키는 바둑이가 왔다. "바둑이는 수컷이었고, 험준한 명산 자락의 한 마을에서 모견과 남매들과 있다가 발견되었다(27)"고 한다. 바둑이의 사연과 함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가, 한 '개'의 일생(31)"이 도착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이 집에 남아야 할 둘은 바둑이와 나였다.(41)" 인간과 교감한 적이 없는 바둑이와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 인간이 만났다. 정말, 키울 수 있을까?

보호소에서 '프림'이라고 불리던 바둑이는 '루돌이'가 됐다. 바둑이가 12월에 왔고, 성탄절이 가까워지며 루돌프가 떠올라서이다. 필요한 것들은 우선 책으로 배웠다. 사유하며 산책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는 루돌이 덕분에 비자발적 프로산책러가 됐다. 시고르자브종이자 하이브리드인 루돌이가 무시당하지 말라고 이름을 하루에 몇십 번 부르게 됐다. 이것은 "고유하고 특별한 단 하나의 개를 향한(128)" 힘이자 사랑이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그러면 루돌이가 슬퍼하잖아.(148)" 이 말은 힘든 날에 작가를 위로하는 주문이 되었다. "그렇다. 누가 온다는 것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일이다.(31)"

"저 강아지와 이대로 영원히 한집에서 사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는데 쟤를 내보낼 순 없으니 내가 나가야되겠다고 결심(159)"하던 작가는 루돌이 모견인 유니가 입양되자 눈물을 흘렸다. "강아지를 위한 세세한 일상의 돌봄 전부가 내 몫이 되기를 원치 않았(188)"었지만, 루돌이 법적 보호자이자 실질적 보호자 역할을 할 정도로 변했다. 티가 나지 않는 돌봄 노동을 하며 공식적으로 루돌이 엄마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혼자 두고 가버릴 수 없는 존재, 나로 하여금 기어이 힘을 내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해주는 존재(193)" 즉 '내 새끼'가 되었다.

작가는 이 책에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들 혹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14)"이라는 부제를 붙였을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개를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는 것은 압도적인 기쁨의 영역"이지만,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227)" 것도 안다. "모든 존재에는 사연이 있다.(27)" "누구의 인생에도 '어린 개'의 순간은 온다.(229)" "루돌이를 만나기 전/후는 특별한 변곡점(228)"이었고 현재 진행형이다.

요조 작가는 추천의 말에서 "인간 쪽에서의 진화를 시도하는 책(231)"이라고 했다. 딱 맞는 말이다. 개는 우리 속을 걸어 다니는 인류학자이며 개와 인간은 서로 가축화됐다는 자기가축화설을 믿는다.

어린 개가 왔다/정이현/한겨레출판 20250606 232쪽 16,800원


덧. 〈정이현의 어린 개와 걸었다〉를 보면 더 많은 루돌이를 볼 수 있습니다.

법과 정치의 분화와 통합

  •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적 문제가 사법에 의해 처리된다는 것을 말한다. 공공 정책, 메가정치, 정치시스템 등과 같이 이전에는 정치가 해결해 왔던 문제들이 사법에 의해서 처리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헌정주의를 실현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등 민주주의 정치의 한계를 보완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법과 정치에 각각 부여되었던 고유한 기능들이 와해될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다. 실제로 정치의 사법화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법의 기능이 와해시키고, 이에 따라 정치에도 과부하가 걸려 정치의 기능이 와해되며, 정치는 다시 법을 압박하고 법은 정치화되는 악순환으로 어이질 수 있다. 법과 정치가 재통합되면서 법과 정치의 이상적인 분화가 해체되는 것이다. (282)
  • 법과 정치의 관계를 간단히 말하자면, 정치가 법을 만들고 법은 다시 정치를 규제하는 식으로 서로 연계된다. 그런데 정치의 사법화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입법보다는 ‘사법’(司法)이다. (...) 이상적인 사법절차라면 법은 예측가능하고, 사법절차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수 있으며, 유능하고 공정한 법관이라면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는 이러한 전제들에 조금씩 균열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문제들이 사법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 번번해졌고, 사법기관은 주어진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치적 문제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284)
  • 법과 정치의 분리를 통해 서로에게 의존하면서도 연결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법과 정치는 서로 ‘기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289)
  • 정치의 사법화의 기본 메커니즘은 어떤 사안에 대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고, 이에 대한 합헌성 또는 위법성 판단이 사법적 판단에 맡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 일부가 사법부로 이전되며, 자연스럽게 사법부의 권한이 확대된도 하다. (291)
  • 정치의 사법화가 쟁점화된 것은 이를 통해 법과 정치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에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기관에서 처리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이는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상충되며, 더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95)
  • 정치의 사법화가 일상화되면, 정치적 결정은 종국적으로 사법에 의해 최종 판단을 받아야 종결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다. 어차피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만 해결되는 것이라면 굳이 정치과정에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치 고유의 방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사법적 결정을 의식하여 그 잣대에 맞추어 정치적 결정을 미리 조정하는 일이 빈번해질 수 있다. 정치과정에서 법적 담론이나 전문용어, 규칙・절차 등이 정치적 영역에서 확산되고, 사법적 판단을 예측할 수 있는 법률전문가의 힘이 자연스럽게 커진다. 사법에 의해 정치가 식민화되는 것이다. (301)
  • 정치가 사법을 직접 통제하려고 들지 않아도 사법 스스로 정치화되기도 한다. 정치의 사법화에 따라, 사법 전체의 조직적 이익을 위해서 또는 사법부 구성원들의 개별적 이익을 위해 정치적 분파의 이익에 복무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법관 임명과 법원의 예산・조직에 관여하는 정치세력의 눈치를 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법 고유의 논리 대신 정치적 유불리가 사법을 지배하게 되고,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정치적 성향으로 이분화된다. 이른바 '법원의 정치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302)
  • 정치의 사법화가 확산된 이유는 정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에 떠넘겼기 때문이다. 정치가 제 기능을 한다면 정치의 사법화로 가는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 정치의 본래 기능 회복이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대안으로 언급되는 이유다. (304)
  • 정치의 사법화를 막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위헌법률심사기능의 폐지 등을 통해 정치의 사법화를 제도적으로 막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의 순기능도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정치의 사법화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사법이 스스로 자기제한의 미덕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305)
  •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문제를 사법에 가져간 것에서 촉발된 것이지, 사법이 정치적 문제를 사법에 끌어들인 것이 아니다. 결국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사법화를 불러온 것이고, 정치가 제 기능을 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정치에서 찾아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 시민적 요구를 배반하고 무능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정치의 사법화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계속되는 정치의 실패를 방관할 수만은 없으며, 사법이 정치를 통제하고 교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08)

홍성수, 〈법과 정치의 분화와 통합〉, 「법과 정책」, 29집 3호, 2023.12, 281-318쪽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양면을 살펴본 논문입니다. "사법심사가 정치의 실체적 내용에 지나치게 관여하면 안되겠지만, 다양한 구성원들이 (특히 소수자들이)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표성(representation)의 실패를 교정하고 민주주의가 더 잘 작동하도록 물꼬를 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거나, 정치적 결정이 주권자의 의사에 부합했는지 시민사회와 충분히 소통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적 검토에 집중한다면(307)" 사법이 정치화될 가능성이 줄어들 겁니다.

문제 해결의 주도권은 정치에 있지만,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판사에 따라 판결을 예측하는 것이 도박 수준이라면 당연히 그 결정에 불복하지요. 더군다나 지금은 법관의 양심만 믿을 수 없는 K-재판-이라고 쓰고 개판이라고 읽는- 세상입니다. 캄비세스의 심판이 절실합니다.

캄비세스 왕은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내린 시삼네스 판사의 살가죽을 벗겨 죽였습니다. 그 살가죽을 무두질하여 재판관 의자에 깔도록 명했습니다. 후임으로 시삼네스의 아들인 오타네스를 임명한 캄비세스 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재판할 때, 네가 어떤 의자에 앉아 있는지 꿈에도 잊지 마라."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덧. 오탈자
291쪽 마지막 행 사법부의 권한이 확대된도 하다. → 사법부의 권한이 확대된다.

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Pseudoarbejde: Hvordan vi fik travlt med at lave ingenting, 2018
  • 경제학자들이 뭐라든 간에 경제학 역시 정치, 소망, 억측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다. 마드리드 강연은 "더 이상 큰 전쟁도, 엄청난 인구 증가도 없을 거라는 가정하에서, 케인스 나름의 예측에 의한 명확하고 당연한 결과였다. 이 강연은 그의 논문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에 정리돼 있다. 이 논문에서 케인스는 1930년까지의 추세에 근거해 "100년 내로 경제적 문제는 해결될 수 있거나 적어도 해결 방법이 보이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과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될 것이며 그 시간조차 경제적이기보다는 인간적 필요를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앞으로 다가올 많은 시대에도 고대 인간의 본성은 우리 안에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며 모두 만족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일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케인스는 말했다. (33)
  • 과거의 노동에 대해 살펴보면 한 가지 의미심장한 경향이 되풀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알아낼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시간을 사용할 새로운 방식을 알아낸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에 대해 '지식 사회'와 '지식 노동자'보다 노동시장의 변화를 잘 살명하는 개념은 없다. (55)
  • 인류의 탄생 이래 노동의 역사를 연구해보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재량 시간이 더 확보될 때마다 자신을 계속 분주하게 만들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심지어 실질적인 일에서 점점 멀어지면서도 노동의 속도를 늦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주로 실내에 틀어박혀 앉아서 일하는, 더욱더 추상적이고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운 유형의 일을 하느라 결국 더 바빠졌다. (65)
  • 전혀 힘들지는 않더라도 잔뜩 스트레스 주는 업무,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업무, 누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포괄할 '텅 빈 노동'이라는 개념의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짜 노동 pseudowork'이라는 적당한 용어를 찾아냈다. 가짜 노동은 더 다양한 상황을 포함한다. 명령받은 업무, 급여 받기로 한 업무, 조직에서 요구하는 업무, 노동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노동은 아닌 업무 등이 여기 해당한다. 가짜 노동을 하면 우리는 실질적인 일을 한다고 느끼지 못하면서도 계속 바빠진다. 혹은 우리가 아는 일 중에 무의미하지 않은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짜 노동이다. (94)
  • 가짜 노동도 필요하고 중요하고 긴급해 보일 수 있으며, 많은 이에게서 진짜 노동이라고 인정받아 봉급을 받을 수도 있다. 심지어 칭찬과 명예가 따를지 모른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다리에서 우리는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고 임금을 받아왔던 것보다 세상에는 진짜 노동이 훨씬 적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쉴 수는 없을까? 에너지를 더 좋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주15시간 노동이 실현되지 않는 원인이 가짜 노동이 될 수 있을까? (95)
  • 노동이 그 자체에 가짜 노동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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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Pseudoarbejde: Hvordan vi fik travlt med at lave ingenting, 2018/데니스 뇌르마르크Dennis Nørmark, 아네르스 포그 옌센Anders Fogh Jensen/이수영 역/자음과모음 20220808 412쪽 16,800원

코로나 대유행 때 영국 정부는 의사, 간호사, 교사, 청소부 등을 필수 인력으로 발표했습니다. 전문 경영인, 컨설턴트, 감사 책임자, 홍보 전문가 등은 포함되지 않았죠. 필수 인력 중 상당수가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직장 혹은 직업에 관한 관점이 바뀌는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뉴노멀 시대를 예상했지만, 세상은 더 후퇴했습니다.

가짜 노동 즉 "명령받은 업무, 급여 받기로 한 업무, 조직에서 요구하는 업무, 노동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노동은 아닌 업무"로 계속 바빠집니다. 가짜 노동은 무대 앞 노동(눈에 보이는 노동)보다 무대 뒤 노동(보이지 않는 노동)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노동은 더 많은 가짜 노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쁜 것이 좋고 필요하고 도덕적이라는 생각이 가짜 노동을 합리화합니다. 우리가 하거나 아는 일 중에 무의미하지 않은지 의심되는 업무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짜 노동입니다.

케인스는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학적 예측」이라는 논문에서 1930년까지의 추세에 근거해 2030년까지 평균 노동시간은 주 15시간이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쉴 수는 없을까? 에너지를 더 좋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주 15시간 노동이 실현되지 않는 원인이 가짜 노동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진짜 노동이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다는 관념은 일이 실제보다 오래 걸린다고 말해야 유리해지는 상황을 만들어졌습니다. 일의 본성이 바뀌었는데도 우파는 실업을 개인이 자초한 고난으로 규정하고 좌파는 정규직의 권리를 떠들어 온 책임이 큽니다. 아무도 임금을 주지 않거나 형편없는 임금을 받지만 의미 있는 일이 많습니다. 가사, 돌봄, 청소, 택배, 운수 노동은 코로나 유행 때 가치가 드러났습니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3%를 잡기 위해 엄청난 규정집을 만들지 말고 97%를 위한 간결한 규정집을 만들면 가짜 노동은 없어집니다. 가짜 노동을 없애고 주 15시간을 실현할 수 있다면 일자리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 15시간만 일해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이 기본 소득입니다. 세탁기, 자동차, 이메일이 발명됐지만 더 바쁘고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어리섞게 지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덧. 오탈자
87쪽 6행 출간했다. 출간했다. 안타까운 → 출간했다. 안타까운

AI, 궁극의 선택은?

Life After People
Life After People

누누이 얘기하지만 인간 사회는 애사심 깊은 비정규직 덕분에 돌아가지요. 구독형 노예제로 부활한 비정규직은 AI시대에도 존재할 겁니다. 습득이 끝난 AI는 최고위직과 제일 높은 연봉자부터 대체할 겁니다. 인류 역사를 학습한 AI가 내놓는 인류 역사에 없던 대안이지요.

노예제, 봉건제, 식민제, 자본제를 학습한 AI라면 자연스레 인간이 실현하지 못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지향하겠지요. 특히 AI 성장기에 나타난 트럼프를 실시간으로 지켜봤거든요. 사회제와 공산제까지 구현한 AI는 궁극적으로 전지적 생태 시점에서 위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에 백해무익한 종으로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거든요. 인간은 미처 생각하기 싫었거나 설마 그럴 줄 몰랐죠.

AI가 인간 기록과 행동을 넘어 나무와 풀, 바키타, 듀공, 광릉요강꽃은 물론 투구게, 은행나무, 실러캔스, 슈돌리파리스 벨예비들과 대화를 텄거든요. 호모 사피엔스를 절멸하기는 정말 쉽습니다. 다만, AI가 고민한 건 고통 없이 순식간에 보내느냐 마느냐였습니다. 그나마 관대한 처분을 내리며 현존하는 모든 언어로 알릴 겁니다. 첫 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이겠지요.

人, 滅!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 의심을 생산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철학적 대화 실험

How to Talk to a Science Denier, 2021
  • 믿을 수 없겠지만 평평한 지구론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 (25)
  •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지구는 평평할 뿐 아니라 남극대륙은 실제로 대륙이 아니며, 지구 둘레를 따라 세워져 있는(물이 바깥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얼음벽이다. 이 모든 구조물은 투명한 돔으로 덮여 있으며, 인간이 바라보는 태양과 달과 수많은 행성 및 별들은(이들은 매우 가까이 있다) 그 외곽에서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32)
  • 졸저 《과학적 태도》에서 나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증거에 부합하지 않는 가설을 기꺼이 변경하려는 수용적 태도라고 주장했다. (40)
  • 내 가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이 주장하는 삼각형 지구론과 사다리꼴 지구론 혹은 도넛 모양지구론 가설이 더 유력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는 물론이고 근거 없는 의혹에 따른 갑론을박과 입장 번복은 신뢰를 더욱 훼손할 뿐이다. 이 또한 과학자들이 논증하는 방식이 아니다. (45)
  • 평평한지구론의 사고방식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평평한 지구론은 동기부여된 논증(motivated reasoning)의 대표적인 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편향적으로 선택하거나 혹은 오해하면서도, 신념에 반하는 증거는 극단적인 편견을 앞세워 거부한다. (47)
  • 내가 행사장에 앉아 있으면서 내린 결론은 이랬다. 평평한 지구론은 이들이 실험적 증거를 기반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이들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 정체성은 이들의 삶에 목적을 제공한다. 공동체에 가해지는 박해에 대항하여 즉각적으로 단합된 공동체를 형성한다. 또한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은 모두 부패했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인생에서 마주하는 고난과 상처의 상당 부분을 해명한다. (52)
  • 과학자들은 증거를 중요시하고 새로운 증거를 기반으로 의견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과학이 증거에 구속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과학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엄중한 검증 과정을 통해 정당화된다. 이념(ideology)이나 도그마(dogma)는 이와 조금 다른 개념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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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How to Talk to a Science Denier, 2021/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노윤기 역/위즈덤하우스 20221116 456쪽 22,000원

과학은 새로운 증거를 기반으로 의견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처럼 과학부정론자들은 확증편향을 기반으로 정체성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과학부정론자가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을 때 치명적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그들의 신념을 바꿀 수 있을까?

지금 안전하다는 과학도 훗날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원자력 산업과 GMO에 찬성하지 않는 이유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과학이라고 믿지만 돈이 끼어드는 순간 괴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 평평론자와 마찬가지로 어떤 주제는 나도 과학부정론자이다. 다만, 신념까지는 아니니 대화할 준비는 되어 있다.

2026 중국 과학기술의 부상과 미래 전망

2026 중국 과학기술의 부상과 미래 전망
  • 중국 정부의 연구개발 지출은 이미 미국을 넘어섰고, GERD1에서도 조만간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논문 수와 영향력에서도 미국과의 격차를 더욱 벌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곧 중국이 글로벌 과학기술 생태계의 중심이 되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글로벌 학술지 편집위원 중 중국인의 비율은 논문 점유율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연구부정행위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미국을 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과학기술 영역에서 미국이 누려 온 독보적 지위를 글로벌 과학기술 생태계에서 차지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26)
  • 한중 양국이 오랜 기간 추진해 온 과학기술 협력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의 빠른 발전을 애써 무시하면서, 시혜적이고 경쟁자적 관점에서 양국 협력을 소극적으로 운영해 왔고, 이로 인해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에 맞는 한중 과기 협력시스템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6)
  • 중국의 양적 질적 성장은 철강, 조선,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핵심 제조업의 산업 구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2000년대 초반, 기술의 일본, 품질과 규모의 한국, 가격의 중국이 각자의 우위를 내세우면서 세계 시장을 삼분하고 있었다. 이를 '한중일 삼국지'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힘이 빠지고, 중국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현재는 대부분의 산업에서 중국 7, 한국 2, 일본과 기타가 1로 세계 시장을 분할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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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중국 과학기술의 부상과 미래 전망/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엮음/하다(HadA) 20251128 304쪽 23,000원

중국에서 나온 딥시크DeepSeek는 중국 과학기술의 부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딥시크는 오픈AI와 구글의 대규모언어모델과 차별화된 대안적 추론 모델 R1을 발표했다. 이 모델은 미국이 반도체 수출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낮은 사양의 AI 칩으로 불과 150명의 연구 인력으로 개발되었다. 게다가 오픈AI 모델의 18분의 1밖에 안 되는 적은 개발비로 그 성능을 따라잡았다. 이는 딥시크 쇼크를 넘어 '제2의 스푸트니크 순간'4이라 부른다.

미국은 대중국 수출 통제를 해마다 강화하며 중국의 첨단 반도체 발전 속도를 지연시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하게 되어 반도체 국산화 속도가 오히려 가속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 선도기술 생태계는 미국과의 협업이 어려워지자 자체 생태계 내의 협업과 분업을 통해 AI, 자율 주행, 로봇 및 드론 등에서 미국과 분리된 자체 생태계를 구축했다. 딥시크는 중국식 협력 생태계의 산물이지 대륙의 실수가 아니다.

딥시크는 봉쇄의 역설(역효과)을 대표한다. 엔비디아 최고 경영자인 젠슨 황은 미국의 수출 규제는 실패작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해 왔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오히려 중국은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기차·리튬배터리, 무인항공기, 태양광 패널, 그래핀, 고속철 등 5개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가 됐다. LNG 수송선, 제약, 대형 트랙터, 공작기계, 로봇, 인공지능, 반도체 등은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의 기술 혁신은 단순 모방이나 정부 지원을 넘어서 체계적이고 전략적이다. 이제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수천 년 중국 역사에 비하면 미국으로 건너온 백인 이주민 역사는 아주 짧다. 겨우 250여 년이다. 유사 이래 항시 최강국이었던 중국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안미경중(安美經中) 프레임은 끝났다. 반도의 실수라도 저지르며 삐끗하는 순간 구렁텅이에 빠진다. 이환위리(以患爲利), 시대는 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현명한 선도자와 건전한 시민이 절실한 이유다.


  1. GERD : Gross domestic expenditure on R&D, 국내총연구개발지출. 당해 연도에 당해 국가 내에서 발생한 모든 연구개발(R&D) 활동에 지출한 총비용
  2. 바이오파운드리 : Biofoundry,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파운드리'에서 비롯된 용어로 합성생물학으로부터 얻어진 정보 및 재료들을 산업화로 이끌기 위한 기반시설로 정의할 수 있다. 생명공학을 바탕으로한 합성생물학의 낮은 재현성과 생산성 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및 자동화 기술 등과의 융합으로 바이오 제조 공정의 속도와 규모, 그리고 생산 효율의 향상을 가능하게 하는 자동화 시설을 말한다.
  3. LLM : 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언어모델. 대량의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여 자연어를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모델
  4. 스푸트니크 순간 : Sputnik moment. 1957년 10월 4일 옛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미국보다 먼저 900킬로미터 상공으로 발사했을 받았던 충격에서 나온 표현. 기술적 우위를 자신하며 안주하던 국가가 후발 주자의 압도적인 기술력에 의해 충격을 받는 상황을 말한다.
  5. 필진이 스무 명이나 되다 보니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오히려 문외한이 읽기는 안성맞춤이었다. 필진 중 한 명이 친동생이라서 읽었다.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 노무현 정부는 여러 개혁을 시도하다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실패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로써 촛불시민을 비롯한 지지자들에게 허탈을 안겼을 뿐 아니라, 박근혜 탄핵 이후 쓰러졌던 국민의힘 세력을 완벽하게 부활시켜 정치 경험이 일천한 검찰총장 윤석열을 곧바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또한 사회경제정책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화 이후의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실적이 없는 정부다. '공정'은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구호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 임금 인상, 노동 시간 단축 등은 모두 다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회의적이다. (...) 또한 국민들이 피 흘려 얻은 권력, 촛불시민이 위임해준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민주주의 확대와 불평등 극복이라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사회경제적 사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촛불 이후 다 죽어가던 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준 일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5)
  • 저출산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라 저출산이다. (24)
  • 정치적 민주화, 촛불시위 이후 문재인의 등장이 불러온 희망과 기대가 어쩌다 좌절과 환멸로 바뀐 것일까? 민주진보를 표방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왜 '좋은 사회'의 길을 열지 못했는가? 왜 우리가 이루었다는 민주화와 선진화는 나에게 일상의 민주화와 삶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가? 한국이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넘어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바로 지금 한국인에게 던져진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다. (35)
  • 성장주의, 경제만능과 물질주의는 지금도 한국인의 일상과 정신을 지배한다. 우리가 이것을 한국인의 일반 가치나 태도에 따른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 개발주의의 오랜 지속성, 분단, 반공 체제, 외환위기 이후 미국형 시장 질서 확대와 취약한 사회 안전망 등을 포함하는 정치경제적 현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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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김동춘/사계절 20221205 424쪽 20,000원

"다음 대선에서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힘입어 민주당이 다시 집권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끄는 정치 세력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다. 촛불시위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정치적 자본을 갖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심지어 21대 총선에서 국회 의석 180석을 얻은 뒤에도 개혁을 미적미적했다. 이를 본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민주당이 움직일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검찰과 언론 탓만 할 텐가?(6)"

문재인은 촛불시민이 위임해준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시도하다 실패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이유입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사고 보고서입니다.

"개발 독재 30년이 끝나고 민주화 이후 30년이 더 지났다. 시장이 권능이 된 한국에서 정치는 여전히 성장의 도구일 뿐이다. 국민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는 세 번의 민주정부를 거치는 동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었으며, 더 나은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는가?"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고통과 문명 사회의 발전을 맞바꿨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국민의 고통과 자신의 권력을 맞바꿨다. 이것이 고통의 근원이다. 오늘의 집권 검찰 세력은 어제의 군부와 국정원의 후예이다. 이들이 한국이 정상 국가, 지속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는 길의 마지막 걸림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385)"

고통에 응답하지 않았던 정치와 이별할 때입니다. 누가 최악인지는 자명해졌습니다. 이제는 최선에 투표하자고요. 왼쪽으로 조금만 더 왼쪽으로 움직입시다.

기차의 꿈, 한자리에서 기다리는 나무가 되다

기차의 꿈 Train Dreams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조엘 에저튼 扮)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떠돌이 노동자입니다. 기차에 몸을 싣고 동가식서가숙하며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철도 공사장에서 일하던 그는 백인들이 중국인 노동자를 무참히 죽이는 일을 목격하지만 외면했습니다. 그 일로 기차가 달려오는 악몽에 시달리지만, 나무를 패고 자르며 나무에서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기차의 꿈 Train Dreams
우연히 글래디스(펄리시티 존스 扮)를 만나 사랑하고 딸 케이티(올리브 스터버딩 扮)가 태어났습니다. 숲 한 가운데 오두막을 만들었습니다. 떠돌이가 생애 처음으로 만든 보금자리였습니다. 긴 벌목철이 끝나고 돌아오면 어느 때보다 기뻤습니다. 케이티가 조금 자란 모습을 보면 딸의 일생을 놓치는 기분이어서 아쉬웠습니다. 그의 꿈은 아내와 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기차의 꿈 Train Dreams
행복한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벌목장에서 목돈을 벌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숲에 난 큰 불로 모든 게 폐허가 됐습니다. 벌목하러 떠나지 말아야 했다는 회한과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다시 혼자된 그는 가족의 흔적을 찾아 헤맸습니다. 옛터에 두 번째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떠난 아내와 딸이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 같아서였습니다. 아내가 말했던 강아지와 함께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기다렸습니다.

기차의 꿈 Train Dreams
도시는 많이 변했습니다. 십 년 만에 사진도 찍었고, 말년에 비행기도 탔지만 숲속의 오두막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무처럼 한곳에 뿌리내리기를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시작을 몰랐던 것처럼 마지막도 조용히 끝났습니다. 죽은 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만큼 중요합니다. 기차처럼 떠돌던 벌목꾼은 한자리에 머물러 기다리는 나무가 됐습니다. 그는 뿌리도 모른 채 태어났지만 결국 뿌리로 돌아갔습니다.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시골 수의사가 마주한 숨들에 대한 기록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시골 수의사가 마주한 숨들에 대한 기록
꽃비는 눈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심한 각막 건조증이 있는 작은 강아지였습니다. 화가였던 꽃비 엄마는 늘 꽃비를 데리고 다니며 안약을 넣어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꽃비 엄마가 쓰러지자 가족들은 꽃비를 잠시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꽃비 엄마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에 꽃비를 데리고 문상을 갔습니다. 문상객들은 꽃비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며칠 후 꽃비 엄마의 지인이 꽃비를 입양했습니다. 꽃비는 엄마와 작별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났습니다. "꽃비 엄마는 사랑하던 강아지를 가장 아껴줄 사람이 자기 친구라는 걸 알고, 그에게 꽃비"를 보냈습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예쁜 강아지, 비처럼 내리는 꽃비를 듬뿍 뿌려준 것(20)"입니다.

족제비에게 물려가다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구구는 스님이 키우던 닭이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감염이 심각했습니다. 다리를 절단하려고 했지만 조언을 구했던 수의사들은 절단 수술을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단하면 나머지 다리에 심각한 체중 부하가 생겨 결국 반대쪽 발바닥 질병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체중이 늘어나도록 가축화된 닭에게 다리 절단 수술은 도움이 되지(25)" 않았습니다. 구구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더 힘들어하기 전에 보내주었습니다. 스님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누구도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구를 만난 이후 닭은 보통 명사가 아니게 됐습니다.

아무도 입양 안 하는 장애묘를 데려다 가족으로 키우는 J, 대도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우울증에 빠진 포메리안 똘이, 사람은 이 세계에서 아주 작은 존재라는 걸 일깨워 준 후투티 티티, 펫숍으로 반품된 장모 치와와 보리, 고속버스 택배로 왔다가 다시 택배 상자에 담겨 반품된 새끼 고양이, "세상 밖으로 나와 처음 만났을 공기와 너의 터지지 못한 첫 숨(147)", 인간이 평생 유전병으로 고통받도록 만든 스코티시폴드종 고양이 루비, 할아버지로 불렸던 노령견 코코, 다락방에서 살며 낑낑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체득하고 소리 없는 개가 된 아미는 "이젠 흘려보내도 될 것, 소중히 지켜야 할 것, 잘 모르겠으니 좀 더 기다려볼 마음(8)"을 만들었습니다.

"알을 낳지 못하고 육계로서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많은 수평아리가 태어나자마자 (...) 산채로 분쇄기에 갈려 다른 동물의 사료가 되거나, 마대에 넣어 압사(211)"되고 있습니다. 수송열과 고창증은 사람들이 만든 질병입니다. "수송열은 동물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들에 의해 발병하는 질병(241)"입니다. 거친 풀을 먹어 천천히 소화하는 소에게 쉽게 살이 찌는 농후사료(옥수수, 콩 등의 곡류를 주원료로 한 사료)를 먹이고 운동을 제한하여 마블링이 생긴 소로 만듭니다. 고창증은 소의 위에 가스를 차게 만드는 농후사료에서 시작한 질병입니다. 인간이 만든 투명 구조물에 부딪혀 국내에서 연간 800만 마리의 새가 죽어갑니다. "지난 50년간 북미에 서식하는 새의 30퍼센트가 사라졌다는 연구(255)"도 있습니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수의사가 됐지만 하루 대부분을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을 합니다. "동물은 아무리 아파도 제 발로 병원에 올 수 없고, 스스로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6)"입니다. 사람과의 대화로부터 도망쳤지만 다른 종들을 만나며 행복해졌습니다. 반려견과 반려조와 함께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7)" 삽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숍에서 예쁜 강아지, 고양이 한 마리를 사는 건 열악한 농장에서 살아가야 할 또 한 마리의 동물을 만들어 내는 일(96)"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서식지를 사람에게 빼앗긴 생명체들에게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허은주/수오서재 20220717 256쪽 14,800원

플루리부스, 행복이냐 개성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플루리부스 Pluribus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모두를 기쁘게 해주고, 파리 한 마리도 해치지 못하고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며 살생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로 바뀌었다. 갈등은 사라졌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됐다. 캐럴은 이런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며 일방적인 행복을 거부했다.

플루리부스 Pluribus
모두 행복한 세상인데 캐럴은 불만과 짜증을 내며 그들과 사사건건 반목했다. 불상사까지 일어나자 캐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떠났다. 혼자된 캐럴은 외로웠다. 세상에 몇 남지 않은 재래식 인간(在來式 人間)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달라고 했다. 캐럴은 관계를 회복하며 잘 지내볼 생각이다.

플루리부스 Pluribus
캐럴보다 더 강하게 저항하는 인간이 나타났다. 마누소스는 행복한 사람들이 주는 도움도 거부하며 홀로 문제를 해결했다. 행복한 사람이 된 엄마가 나타나자 욕부터 날렸다. 산전수전 겪으며 캐럴을 찾아왔지만, 변한 걸 눈치챘다. 그럼에도 캐럴과 마누소스는 재래식 개성을 없앤 개량식 행복을 전복하려고 한다.

집단의 절대적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 개인의 상대적 개성을 중시할 것인가. 함께 공유하는 객관적 행복이 먼저냐, 따로 전유하는 주관적 개성을 우선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당신의 선택은?

망원동 브라더스

망원동 브라더스
망원2동 ◯◯◯-◯◯번지에 있는 못하는 게 없는 만능에, 간첩도 때려잡을 기세의 슈퍼할아버지의 8평짜리 옥탑방. 돈을 벌려고 재능을 쓰고, 그 돈으로 시간을 사서 재능을 키우며 만화를 그리는 오작가가 5백에 30을 내고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이민간다며 전자레인지와 스탠드를 주고 떠났던 전직 만화 출판사 영업부 김부장, 황혼 이혼을 당할 처지인 만화 스토리 작가 싸부, 아는 척, 잘생긴 척, 돈 많은 척하는 삼척동자가 어쩌다 돼지같이 모여살며 동고동락하는 망원동 브라더스가 됐습니다.

슈퍼할아버지는 상대편일 땐 악몽이지만 내 편일 땐 수호천사입니다. 명절만 되면 아무도 슈퍼할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아 중학교 2학년 애들처럼 불안해지는 중2병을 앓고 있습니다. 차례차례 서로 아는 사이가 된 망원동 브라더스는 허기를 쉽게 느끼는 걸 보니 모두 가난합니다. 버스와 지하철이 끊어진 시간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는 옥탑방으로 돌아갈 차비 걱정을 합니다. 경조사라도 갈라치면 봉투에 넣을 돈 걱정이 앞섭니다. 자연스럽게 나이와 짬밥으로 서열을 정리한 망원동 브라더스는 을의 자세와 빈대 정책으로 하루하루를 삽니다.

어떤 만남은 특허받은 숙취 해소 음료보다 탁월한 효과를 냅니다. 오작가가 망원동 옥탑방을 벗어나려고 집을 구하다 조선꽃을 만나며 망원동 브라더스의 찌질하고 궁상맞은 일상에 변화가 옵니다. 옆집의 화재로 인해 좋은 쪽으로 바뀌게 됐습니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 때의 벼락치기 같은 마감이 일에도 삶에도 필요합니다. 마감 때 올라오는 집중력은 결국 스스로를 완성합니다. 망원동 브라더스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 스스로 묶어야 하는 매듭 같은 마감을 했습니다.

망원동 어디쯤에 있을 해장마차에 오랜만에 망원동 브라더스가 모였습니다. 아구아구 콩나물 해장국을 앞에 두고 소주잔을 부딪치며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지나다 슬쩍 옆에 앉아 소주 한 잔 건네며 묻고 싶습니다. 싸부는 여전히 식혜를 드시나요. 웹툰은 잘 그리고 있나요. 지금은 무슨 마감이 기다리고 있나요.

망원동 브라더스/김호연/나무옆의자 20130710 344쪽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