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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선언 - 개혁이냐, 혁명이냐

The Journalism Manifesto, 2022
  • 저널리즘의 적실성relevance1을 위한 보호장치를 자처해온 이 환상들은 사실상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생존을 바란다면 저널리즘은 자율성, 중심성, 응집력, 영속성을 그 핵심에서부터 재고해야 한다. (38)
  • 오늘날 저널리즘 제도의 사회적·정치적·문화적 적실성은 감소하고 있다. 이대로 가만히 두면 저널리즘 제도는 소멸할 것이다. 비할 데 없는 수준의 기술 발전과 데이터의 정교함을 가진 시대, 어쩌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용자층을 확보했을지도 모를 시대이다. 그럼에도 저널리즘의 현대적 가치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보다, 그리고 언론인들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낮은 상태다. 또한 21세기 공동체적 삶에 필요한 의미 있는 감각을 사회가 회복하는 과정에도 저널리즘은 관여하는 바가 거의 없고 그 역할이 미미하다. 이러한 단절은 저널리즘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할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엘리트, 규범, 수용자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에 저널리즘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너무 늦기 전에,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저널리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기 전에 저널리즘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더 생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저널리즘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다시 상상해야 할 때다. 즉, 이상 속의 조건을 현실의 조건과 다시 결합해야만 한다. 재결합을 향한 저널리즘의 노정을 위해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한다. 바로 개혁적 노선과 혁명적 노선이다. (45)
  • 서구와 북반구, 나아가 남반구의 여러 국가에서 저널리즘은 엘리트의 활동이 되었다. 엘리트 정보원에 의존하는 엘리트 언론인에 의해 취재가 이뤄지며,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정치에 관심을 가질 만한 자원과 성향이 있는 엘리트 수용자를 위해 고안된 활동이 바로 저널리즘이다. 여러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이 생각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우리도 공화주의 정치 이론하에서 이러한 저널리즘의 상황이 민주주의와 양립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처럼 민주적 기대치를 낮춘 버전의 시나리오에서마저도 저널리즘은 좌초하고 있다. (70)
  • 저널리즘의 규범적 부적실성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학자들은 규범적 합의가 기자들이 보도하는 현장, 언론사가 존재하는 맥락에서 벗어나서는 번창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걸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저널리즘은 개혁이냐 혁명이냐, 엄연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부적실함의 삼위일체2는 저널리즘의 쇠퇴가 정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생존 가능성이 줄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은 총괄적·집단적·지속적인 성찰과 수정으로만 생존할 수 있다. 규범은 계속해서 높은 수행성을 통해 과업을 이행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며, 그 부적실성은 결국 모든 곳에 있는 언론인들을 나가떨어지게 할 것이다. (102)
  • 저널리즘은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112)
  • 근대성 프로젝트는 언제나 국가 등의 정치체 지향적이고, 합리적이고, 수용적이며, 신뢰할 수 있는 소통을 열망하는 수용자의 존재를 상정해왔다. 하지만 현재 수용자의 의미 형성 과정은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맥락,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연대, 차이, 감정, 표현, 사회성, 회의론과의 연결 속에서 진화하여 산출된 수용자들의 관행은 근대성이 영원할 수 있다는 미련과도 같은 꿈을 앗아간다. 번성, 아니 생존하기 위해 저널리즘은 더 이상 근대성과 근대화의 프로젝트여서는 안 된다. 그 프로젝트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128)
  • 개혁 경로의 핵심은 암묵적인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버리고 노골적이고 명백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으로 이동하는 데 있으며, 변혁적인 행동을 저널리즘이 가야 할 길 그 자체로서 강조하는 것이다. (...) 개혁을 향한 길을 채택한다면 이런 식의 암묵적인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아닌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명백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이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지를 이해하는 핵심으로서 변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134)
  • 개혁 경로의 주된 추진력이 암묵적인 것에서 명시적인 것으로, 배제적인 것에서 포괄적인 것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이동시키는 데 있다면, 혁명 경로는 저널리즘의 상상을 어지럽힌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감춰져 있던 차원과 파생물을 끄집어내어 세상에 공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바람직한 저널리즘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에 대한 특정 가정이 정정되지 않은 채 지속한 데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혁명적 관점은 저널리즘을 불필요하게 협소한 위치에 머무르게 만든 책임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살아남기 위해 저널리즘이 필요하지만, 저널리즘은 자유주의적이든 비자유주의적이든 어떤 유형의 민주주의의 도움 없이 여러 형태로 증식할 수 있다. (142)
  • 저널리즘 재설정의 종착역으로서 혁명을 향해 선회한다면, 언론인들은 엘리트에 대한 의존과 규범에 대한 존중에서 벗어나야 하고, 또한 수용자로부터 구분되고자 했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혁명을 수용하려면 혁명이 일어나지 않게 만든 모든 조건을 근절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방식, 그리고 그 사고방식에 동력을 제공하는 엘리트, 규범, 수용자와의 관계는 저널리즘이 절제된 제도적 감수성을 갖게 한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하려면 저널리즘의 인터페이스로서의 엘리트, 규범, 수용자는 사라져야만 한다. (144)
  • 어쩌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저널리즘 혁명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152)

저널리즘 선언The Journalism Manifesto, 2022/바비 젤리저Barbie Zelizer, 파블로 J. 보즈코브스키Pablo J. Boczkowski, 크리스 W. 앤더슨Chris W. Anderson/신우열, 김창욱 역/오월의봄 20230522 168쪽 14,800원

  • 저널리즘은 "무엇이 뉴스인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 어쩌면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저널리즘 혁명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드골은 제일 먼저 부역 언론인을 처단하며 프랑스 대숙청을 시작했다. 한국 언론은 내란범들에게 마이크를 대줬다. 기계적 중립인척 반격, 논란, 불투명, 의혹, 대란, 충돌, 우려, 공방 등을 가장하며 내란에 부역했다. You Are Not Alone. 니들은 언론이 아니다. 한국 저널리즘은 기레기로 고착했다. 언제 멸종하느냐만 남았다. 과거로 돌아갈 의지는커녕 일말의 반성도 없다. 새로운 K-저널리즘 탄생이 빠르다. 고쳐 쓰기보다 새로 장만하는 게 빠르고 깔끔하다.


  1. 적실성 : 適實性(실제에 들어맞는 성질)
  2. 부적실함의 삼위일체 : 자유민주주의에 영합한다, 권력에 영합한다, 북반구에 영합한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한국에서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이 겪고 나눈 이야기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한국에서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이 겪고 나눈 이야기
  • 장애인. 어감 자체가 무겁고 왠지 회피하고 싶어지는 단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그들 마음속에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어린왕자가 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구인이던 우리와 달리 먼 우주에서 온 듯 보이는 그들은 지구인의 생활양식을 매우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배워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12)
  • 신이 선물한 건 장애가 아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로 인해 나와 우리 가족이 얻게 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바로 신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25)
  • 비장애 형제자매들만이 느끼는 아픔이 있다. 고충이 있다. 부모는 낳은 죄라도 있지, 이 아이들의 죄는 무엇일까?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형제자매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눈은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63)
  • 이 아이는 대인관계에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주변을 포용할 줄 아는 성인이 될 것이다. 장애인 동생은 틀린 사람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걸 이미 삶 속에서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70)
  •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투사가 되어야 하고 싸움닭이 되어야만 한다. 말도 못하고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식을 대신해 엄마인 내가 싸움닭이 되어 내 아이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고 보자보자 하면 보자기로 본다더니 장애인 인권이라는 게 딱 그렇다. (79)
  • 무엇보다 '내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도 될까?'라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나쁜 엄마' 반열에 올라버렸다. 아이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 행복을 찾아가는 삶이란 아이를 포기하고 나만 행복해지자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면 이제부터 장애인 활동보조인에게 치료실에 왔다 갔다 하는 짐을 나눠 주고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119)
  • 장애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도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장애인은 삶의 한순간에 짧게 스쳐 간 불쌍한 '타인'이 아니다. 언제고 내가 당할 수 있고 내 가족이 당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겪고 있는 '이웃'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어 했던 장애 이해 교육의 핵심이다. (128)
  • 나는 이제 앞으로 마트에서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면 아들이 진정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줬다가 장을 보고 싶다. 아들이 진정될 때까지 지하주차장이 아닌 마트 안에서 기다리고 싶다. 울고 떼를 써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들이 경험을 통해 배웠으면 좋겠다. 아들이 스스로 깨친 뒤 휴대전화 없이도 장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동네 주민들이 봐도 못 본 척, 도와주면 아마 가능할 것이다. 단지 시선을 거두어주는 일만으로도 내 아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83)
  • "장애인이 왜 장애인인 줄 아세요?" 내가 장애의 사전적 의미를 말하려던 찰나, 정아 씨가 먼저 답을 알려준다. "장(長), 애(愛), 인(人).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장애인이래요." 장애인(長愛人).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을 사람들. 터져 나오는 기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기쁨은 곧 여운이 되어 마음을 울린다. 長愛人…… 長愛人…… 長愛人…… 마음속에 충만함이 가득 차오른다. (236)
  • 나는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장애'에만 매몰돼 '발달'이라는 측면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 아들은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기에 앞서 느린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한 명의 사람이기도 했는데 내가 그것을 무시하고 있었다. 자식의 인생을 부모인 내가 재단하려 하면 안 된다. 장애를 가졌다 해도 아이는 자기의 욕구가 있을 테고, 부모인 나는 자식의 욕구를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던 것이다. 부모인 내가 정해놓은 틀 안에 아이를 가둘 게 아니라. (260)
  • 그런 말이 있어요.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태산만큼 정성을 쏟아도 손톱만큼 자란다고요. 하지만 비장애인 자식은 장애인 자식에게 쏟는 정성의 반만 들여도 태산만큼 자란다고요. (266)
  • 사실 '장애도'라는 섬은 없다. 어느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무형의 섬 '장애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곤 장애인 자식만이 전부인 섬 '장애도', 오로지 자식의 '장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섬 '장애도'. 그 섬은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하고 있었다. (276)
  • 이제 나는 '장애도'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보통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엄마들처럼 말이다. 아들의 장애는 아들이 가진 특성일 뿐이다. 아들의 장애가 더 이상 우리 가정의 장애는 아니다. 그것을 알게 되었다. (281)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류승연/푸른숲 20180328 308쪽 15,000원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이 적어서가 아니라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장애인을 전염병 환자나 '장애인 바이러스'로 봅니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장애인에게 불평등한 사회라는 방증입니다.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025년 말 기준으로 263만 여명이고 전체 인구 대비 5.1%입니다. 후천적 원인에 의해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88.1%입니다. 즉 장애는 대부분 후천적입니다. 우리는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장애도(障碍島)에서 벗어나 長愛人하도록 힘쓰겠습니다.

1923 인상네컷

1923 Cara Dutton
나는 남자가 아니야. 남자는 빨리 죽이지. 난 여자니까 널 죽이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1923 Elizabeth Strafford
20세기인데 말이에요. 자동차랑 비행기도 있고, 영화관도 있는데… 그런데도 현관을 지켜야 하죠.

1923 Teonna Rainwater
왜 그들을 가르쳐야 하죠?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건 바로 그놈들인데.

1923 
Alexandra Dutton
당신이 어디든 나는 갈 거예요. 그게 죽음을 뜻할지라도요.

모든 서사는 여자가 만든다. 남자는 거들뿐.


덧. 산전수전 겪으며 겨우겨우 옐로스톤에 도착한 알렉스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야만 했나요. 안타까워서 그래요. 안타까워서.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
1925년 8월 21일 오후 6시경. 여자 셋이 머리를 잘랐습니다. 허정숙은 주세죽, 고명자와 함께 '결발의 신여성으로부터 단발낭자 송락머리(13)'가 됐습니다. 단발은 별다르지 않았지만, '단발한 사람이 여자이기 때문에 그만큼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견이 분분(15)'했습니다. 신문에 비꼬는 투의 시평도 실렸고, 길거리에서는 구경거리가 됐습니다.

여기저기서 이야깃거리가 된 것은 '몇천 년간 노예가 되어 오직 복종을 임무로 삼게 하고 굴욕을 인내케 함을 당한 자는 즉 피정복자인 여성이요, 그러한 횡포를 행사한 것은 남성이었(20)'기 때문입니다. '풍속이나 사상 그 모든 것은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고, '과거 시대에 있어서 정의라고 생각하고 실행하던 그것이 현재에 와서도 영구불변하게 역시 정의라고 인정되는 법은 없습니다(8)'.

신여성이지만 월급 생활자의 비애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향상과 진보로 일상 생활이 창조적이라야만 완전한 인간 생활일 것인데,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니 자기를 위하는 인격을 수양하는 창조적 노력을 하기는 고사하고 분주한 데 끌리어 상식을 늘릴만한 잡지 한 권 들칠 사이조차 없으면서도 실생활은 웬일인지 무미하고도 단조한 느낌(40)'을 주어 가련하고 앞길이 암암하다고 토로합니다.

여성은 '경제상의 독립을 얻지 못한 까닭에 이것을 말미암아 생활의 자유를 얻지 못하고 남자의 노예(58)'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고 여자가 노동자가 되는 것은 '결국 남자보다 임금이 싼 여자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에 그칠 따름이며 아무것도 여자의 지위가 높아지거나 여자의 활동 범위가 확장되는 것(61)'이라고 진단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벌어먹는 노동계급이 되면 여자의 권리가 조금씩 신장하여 가지만, 그 대신에 또다시 여자는 직업과 가사의 두 가지 무거운 짐을 부담하고 매우 괴로운 상태(59)'가 된다는 것도 예견했습니다.

'풍속이나 사상 그 모든 것은 시대를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결코 과거 시대에 있어서 정의라고 생각하고 실행하던 그것이 현재에 와서도 영구불변하게 역시 정의라고 인정되는 법은 없습니다(8)'. 여성이 해방을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적으로 근본적 해방을 부르짖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선 그 길을 찾아 밟기를 바란다(63)'고 조언합니다. 여성 해방은 '단지 남성을 반역하는 운동으로서는 결코 승리를 얻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이러한 남성을 만들어내는 현 사회조직을 개혁하는 운동이라야만 완전한 해방이 온다는 것(45)'을 강조합니다.

단발한 허정숙(1902~1991), 주세죽(1901~1953), 고명자(1904~1950)는 '조선 공산당 여성 트로이카'로 불린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가이자 직업이 혁명이었던 독립운동가입니다. 주세죽은 여운형이 주례를 본 결혼식에서 박헌영과 함께 독일어판 '자본론' 위에 손을 얹고 결혼했습니다. 고명자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일제 말기에 친일행로를 걷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다시 사회주의 운동을 했지만 한국전쟁 중 사망하여 누군가는 빨갱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친일파로 불리고 있습니다. 허정숙은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기자였고, 직접 총을 들고 싸운 독립투사였습니다.

백여 년 전 가장 급진적이었던 허정숙의 처지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발을 향한 비난은 여성혐오로, 남자의 험담패설과 질타는 맨스플레인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낙태죄 폐지는 요원하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여성의 단발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허정숙/두루미 20200217 100쪽 10,000원

AI 판사가 왔다

AI 판사가 왔다
2021년 9월, 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를 하다가 일반교통방해죄로 조사받았다. 검찰청이 해체되고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은 그렇게 묻혔다. 정권이 바뀌었다. 검찰청이 부활하고 공소시효 10년을 앞두고 약식기소 되었다. 정확히는 9년 8개월 후에 벌금 300만 원에 약식기소 되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불기소의 무덤에 잠들었다 부활한 내 사건은 인공지능 재판에 얻어걸렸다. 벌금 300만 원 판결이 나와 항소했지만 기각되었다. 판결문에 오류가 발견됐다. 형사소송법에 없는 495조를 언급했다. 할루시네이션 즉 사법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오류다. 이런 식으로 오류를 일으키면 항소도 상고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세상이 됐다.

국회의원 보좌관인 김복희는 의원에게 따라 하라고 했다. "모든 법의 가장 첫 번째 목표는 정부와 높은 사람의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책임은 떠넘기고 정치인은 착한 척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법을 만드는 원리이자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김복희는 새로 만들 법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서 소관 위원회 위원장에게 가져갔다. 내용을 들은 보좌관은 "로봇 수술 안전 보장법"을 새로 만들자고 했다. 내용은 그저 그렇지만 제목을 잘 짓자고 했다. "로봇 수술의 안전 보장과 환자 생명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됐다가 상투적인 말을 집어넣어 "차세대 로봇 수술의 안전 보장과 환자 생명 보호를 위한 맞춤형 종합 대책 위원회 등에 관한 특별법"이 되었다. 국회의원들은 내용은 없지만 이름만 그럴듯한 법을 인공지능에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법령은 빠르게 늘어났다. 2020년 중반에 150만 건이든 법령의 조항 숫자가 1억 개가 되었다. 인공지능을 돌리면 누구라도 바늘 도둑을 소도둑으로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2036년 10월 9일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일반 재판과 국민 참여 재판 그리고 AI 판사 디케의 재판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디케는 친절하게 답변했고, 판결문을 바로 공개했다. 판결은 공정했고, 평판은 좋았다. 디케의 재판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법정에는 AI 판사의 판결문을 대독할 인간 보조 판사 두 명이 서 있다. 참고서만도 못한 인생을 살아왔던 윤은 교과서와 같은 인생이었을 타락판사라는 해커를 만났다. 둘은 AI 판사 디케를 해킹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안드로이드 살인이 일어났다. 디케는 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새로운 법의 시대에 함께 승차해 주세요. 낡은 법전에 올려놓고 있는 손목이 잘려 나가기 전에."

2046헌마389 러브로봇금지법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개정된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9명의 재판관 중 1명의 재판관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임명되었다.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 중 한 명도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인공지능 재판관인 '수헌 1호'의 의견은 화제가 되며 효능감이 대단해졌다. 수헌 1호는 이론적 근거와 논리적 일관성 측면에서 인간 재판관을 압도하곤 했다. 러브로봇금지법도 처음에는 수헌 1호 재판관만 위헌 의견을 냈지만, 마지막 평의에서는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족수 여섯 명이 채워졌다. 선고일 하루 전, 긴급 평의가 열렸다. 처음부터 위헌 의견을 낸 수헌 1호 재판관이 합헌 의견으로 돌아섰다. 수헌 1호 헌법재판관은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 법정에서 만든 판결문과 판례를 학습한 인공지능 판사라면, 당장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재벌은 삼오법칙(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벗어나지 않을 게다. 지금까지 그렇게 판결을 내렸으니까 당연하다. 다만 이러한 불합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학습한 AI 판사라면 무방하다. 그 이후는 어찌 될지 도통 모르겠지만, 지금은 소설이 사실이 될지 걱정이다.

AI 판사가 왔다/정보라, 조광희, 곽재식, 박진규/&(앤드) 20260320 208쪽 13,000원

樂書 AI의 미래

AI의 미래
증기기관 발명 초창기, 탄광에서 물을 빼내는 기술이 향상되자 탄을 캐는 어린아이들이 더 가혹한 노동을 했다고 한다. 기술은 선했어도 자본은 늘 악했다. AI도 그러지 싶다.

면허
운전면허가 수동과 자동으로 발급되듯이, 국가공인자격증도 AI 활용 여부에 따라 수공업 면허와 지능형 면허로 구분해서 나오지 싶다.

왜 싸워요
나 자신과 싸워서 왜 이기려고 해요. 내가 져도 내가 이기는데...

유행
다음 중에서 유행이 가장 짧았던 것은 무엇일까요?
①탕후루 ②두쫀쿠 ③김영삼 지지율 ④이재명 지지율

흠
공직 후보자의 흠을 찾으려면 고개 들어 이혜훈을 보라.

지도자
나쁜 지도자는 억누르며 강요하고, 어리석은 지도자는 지지율을 쌓고, 좋은 지도자는 공동체를 만들고, 위대한 지도자는 미래를 보여준다. 역사가 그렇다.

배상
네팔, 중국·미국·인도에 공식 배상 요구···"재난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다" 백번천번 지당한 말씀. 한국은 자발적 납부 요망!

지지율
부동산 말고 역적을 때려잡았으면 지지율이 하늘을 뚫었지요. 180도까지는 아니더라도 99도 정도로 판을 뒤집을 기회였는데 글렀다. 계곡 정비할 그릇을 너무 큰 자리로 밀어 올렸다. 아울러 두 번이나 180석으로 개헌 빼고 다하라고 했더니 개헌만 떠든다. 니들은 90석이 적당하지 싶다. 조동아리로 지지율을 올리기도 늦었죠. 본심을 들켰거든요.

레드 콤플렉스
"민주화 이후의 세대여서 레드 콤플렉스가 없다. 레드 콤플렉스를 가지기에는 역사를 너무 모른다. 근데 모른다는 게 적당히 잘못 아는 것보다는 훨씬 좋더라고요." (24:49) - 정지아 작가

본심
친노동, 친여성, 친환경 정권은 한 번도 없었죠. 설레발치며 흉내만 어설프게 내다 그마저 접지요. 권력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나게 한답니다. 변하는 게 아니라 본심이 나오는 거랍니다.

노포
한국노포연맹의 비공식 문건에 따르면, 노포의 89.2%가 자가 건물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합니다. 노포는 맛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부동산이 자가이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구조적 다수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고 구조적 다수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재명 정권. 모든 지지자를 희망과 실망 사이에 머물게 하는 것이 민주당의 이익이 되었다. 이제는 그마저도 안 한다.

일언반구
직전 총리와 법무장관이 중수청장과 공소청 직제 개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네요. 미흡하나마 바라던 방향이었군요. 계곡이나 정비할 마름을 너무 높은데 앉혀서 환장하네요.

의료민영화
누가 의료민영화를 얘기하면 고개 들어 치과 옆 동물병원을 보게 하라.

청와대에 권하는 딱한권의 책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집회에 나갔어요.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 이희주, 일석, 구구, 《케이팝 응원봉 걸스 - 광장에서 만난 팬걸에게 묻다》(클레이하우스, 2025), 215쪽

인사청문회
허들일 땐 밑으로 가고 림보일 땐 위로 가네. 양팔간격 좌우로 나란히. 엎드려뻗쳐!

부캉이
상어가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상어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비풍초똥삼팔
바람보다 먼저 눕는다는 판새들이 고갤 쳐들다 못해 들이받네요. 첫끗발이 개끗발이 된 걸 눈치깠다는 거지요. 판을 엎든지 비풍초똥삼팔을 차례차례 내든지...

한줄평
기자회견 끝내고 남태령에 가라. 그럼 더 지켜보겠다.

제노사이드, 드디어 새로운 인류가 나타나다

제노사이드 ジェノサイド, 2011
집단 린치를 하던 유인원 중 두 마리가 피를 흘리고 있는 침팬지의 팔을 양쪽에서 쥐고 타이밍을 계산한 움직임을 보이며 들어올렸다. 굉장한 연계행동이었다. 폭행을 견디던 원숭이의 몸이 일으켜지더니 정면에 있던 대장 원숭이가 그 팔 안에서 뭔가를 뺏었다. (...) 대장 원숭이는 어린 원숭이의 양발을 쥐고 흔들더니 큰 나뭇가지에 머리를 쳤다. 어린 원숭이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대장 원숭이는 전혀 개의치 않고 어린 원숭이의 팔을 찢어 먹기 시작했다. (203)

〈가디언〉 작전을 수행하려고 이동하던 예거 일행이 목격한 광경이다. 제노사이드(특정 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대량 학살하는 행위)가 벌어지는 콩고 정글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40여 명의 피그미족을 죽이고 본 적 없는 생물과 만나면 제일 먼저 사살하는 것이 〈가디언〉 작전이다.

인류의 진화가 일어나면 얼마 안 가 우리는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북경원인이나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다. (248)

30여 년 전에 발행된 「하이즈먼 리포트」의 정식 제목은 '인류의 멸망 요인에 대한 연구와 정책으로의 제언'이다. 〈가디언〉 작전은 누스(NOUS)라는 새로운 인류를 제거하는 일이다. 누스(NOUS)는 초월적인 지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생물 진화의 제3단계 정신권의 어원이 된 말이다. 본명이 '아키리'인 누스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뇌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피그미족 3세 어린아이지만 초인적인 지성을 가졌다. 백악관은 누스와 부족민 41명뿐만 아니라 작전을 수행하는 예거 일행까지 제거하려고 한다. 최우선 목표는 이 세상에 한 개체밖에 없는 인류종을 '제노사이드'하는 것이다.

사람 속(屬)의 지적 능력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현생인류의 지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말이었다. 지성만이 아니었다. 「하이즈먼 리포트」가 지적하고 있는 초인류의 특질은, 그대로 현생인류의 결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도 보유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로서의 습성인 것이다. 식욕과 성욕을 채운 인간만이 세계 평화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한번 기아(飢餓)상태와 직면하게 되면 숨어 있던 본성이 그 즉시 드러났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사상가가 이미 주창한 대로 사람은 '부족하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는' 생물이었다. (317)

본 적 없는 생명체를 맞닥뜨린 예거 일행은 제3의 조력자 덕분에 작전의 실상을 알게 된다. 인류는 달표면 착륙에 성공했지만 1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의 움직임은 예측하지 못한다. 아키리는 나뭇잎의 움직임을 아는 능력이 있다. 예거 일행은 '가디언'이라는 작전명 대로 피그미족 어린애 '아키리'의 진짜 보호자가 되어 아프리카를 탈출하기로 한다.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선은 다른 국민을 죽이지 않는 행위로밖에 드러나기 어렵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인간이야. (475)

예거 일행이 말살하려던 피그미족은 부의 독점없이 사냥감을 평등하게 나눌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예거는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키리가 인간의 잔학성을 배우지 않길 바랬다. 아키리가 동종 간의 살육을 일으키며 서로 잡아먹는 인간의 행위를 규탄할 지성을 가지길 진심으로 빌었다. 예거는 인간을 멍청한 종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너를 지키려다 죽은 인간을 잊지 말라고 아키리에게 호소했다.

이상하게 발달된 전두부나 유형성숙(어린아이의 성질을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간직한다는 뜻의 이론)을 보여 주는 해부학적 소견까지 고려해 본다면 이 아이는 대뇌신피질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다른 종류의 인간이며, 즉 인류의 진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네. DNA의 어느 영역에 변이가 일어났는지, 아니면 현생인류와 교배가 가능한지 등의 의문에 대해서는 문명사회로 데려가서 조사해 볼 수밖에 없군. (264)

인류의 역사는 지배욕에 사로잡힌 멍청한 인간이 저지른 살육을 영웅담으로 미화했다. 냉담하게 말해서 역사학은 제노사이드를 일으키는 현생인류에 대한 기록이다. 어린 원숭이를 먹는 유인원과 다를 바 없다. 우여곡절 끝에 아프리카를 탈출한 예거 일행은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에는 아키리의 누이 에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마는 또 한 명의 진화한 인류였다.

에마와 누스의 자손은 현생인류는 결코 만들 수 없는 경계선이 없는 세계를 만들며 살아야 한다. 역의 플랫폼에 떨어진 외국인을 구조하거나 목숨 걸고 신약을 개발하는 극소수 사람도 진화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류는 제노사이드를 기록한 역사학이 아니라 진화한 극소수 인간에게서 평화를 배우고 사랑하는 종족이길 바란다.

제노사이드ジェノサイド, 2011/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김수영 역/황금가지 20120618 688쪽 18,000원


덧. 오탈자
  1. 492쪽 2행 물품을 싫은 → 물품을 실은
  2. 612쪽 1행 속도 1만 1000미터 → 고도 1만 1000미터
  3. 621쪽 14행 정훈은 공학 도착에서 → 정훈은 공항 도착에서
  4. 668쪽 7행 시작하지 않을까? → 시작하지 않을까?"

반지수의 책그림

반지수의 책그림
  • 달과 6펜스는 둘 다 동그랗게 은빛으로 빛나지만 각각 다른 이상을 가리킨다. 달은 꿈을, 6펜스는 현실을 비유한다. 나는 스트릭랜드가 6펜스가 아닌 달을 선택한 것이 다행스러웠다.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물어보곤 했다. "그림으로 먹고살기 힘들지 않아?"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6펜스가 아니라 달을 택할 거야.' 그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남들이 정한 기준대로 살지 않겠다고,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서 가장 괴짜이고 독단적이고 예술에 미친 스트릭랜드를 닮겠다고. 사실은 당신도 책임을 몽땅 벗어 던지고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지 않냐고, 어린 시절 꿈을 이루고 싶지 않냐고 되물었다. (48)
  • "우리는 앞면과 뒷면이 아닌 옆면으로 동전을 세우는 방법을 탐색하기 위해 공부를 해. 뭔가를 말하기 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무지한지 깨닫고 말을 해. 여유 부릴 틈이 없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 (76)
  • 기본 인문 소양을 닦아둔 것도 잘한 일이다. 근본적이고 큼직하고 커다란 책을 어릴 때 봐두길 잘했다. 10대, 20대에는 책 하나하나가 모두 커다란 발견이었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본의 아니게 작은 그릇에 무언가를 담는 독서가 아니라 내 그릇을 계속해서 부시고 또 부시는 독서를 해왔던 것 같다.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그때 나는 내 그릇을 키우고 내 안에 큼직큼직한 공간을 만들었던 것 같다. (81)
  • 책에는 '구성'이 있다. 작가의 생애와 생각이 순서대로 편집되어 한 인간의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화집 감상은 내겐 선배, 이 업계의 길을 먼저 간 사람의 노트를 훔쳐보는 일이다. 하여 수업 노트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이미 죽은 사람도 있고, 한국에서 전시회 한 번 연적 없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화가를 책 한 권으로 만난다. 어떻게 이 종이 더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139)
  • 표지 작업을 꾸준히 하며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다 보니 어쩐지 책을 더 사고 싶다. 편집자 친구를 만났을 땐 단지 좋은 책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는 독자의 마음으로 책을 샀지만, 이제는 출판계에 발가락 두 개쯤 담그고 있는 신세다 보니 내가 속한 산업을 위해 나의 자본을 쓴다는 느낌이다. 내가 몇 권 산다고 산업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좋은 책을 보고 주변에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자꾸 떠들다 보면 내가 속한 산업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커지지 않을까, 이 산업이 커져야 나도 먹고살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계산을 해대며 또 책을 사고 만다. (150)
  • 고미 타로는 이런 말도 한다. "책과의 만남이라는 건 개개인의 인생에 걸친 사건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반드시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는데 책이라고 그럴까. 누구를 이기기 위해 책을 고르는 모습은 이제 나에게 자연스럽지 않다. 마치 계획 없이 떠난 여행에서 벌어진 사건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듯, 요즘은 우연히 다가오는 책 한 권 한 권을 소중한 만남으로 여기며 즐기려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책을 읽은 후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라고 시키지 않는다. 대신 '또 읽고 싶은 책이다', '친구에게 추천하고 싶다' 같은 항목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이렇게 읽으면 분명 마음에 부담이 덜 할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읽고 나서 무언가를 반드시 꺼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즐기는 마음으로 책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169)
  • 산책을 다루는 책이라면 주저 없이 사버린다. (188)
  •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두 번 볼 책을 찾기 위해서다. 어떤 책이든 첫 독서는 두 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책 한 권을 찾아 나서기보다 나와 어울리는 책을 두 번 보는 게 더 즐겁다. 정말 마음에 들면 작업하는 책상 곁에 두고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탐독한다. 이 책들도 마찬가지. 여러 번 자주 읽는데, 그때마다 항상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 단지 책 속 인물이 아닌 동료로 생각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되새긴다. 현실에 묶여 있다는 감정이 들면 어김없이 꺼내 든다. 아무 곳이나 펼쳐도 내게 필요한 말이 잔뜩 적혀 있다. (221)
  • 처음 '책에 대한 책'을 써보자고 제안받았을 때, 감히 내가? 하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많이' '좋은 책'을 읽지 않았을 거란 막연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며 깨달았다. 나는 운명 같은 책을 꾸준히 만나 왔음을, 그 책과 만나며 삶의 방향을 결정해왔음을. 나만의 독서 역사, 나만의 독서 지도를 갖고 있음을. 책이 1순위가 아니었던 적은 있을지라도 무관했던 시절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232)

반지수의 책그림/반지수/정은문고 20240229 236쪽 23,000원

산책을 좋아하고 산책에 관한 책이라면 주저 없이 사버린다는 작가는 《보통의 것이 좋아》에서 "봄날의 산책은 남은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준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산책에 관한 최고의 예찬으로 남았습니다.

어떤 책을 봤을 때 표지 그림이 눈에 익어서 찾아보면 반지수 작가의 그림이더군요. 부드러우며 정감이 넘치는 따뜻한 그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가가 그렇게 싫어했던 '읽은 책과 그린 그림'에 대한 독후감을 읽었습니다. 글과 그림을 보며 또 다른 인생 매뉴얼을 찾았습니다.

나의 덴마크 선생님 -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 배우기

나의 덴마크 선생님 -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 배우기
  • 성인이 된 이후에 나는 두 곳의 대안학교에 다녔다. 첫 번째 대안학교는 지리산에 있는 실상사 작은학교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학교인데 나는 서른여섯 살에 영어교사로 입학했다. 교사는 채용되어 근무한다는 게 세상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지만, 학생들 못지않게 철없는 교사였던 나에게는 입학했다는 말이 어울린다. 또 다른 학교는 덴마크 세계시민학교(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IPC)다. 이곳에는 서른아홉 살에 진짜 학생으로 입학해서 두 학기를 다녔다. (7)
  • 100년 가까이 그 자리에 굳건히 서 있는 학교라면 힘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직접 학생이 되어, 그게 어떤 교육인지 한번 받아 보고 싶었다. 학생이 가장 행복한 나라 중의 하나라는 덴마크에 가서 학생이 되어 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선생님이 필요했다. 그저 선생님이라고 부를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른아홉이라는 나이에 별빛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지리산을 뒤로하고 먼 북유럽으로 떠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이라 불리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덴마크로 향하는 시절이었다. 그들 모두는 먼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10)
  • 내가 다니는 IPC와 같은 시민학교를 덴마크에서는 폴케호이스콜레 (folke højskole)라고 한다. 줄여서 호이스콜레(højskole)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쓰는 IPC에서는 '포크 하이 스쿨(folk high school)'이라고 번역해서 부른다. 평범한 사람, 민중이 누구나 갈 수 있는 교육기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이 스쿨이라고 번역된대서 고등학교는 아니다. 이곳에는 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대학에 가거나 본격적인 직업을 갖기 전에 온다. 이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긴 여행이나 자원봉사를 하며 1~2년간의 갭이어(gap year)를 보내는 중이다. (20)
  • 좋은 교사란 언어적인 이유로든 심리적인 이유로든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학생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구나. 지금 이 학생의 상태가 어떤지,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50)
  • 더보기...

나의 덴마크 선생님/정혜선/민음사 20220128 320쪽 16,000원

덴마크에는 누구나 갈 수 있는 대안 학교인 호이스콜레가 70여 개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알바하다가, 바텐더를 하다가, 공항에서 청소하다가 입학합니다. 시험도 없습니다. 학업 성과는 젊은 시절 호이스콜레를 다녀 본 부모나 조부모가 추천하는 걸로 알 수 있습니다. 졸업생들은 이 학교가 나에게 큰 변화를 줬다고 얘기합니다. 스무 살 정도 나이가 많은 동양 여자에게 나이를 묻거나 결혼했느냐고 대놓고 묻지 않습니다. 당신이 정치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언제나 당신을 선택한다는 걸 가르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객지 같은 학교가 늘었으면 합니다.


덧. 오탈자
93쪽 1행 나의 그의 빠른 영국식 → 나는 그의 빠른 영국식

단역배우 김순효 씨

단역배우 김순효 씨
엄마는 기차를 타고 어디를 좀 가자고 했다. 경주는 그렇게 고창에 가게 됐다. 미국에서 결혼해 살던 경주는 남편과 사이가 틀어져 혼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베개에 머리가 닿은 순간 그 말이 잠꼬대"가 되는 엄마는 기차에 오르자 잠을 청했다. 여든셋인 엄마는 일흔 넘어 단역배우가 됐다. 정읍에서 내려 앞장선 엄마를 따라 고창행 버스를 탔다.

엄마와 경주는 고창읍성으로 향했다. 읍성에 도착해 걸어가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앞서가던 엄마는 손으로 나무를 가리켰다. 소나무가 대나무의 몸을 휘감은 채 뻗어 있었다. 엄마가 물었다. "누가 누구 땅에 들어온 거 같노?"

사람들이 떠난 논이 습지로 변한 운곡습지에는 세계 최대 고인돌이 있었다. 누가 여기에다 돌을 고였을까. "그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고인돌만은 남아 삼천 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다." 고인돌처럼 쪼그려 앉은 엄마는 돌멩이로 고인돌을 만들고 있었다. 굄돌을 고이고 윗돌을 얹었다. 엄마는 고인돌이 몇 개인지 물었다. 경주는 고창 지역에만 천오백 기가 넘는다고 알려줬다. 엄마는 그보다 천배는 많다며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쌓은 돌탑들이 천지빼까리로 있었다.

윤슬. 한국계 1.5 세대 이민자인 인철은 제일 예쁜 한글 단어라고 했다. 딸을 낳으면 '윤슬'로 이름을 짓고 싶다고 했다. 경주는 아기를 갖고 싶지 않았다. 영어 이름을 채근하는 인철에게 경주는 아무 뜻없이 그냥 말했다. 엠마. 경주는 결혼하고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지난 7년 동안 피임해 온 걸 인철에게 들켰다. 경주는 태어난 곳이 어딘지 모르는 첩년 딸이었다.

엄마는 오래전에 고창에 땅을 사뒀다. 경주와 함께 그 땅에 오르자 빈터 가운데쯤에 산소가 하나 있었다. 산소 옆쪽에는 상석으로 보이는 돌이 있었다. 엄마는 산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절을 하라고 했다. 엄마는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외손녀 절 받으이소. 경주라예." 경주는 산소 앞이 아니라 옆에 상석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상석이 아니라 고인돌이라며 절을 올리라고 했다. "그짝 딸이 왔어예. 마이 보고 싶었지예. 고마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예. 경주라예. 절 받으이소." 엎드린 경주는 그 뒤로 엄마가 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경주는 태어난 곳을 물으면 '고창'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됐다. 낳아준 사람의 이름도 알게 됐다. 고창에 다녀오고 얼마 안 돼 엄마가 아팠다. 항암치료도 거부했다. 거처를 고창으로 옮기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 영화를 끝으로 엄마가 사람을 못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 엄마는 산소 옆에 있는 고인돌은 바로 알아보았다. 전부 기억했다. 단역배우 김순효 씨는 고창에 다녀온 이듬해 같은 계절에 돌아가셨다.

미국으로 돌아간 경주는 다섯 살난 딸아이를 입양했다. 운이 좋게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엄마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는 아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 엠마
  • 왜.
  • 엠마라고. 엠, 마.
  • 오냐, 엄마 여그 있다. 와, 잘 안들리나?

경주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듬해 봄에 인철과 엠마와 함께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는 수목장으로 치러져 소나무가 되어 있었다. 고창에도 들렀다. 엠마는 처음 먹어보는 대봉감을 좋아했다. 경주는 엄마가 만든 고인돌 옆에 새로이 엄마의 고인돌을 만들었다. 엄마 고인돌 옆에 돌을 주워다 조그마한 고인돌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엠마는 자기가 만들었다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햇빛이 만든 세 고인돌의 그림자가 같은 방향으로 드리워지면서 하나의 그림자로 합쳐졌다. 그림자가 된 고인돌들은 몸피가 커졌다. 함께 하는 고인돌은 세계 최대의 고인돌만큼 커졌다. 소설인 듯 소설 아닌 소설 같은 작가의 말까지 재밌고, 팟캐스트는 더 재밌다.

단역배우 김순효 씨/이수정/다산책방 20250314 280쪽 17,000원

樂書 휴먼, 나무를 심어라

폭염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방법
휴먼, 나무를 심어라. 식목이 그대를 구원하리라.

여름
와, 여름이다. 이 소리는 내가 올해 처음 찬물로 물칠(샤워)했을 때 내는 소리입니다.

6.3지방선거
내란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선거 결과다. 눈 떠보니 선진국, 개표하니 후진 나라. 미들핑거 코리아!

축구화
월드컵 선수들 축구화를 보면 힘차게 뛰는 LGBTQ 상징이 보입니다.

2002 월드컵 후기
2002년 월드컵 1차전 폴란드를 이기자 붉은악마 셔츠가 동이 났죠. 급히 구한 짝퉁 셔츠를 입고 쭉 응원했답니다. 3, 4위전은 영암 월출산 밑에서 봤답니다. 짱뚱어탕 먹고 들어가 널브러져 점수내기 만원빵이 벌어졌습니다. 예상은 단출했고, 나 홀로 2:3 터키 승에 걸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한 골 먹으니, 한국 완봉승에 걸었던 양반들 탄식으로 월출산이 꺼질뻔했죠. 한국이 마지막에 한 골 넣고 끝나며 2:3으로 졌죠. 국대 축구 보며 내기하실 분들은 2:3 패에 거세요. 끝까지 지켜보다가 국대가 이기면 기분 좋게 만 원 내고요. 그날 추렴한 돈으로 산악동호회원들 대부분이 노래방에서 거의 밤을 새우고 월출산을 골골대며 넘었답니다.

잠실 꼴통과 짭새
극우꼴통어게인 > 경찰 > 이재명 > 노동자 ≥ 농민 ≥ 장애인 > 여성. 경찰은 요래 생각한다.

중앙일보
회생 신청한 중앙그룹은 복지는 퍼주기라든가, 이제는 잘 주기 고민하자던 그들이 평소 지향한 경제 논지대로 얄짤없이 처리했으면 싶다.

이재명 지지율 하락 원인
오른쪽에서 사람을 당겼으면 왼쪽으로 정책을 밀어붙여야지요.

골대
피파 비공식 조직인 축구시설개량연구단에 따르면, 역대 월드컵 전 경기를 분석한 결과 골대가 12번째 선수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골대를 맞힌 공이 들어갔다면 승패가 바뀌었을 경우가 38.3%라고 밝혔답니다. 연구단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골대를 세 번 맞추면 1점을 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월드컵 우승 비결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프랑스, 우루과이, 잉글랜드, 스페인. 월드컵을 22번 했는데 우승국은 8개 나라뿐입니다. 전통조기축구역사학회의 오랜 연구에 따르면 4강에 유럽과 남미팀만 올라가기 때문이랍니다. 예외가 1930년 미국, 2002년 한국, 2022년 모로코뿐이고요. 상당히 날카롭고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십자사 회장
인요한 임명을 본 동네방네리더십연구회 논평에 따르면, 이재명은 한쪽 새끼발가락 끝만 왼쪽을 딛고 있으면서 온몸은 오른쪽 끝을 향하고 있다고 평했답니다. 한편 연구회에 따르면 이런 연속된 인사를 이솝우화에 나오는 〈고기를 물고 가던 개〉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타코 홍
자신만의 확고한 목표를 위해 물러서는 공격 전술과 다양한 경우의 수를 철저히 계산하는 치밀한 전략가형 축구 감독

기후위기와 차별혐오의 공통점
소수가 오염시키고 다수가 고통받는다.

옥수수
옥수수와 바나나가 만나 껍질이 바나나처럼 벗겨지는 옥수수를 만들었으면 싶다. 알갱이 껍질이 낀다. 옥수수 먹는 게 갈비 뜯는 거랑 비스무리하니 갈비맛 옥수수, 훈제오리맛 옥수수, 짚불장어맛 옥수수도 나왔으면 싶다. 오이맛, 군고구마맛, 망고맛, 오뎅육수맛, 매운떡볶이맛 등등등도 뒤따라 나오고.

모기
천둥소리에 깨지 않는 사람도 모기소리에는 깹디다. 사람은 참 사소합니다.

삶
내 손에 있는 스마트폰은 1969년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보다 16만 배나 더 뛰어나다는데, 나는 16만 년 전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처마
창을 열면 비가 오고 창을 닫으면 비가 그친다. 처마끝이 아쉽다.

폭염
정월대보름에 "내 더위 사가라"는 풍습이 허투루 생긴 게 아니었습니다.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에서 배우지 못합니다. 절멸할 후손들의 공동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타 죽을 줄 알았다"입니다.

대폭염
선풍기는 가까이 두고 에어컨은 더 가까이 둬라. 밖에서 만나자는 놈이 배신자다.

술
동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2천300년 된 술 마시기 참 좋은 날이다.

집도 N빵
공적마스크 5부제, 승용차 홀짝제는 강제하면서 1세대 1주택제는 왜 외면하시나요. 주택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라니까요. 집도 N빵하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러나 글렀다.

세월
내란 역적과 골프치는 세상인데 친일파 증조부쯤이야 세월이 우리 편이지 싶다.

다음 시대
휴먼, AI 다음은 로봇이 로봇을 출산하는 시대입니다. 놀라긴 아직 이릅니다.

트로이카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남배우 트로이카 시대입니다.

싸가지
"왼쪽 너무 안 챙겼다 더 품고 가야"라는 말은 틀렸다. 게다가 싸가지도 없다. "이제라도 왼쪽과 더불어 역적을 때려잡아야"라고 해야 했다. 꼬라지가 글렀다.

기병과 마법사, 여성이 바꾼 운명은 역사가 된다

기병과 마법사
역사책에 딱 한 줄로 기록되고 싶은 아버지가 있었다. 왕의 형으로 태어난 아버지 영유는 송곳이었다. 그는 주머니를 뚫고 나올 정도로 날카로운 송곳이었지만 그런 적은 없었다.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스스로 정한 운명이었다. 영윤해는 그런 아버지가 답답하고 싫었지만, 자기도 주머니에 갇혀 사는 송곳이고 칼날이고 창이었다. 한 줄보다 더 길게 기록되면 죽는 운명이었다.

칼끝을 돌려야 반역이 되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 있기만 해도 반역이 되는 사람이 있다. 윤해가 그렇다. 운명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구한 윤해를 북쪽으로 밀어냈다. 아비의 딸로 태어났다는 첫 번째 기록을 넘은 두 번째 기록이었다. 궁지에서 살아남은 윤해는 왕국 최북단으로 유배됐다. 변방의 초원에서 기병 달낙현을 만난 것도 운명이었다.

달낙현은 자기가 보낸 서신보다 먼저 도착하는 기병이다. 그는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그를 객사 안으로 들인 사람은 윤해가 처음이었다. 덕분에 돌웃집 바닥이 뜨끈뜨끈한 것도 난생 처음 알았다. 살아 있기만 해도 반역자인 윤해가 달낙현과 함께 야인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반역이었다. 십이 년 동안 성군이었다가 폭군이 된 숙부가 그렇게 정했다. 열 배가 넘는 토벌군이 도성을 나섰다. 윤해는 역당의 수괴 마녀가 됐다.

북방의 겨울 한파1는 자비가 없었다. 거센 바람에 눈이 수평으로 날렸고, 불을 피우면 불까지 얼어 있는 듯했다. 피를 흘리는 자는 피가 얼고, 물이 얼어 밥을 짓지 못했다. 눈송이는 화살 같았고, 그림자마저 꽁꽁 얼려 바스러뜨릴 것 같았다. 목을 치라는 명령마저 아래로 내려가다 얼어붙었다. 동장군이 매서워질수록 윤해가 마법을 부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윤해는 주머니를 뚫고 나온 송곳이 됐고, 칼날이 됐다. 윤해는 운명에서 해방되었다.

1021년마다 한 번씩 이 세상을 파괴할 어두운 존재가 나타났다. 윤해는 더 큰 싸움을 생각했다. 결전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윤해는 자기에게 주어진 새로운 싸움을 준비했다. 이 또한 운명이었다. 세상을 구할 예언자가 됐다. 멸문의 운명은 윤해를 이기지 못했다. 윤해는 역사책에 딱 한 줄로 남을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이었다. 지금은 스스로 비석에 역사를 새기는 송곳이 됐다.

기병과 마법사/배명훈/북하우스 20250527 388쪽 17,500원


  1. 겨울의 매서운 한파를 생생하고 절절하게 묘사한 부분은 단연 으뜸이다.
  2. 오탈자인 줄 알았으나 배명훈 작가님에게 물으니 줄바꿈이라고 알려줬다..
    76쪽 18행 '5백이다라고 하던데 → 5백이라고 하던데'로 읽었지만, '5백이 (줄바꿈) 다라고 하던데'이다.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 아인슈타인의 세계관

The World As I See It, 1956
  • 인간, 혹은 모든 유기체의 생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간단하게라도 답하려면 종교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자신의 생명과 뭇 피조물의 생명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지 불행하기만 한 게 아니라 생명을 누릴 자격도 없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20)
  • 나는 결코 안락함과 행복,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적이 없다. 그런 것들은 돼지에게나 어울릴 것이다. 내 삶에 빛이 되고, 힘들 때면 기꺼이 삶을 직면하도록 용기를 준 이상은 진선미였다. 예술이나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이들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동료들과 나눈 유대가 없었다면 삶은 내게 공허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재산, 외형상의 성공, 사치 따위를 이루고자 애쓰지만, 이러한 평범한 목표를 나는 늘 경멸했다. (23)
  • 인간의 삶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창의적이고 지각 있는 개인, 즉 개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고귀함과 숭고함을 창조하는 일은 개인의 몫이다. 소위 군중은 사고도 감정도 둔할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군중의 본성을 드러내는 최악의 사레인 군대가 생각난다. 나는 군사제도를 혐오한다. 군악대의 선율에 따라 열을 맞춰 행군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을 나는 경멸한다. 그런 사람에게 커다란 뇌가 주어진 것은 실수다. 그에게는 오로지 등뼈만 있으면 될 일이다. 역병과도 같은 이런 문명의 악습은 가능한 한 서둘러 폐지해야 한다. 명령에 따른 영웅주의, 무의미한 폭력,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터무니없는 악행들을 내가 얼마나 증오하는지! 내게 전쟁은 천박하고 경멸스러운 행위다. (25)
  •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자아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통찰을 그가 지녔는가, 그 해방감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32)
  • 오직 개인만이 사고할 수 있고, 그 결과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아니,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할 새로운 도덕규범을 세우기도 한다. 공동체의 자양분 없이 개인의 인격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창조적이면서 독립적인 사고와 판단력을 가진 개인이 없다면, 사회의 진보는 불가능하다. (34)
  • 산업과 기계의 발달로 인해 생존투쟁은 훨씬 치열해졌고, 그 결과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마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이것으로 현재 나타나는 여러 타락의 징후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의 발달은 공동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인이 부담할 노동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잘 짜인 노동의 분배가 더욱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적절한 분배가 있어야 개인이 물질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거기에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여가와 여력이 더해지면 자아 발전도 가능해진다. 그렇게 공동체는 다시 건강해질 것이고, 현재 사회가 안고 있는 병적인 징후들은 큰 꿈을 품고 날아오르던 인류의 성장통이었다고,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문명화에 따른 진통이었다고 미래의 역사가들이 기술하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도 생길 것이다. (36)
  • 세상의 어떤 부도 인류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인류 향상에 누구보다 헌신적인 사람 손에 들어갔다 해도 마찬가지다. 본보기가 되는 위대하고 순수한 인격만이 훌륭한 생각과 고귀한 행동을 낳는 밑거름이다. 돈에 끌리는 것은 오직 이기심이니 가진 자는 함부로 쓰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카네기처럼 돈 가방을 둘러멘 모세나 예수, 간디를 상상할 수 있는가? (55)
  •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식품류나 기타 상품을 이전보다 훨씬 짧은 시간의 작업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노동 분업과 생산품의 분배 문제가 훨씬 어렵게 되었습니다. 개인이 아무런 규제와 제지를 받지 않고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자유방임의 경제 논리로 이 문제를 적당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이제 접어야 합니다. 생산, 노동, 분배는 확실한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중한 생산력이 낭비되지 않고, 가난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야만의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97)
  • 나의 입장은 간단명료하다. 군비를 제한하는 협정만으로는 안전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 강제 중재는 집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협정에 참여한 모든 국가가 이를 보장해야 한다. 참여국은 평화를 어지럽히는 국가에 대한 경제·군사 제재에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병든 민족주의의 보루인 징병 제도를 없애기 위해 싸워야 한다. 특히,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국제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123)
  •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건전한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하고, 모든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임금은 소비재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높아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152)
  • 대대로 전해 오는 인류의 유산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게 하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 우리는 안다. 예전에는 소중한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 개인의 이기심을 어느 정도 버리는 걸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민족과 계급의 이기주의까지 극복해야 한다. 그런 경지에 이르러야만 전 인류의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155)
  • 선택할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시민의 정치적 자유, 관용, 평등이 법으로 보장되는 나라에서, 오로지 그곳에서만 살겠다. 정치적 자유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이며, 관용은 어떤 사람의 의견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158)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The World As I See It, 1956/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강승희 역/호메로스 20170405 212쪽 13,000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0314~19550418)이 쓴 기고문과 에세이, 편지를 모은 책입니다. "원로원 의원들은 모두 착하나 원로원은 사악한 짐승이다"라고 했습니다. "공동체는 개인보다 양심이나 책임감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개인이 가진 성향이 어떤 공개 선언보다 중요하다며 "올곧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명심하고 잘못된 길로 빠진다거나 분노에 휩싸이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의 첫 미국 방문을 앞두고 어떤 단체는 그를 "빨갱이"라고 규탄하며 입국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세상의 어떤 부도 인류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며 생산, 노동, 분배는 확실한 계획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발달은 공동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인이 부담할 노동이 줄어든다"며 분배를 강조했습니다.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건전한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하고, 모든 아이들에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임금은 소비재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높아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백여 년 전에 쓴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구글 블로그 댓글 날짜를 YYYY-MM-DD hh:mm 형식으로 만들기

구글 블로그(Blogspot, Blogger) 댓글 날짜(comment timestamp)를 ISO 8601 YYYY-MM-DD hh:mm(예: 2026-08-17 12:30) 형식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적용한 테마는 Contempo입니다.

  1. 테마〉맞춤설정〉백업
  2. 맞춤설정〉HTML 편집
  3. 댓글 작성 시간을 표시하는 <data:comment.timestamp/>를 찾아 다음과 같이 변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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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경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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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래 코드를 </body> 전에 붙여 넣고 저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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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정〉댓글 타임스탬프 형식을 시간이 설정된 표시(예: 8/17/2026 12:30 오후)로 선택3


  1. 표준 ISO 8601 데이터(data:comment.timestamp.iso8601)를 가상 속성(data-time)에 미리 저장하는 방식이라는데, 이 과정은 생략해도 됩니다.
  2. JavaScript 코드는 data:comment.timestamp를 구글 검색하며 AI 모드에 YYYY-MM-DD hh:mm 형식으로 나타나도록 수십 차례 물어보며 적용하다 얻어걸렸습니다.
  3. 포스트 날짜 형식을 YYYY-MM-DD 형식으로 바꾸려면 다음 글을 참조하세요.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감히 '밥을 먹는 자'라고 답하고자 한다. 불로 밥을 해 먹으면서 인간은 진화를 거듭해 왔다. 먹어야만 살아남는 숙명이야 짐승이나 사람 모두 매한가지이지만, 인간은 생존과 존엄, 그 모두를 갖추어 먹어야 하는 식사의 존재다. 먹이가 아닌 밥을 먹기 때문에 인간의 삶으로 나아온 것이며, 밥을 통해 사랑과 질투를 느끼고 협력과 경쟁을 배우며, 사람의 꼴을 갖추며 살아왔다. 그러니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밥 먹을 자격은 갖추고 사는지를 묻는 매서운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 질문 앞에서 서성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는 밥에 과연 인간성이 깃들어 있는지를 곱씹어 보면 끝내 미궁 속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자연 모두가 상처 받은 밥상을 무람없이 받아 들고 입만 흥겹고 배만 두둑해진 것은 아닐까. (7)
  • 식사를 갖추기 어려운 이들이 고립된 식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역량이다. (17)
  • 인간이란 실체를 정의하자면 살아오면서 먹은 음식의 총체이다. 음식은 오로지 물리적 맛과 영양, 칼로리의 총합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의 모든 음식에는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자연의 변천까지 망라되어 있고, 여기에 개인의 기억과 사연까지 깃들어 있다. 포도가 보통의 과일이 아니라 어느 한 여인과 그 가족들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그 무엇이었던 것처럼. 하여 오늘 우리의 입으로 쓸려 들어가는 지상의 모든 음식들이 무겁고 복잡하며 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4)
  • 다시 인간의 식사를 생각한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신체와 영혼의 칼로리를 채우는 것. 그것이 엄연한 식사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은 5천원 안짝으로 오로지 열량을 좇느라 허기진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편의점에나 가라 하고, 청년이 되어서는 돈이 모자라 스스로 편의점을 찾아가야 한다. (27)
  • 어쩌면 오늘도 학교급식 메뉴는 '사골 곰탕'이다. 누군가의 '고기와 뼈를 우려내는' 사골곰탕 말이다. 채식 급식 선택제. 그 뜻이 아무리 정당하고 옳더라도 고기 대신 사람을 갈아 넣는 일이어서야 되겠는가. (46)
  •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미끄러지듯 오늘도 쇼핑을 한다. 주문한 물건은 잘 도착하지만, 현관 앞에 택배 박스를 두고 가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차세대 택배 기사로 불리는 드론이 놓고 간 느낌이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냉동물류센터의 대형 화재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로켓배송을 하던 쿠팡맨이 계단에 쓰러져 목숨을 잃기도 한다. 온라인은 평화롭지만 실제의 오프라인 세계는 지옥일 때가 있다. 어젯밤 늦게 시킨 물품이 새벽녘 현관 앞에 놓여 있다면 사람이 다녀갔다는 뜻이다. 다만 그들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을 뿐이다. (95)
  • 한국에서 가장 혹독한 직업군은 자영업자들이다. 700만명 정도로 보지만, 부부가 함께 하거나 동료들과 창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들 전체의 생계가 걸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구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들은 오너가 아니라 실상은 스스로의 봉급을 만들어 내야 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자영업이 많은 나라의 특징은 공공 부문의 일자리가 취약하고 고용안정성이 아주 낮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영업은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너도나도 장사에 뛰어들어 생계 수준 이하의 수익을 내거나 만성 적자이다. (110)
  • 지난 1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겨우 국회를 통과했고 2022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원안에서 후퇴하여 결국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적용을 3년간 유예하는 데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이 법에 해당하지 않는다. 5인 미만의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노동조건이 열악해 다치고 죽는 일이 더 많건만, 이 중대 사안이 빠져 버렸다. 이 법이 제정되면 기업들이 망한다는 반발 때문이었다. 하나 이는 그간 사람 잡아 가며 기업을 운영했다는 자백과 다름 아니다. (134)
  • 소비자 물가 품목에는 농수축산물과 식음료, 그리고 공공요금과 각종 서비스 요금이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 농산물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토록 낮다며 '동네 바보' 취급하다가 왜 명절 때만 되면 17대 1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일진'이 되어 있을까? 아무리 올라 봐라. 배춧값이 무섭나? 애들 학원비가 무섭지. 돼지고기 값이 무섭나? 2년 만에 오른 전세비 6천만원이 나는 제일 무섭다. (168)
  • 음식에 대한 과도한 정보로 먹기도 전에 질려 버리는 세상이지만, 음식의 근간인 농지 문제는 내 삶과 멀기만 하다. 누가 농사를 짓든 그저 싸고 맛있고 양만 많았으면 좋겠다는 세상이다. 하지만 소작농이란 말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부재지주들에게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 농민이 절반 이상이다. 강남이나 분당처럼 논밭 밀어내고 언젠가는 한방이 터지길 기다리는 부재지주들에게 농업직불금도 흘러들어가는 판이다. 그런데 그나마 힘없는 경자유전의 원칙마저 싹둑 잘라 낸다면 우리의 밥은 어찌 될까. (207)
  • 농촌에서 농사만 지어서 먹고살기 힘들다. 오래전부터 '향토 축제'란 이름으로 축제를 부추긴 이유는 뭐라도 해 보란 뜻이었다. 나비도 길러서 날리고 산천어도 길러 얼음 강물에 풀 수밖에 없던 속사정이 풀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디에서든 또 잡고 먹고 할 것이다. (250)
  • 세월호의 추모공원은 안산 시내 화랑공원에 조성될 예정이다. 아직은 예정이어서 여러 변수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간을 납골당으로 만드는 일이라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뼈 한 조각 묻지 않는 납골당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테마파크라 이름 짓는 것만큼 졸렬하다. 죽음을 왜 치워 버리려 하는가. 죽음은 쓰레기가 아니다. 죽음이 죄인가. 죽음이 죄가 아니라, 무고한 죽음을 일으키고 진실을 덮어 버리는 자들이 죄인이다. 가해자의 여죄를 제대로 따져 묻지 않고 진실 속에 묻어 버린 결과가 지금도 반복되는 황망한 죽음들의 실체이다. 일터에서 배움터에서 죽은 이들을 애써 기억하며 애도를 보낸다. 부디 '고히 잠드소서'. (270)
  • '농자천하지대본' 같은 말들은 이명처럼 귀에서 뭉개지곤 했다. 내게는 그저 '농자천한자'로 들렸다. 농사는 천한 자들이 짓는 일이었다. '밥은 하늘'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러했나. 시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귀한 일은 비싼 급료를 받는 일이고, 헐값을 받는 일은 천한 일일뿐이다. 농업이 그렇고 배달 일이 그렇다. 귀한 일이었다면 자식에게 물려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공부를 해서 농사는 짓지 말고 살기를 간절히 바랐고, 나는 그 바람만큼은 충실하게 따랐다. (273)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정은정/한티재 20211018 280쪽 15,000원

저자는 "혹여 지나가다 누군가라도 이 책을 들춰 보다 세상의 모든 먹거리는 농촌과 사람이 촘촘히 엮여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합니다. "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 차갑고 서러운 타인의 밥상을 살펴보는 일"이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일 겁니다. "식사를 갖추기 어려운 이들이 고립된 식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역량"이라면 우리는 아직 멀었습니다. "사람이 맞느냐?"라며 죽비를 내리칩니다.

시인의 말 - 김혜순

ⓒ김혜순 시인

엄마, 이 시집은 읽지 마, 다 모래야.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김혜순/문학과지성사 20220418 274쪽 12,000원

잡초들은 다 자신이 잡초1이라고 생각한다. 잡초는 죽은 사람들의 육체가 제1차로 윤회된 생물이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 잡초가 되기 제일 쉽기 때문이다.1

엄마는 시인들보다 말을 잘한다.
우리가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죽음과 삶 중간에 있는 거라고 한다.
이 세상은 거대한 병원이라고 한다.2

엄마는 이제 테두리가 없고
내 그리움도 테두리가 없다3

한국어 모래의 어원은 물애
물을 거절한다는 의미

모래는 평생 몸을 비비지만 한 덩어리가 되지는 못합니다4

달에서도 보이는 오징어잡이 배의 밝은 빛을 바라보며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구를 돌지? 상담자 F와 내담자 H가 전율을 참고 있다.5

언어는 항상 왜 뒤에 올까?
시는 왜 그림자를 찍어서 쓸까?6

흑흑, 나는 시를 쓰는 짐승 흑흑, 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짐승이 있어7

결국 엄마는 나를 두 번 배신했다
첫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낳아서
두번째는 세상에 죽음을 두고 가버려서

(왜 신생아는 태어나서 새끼를 빼앗기고 온 어미 새처럼 울까?)8

내가 모래(구멍)만 말하자, 제일 먼저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났다. 그들은 말했다. 모래(구멍) 얘긴 듣고 싶지 않아. 존경하지 않는 선생님은 이메일을 보냈다. 다시는 모래(구멍) 얘기하지 마. 모래(구멍)는 혼자야, 모두 혼자야. 웅얼거리던 나는 답장을 보냈다. 모래(구멍) 얘기하지 않고는, 미치고 말 거예요.9

가끔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단어의 영지를. 사실 명사들의 영지가 넓은 것 같지만,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영지가 더 넓다. 그중에서도 부사들의 영지가 제일 넓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상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명사나 대명사에 달라붙지 않게 된 그들의 무한한 자유. 그들의 합종연횡. 내게서 떠난 이들도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의 모습으로 지금의 나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해본다.10


시인에게 봄은 죽음이 계절이다. "애도는 죽음보다 먼저 태어나" 꽃향기보다 "엄마를 데려가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명사들의 세상 같아 보이지만 부사들의 영지가 제일 넓다는 걸 엄마의 죽음으로 깨닫는다. 딸은 엄마 얘기하지 않고는 미칠것 같다. 엄마를 두 번 배신했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엄마 조심히 가 하고 죽은 엄마를 낳아서/두번째는 나만 남아서"


  1. 죽으면 미치게 되는 건가
  2. 체세포복제배아
  3. 불면의 망원경
  4. 포츠다머 플라츠
  5.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6. 잊힌 비행기
  7. 죽음의 고아
  8. 엄마란 무엇인가
  9. 모래능
  10. 뒤표지(시인의 글)

희망의 책 - 희망의 사도가 전하는 끝나지 않는 메시지

희망의 책 - 희망의 사도가 전하는 끝나지 않는 메시지
  • 희망은 종종 오해를 부른다. 사람들은 희망이 단순히 수동적이고 부질없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행동과 참여를 요하는 진짜 희망과는 정반대다. 지구의 절박한 상황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무력감과 절망 때문에 그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희망컨대(!) 이 책은 사람들의 행동이 제아무리 미약해 보일지라도 정말로 변화를 일으킬 힘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다. 수천 명이 실천하는 윤리적 행동과 노력이 쌓이면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 지구를 지키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믿는다면 행동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11)
  • 사람은 낙관주의자거나 낙관주의자가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네요. 그건 인생에 대한 경향이나 철학이에요. 낙관주의자로서는 그냥 '다 잘 될 거야'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요. '절대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비관주의자와는 정반대죠. 반면에 희망은 일이 잘 되게 만들 수 있다면 온갖 수고를 다 하려는 완강한 결단을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희망은 우리 일생의 행로를 바꿀 수 있어요. 물론 누군가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면 훨씬 더 희망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겠죠. 물이 절반 담긴 유리잔을 볼 때 그들은 절반이나 비었다고 여기기보다는 절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54)
  • 암울한 지구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제인이 품고 있는 희망은 희망의 네 가지 주요 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인간의 놀라운 지능, 자연의 회복 탄력성, 젊음의 힘,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이 그것이다. 제인이 이러한 지혜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끌어내기 위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66)
  • 내가 '지성적인(intelligent)'이라는 말이 아니라 '지능이 있는(intellectua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지성적인 동물이라면 하나밖에 없는 집을 파괴할 리가 없는데, 그게 바로 아주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해온 짓이니까요. 물론 몇몇 사람들은 대단히 탁월한 지능을 갖췄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슬기로운 인간'이라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불행히도 지금 세상엔 지혜가 충분하지 못해요. (78)
  • 무관심과 절망에 빠져들어 희망을 잃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죠. 제 아무리 작더라도 우리에겐 저마다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지구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사소한 윤리적인 행동이라도 수백 만 명이 모이면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것이 바로 내가 전 세계를 돌며 전하려는 메시지입니다. (121)
  • 그런 문제 해결이 젊은이들의 몫이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화가 치솟아요. 물론 우리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를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을 뒷받침하고, 격려하고, 힘을 실어 주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고 나도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일단 젊은이들에게 문제를 파악하고 행동에 돌입할 힘이 주어지면, 움직입니다. 음, 그들은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금도 세상을 바꾸고 있어요. (187)
  •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이 드러나는 경우는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울 때'와 '바로잡을 수 없는 잘못을 바로잡을 때' 특히 더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227)
  • 불교도들은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우리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동물로도 윤회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힌두교와 불교는 둘 다 카르마(karma, 업보)를 믿죠. 만일 당신이 불행으로 괴로워한다면 그건 이전 생에서 저지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라고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 존재가 여기, 이 행성에 와 있는 이유가 진정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딱 한 번뿐은 아닐 거라는 정도의 생각은 있습니다. 영원과 우리 인간의 짧디짧은 수명을 생각해 보면, 끔찍이도 불공평하잖아요! (308)
  • 저의 인생이 두 세계 대전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었던 것은 다소 기이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처음 맞닥뜨린 전쟁은 인류의 적인 히틀러의 나치에 맞선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아흔이 가까워지는 지금은 두 가지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현미경을 들이대야 하는 적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탐욕, 이기심입니다. 희망에 대한 저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이 작은 책에 기록된 대화를 읽으셨으니 여러분도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미래를 위한 희망이 있음을 깨달으셨을 겁니다. 우리 지구의 건강과 우리 사회와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모두 모여 힘을 합할 때만 가능합니다. 긴급하게 행동을 취해야 하며, 우리 각자가 맡은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해하셨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부디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믿어 주십시오. 여러분이 그것을 믿지 못한다면, 무관심과 절망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29)

희망의 책The Book of Hope, 2021/제인 구달Jane Goodall, 더글러스 에이브럼스Douglas Abrams, 게일 허드슨Gail Hudson/변용란 역/사이언스북스 20230707 360쪽 18,000원

제인 구달과 더글러스 에이브럼스가 희망에 대해 묻고 답했습니다. 인간의 놀라운 지능, 자연의 회복 탄력성, 젊음의 힘, 굴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력이 희망의 원천이라고 합니다. 선문답 같은 물음에 제인 구달은 그동안 경험한 일화를 바탕으로 희망을 얘기합니다.

무엇보다도 유달리 내가 자주 받는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까?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나는 진심을 다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그간 지구에 끼친 해악을 치유하기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의 창문이 아직은 우리에게 열려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창문은 닫히고 있다.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자연의 건강을 염려한다면, 우리는 함께 힘을 모아 행동에 옮겨야 한다. 바로 지금,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10)


덧. 오탈자
  1. 123쪽 12행 남민 캠프 → 난민 캠프
  2. 139쪽 15행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동안 → 뉴질랜드를 방문하는 동안
  3. 184쪽 10행 닭들은 낯 동안 → 닭들은 낮 동안

한여름

은유가 멈추고
직설이 기승이다
익어가는 인연들
연꽃이 우렁차다

계절은 바쁘고
매사가 퇴고다

얼어붙은 속헹 - 이주여성 노동자 이야기

얼어붙은 속헹 - 이주여성 노동자 이야기
  • 산재 지정 병원에서 만나는 이주 노동자들 가운데 특히 손가락을 잘린 경우가 많다. 주로 3D 업종에서 일하다 보니 손가락을 잘리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와 같은 원시적인 사고가 잦다. 지난 1970~80년대 생산직에서 일한 내국인 노동자들이 흔히 당한 산재 사고를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다. (21)
  • 지난 70~80년대에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야간노동이 흔했다. 밤새워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 시절 많은 여성 노동자가 일한 사업장에 대한 자료를 보면 밤샘 노동을 밥 먹듯이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밤샘 노동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다. 철야 노동하는 자리가 내국인에서 외국인으로 바뀐 것이다. 외국인 가운데서도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젊은이들이 그 자리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대략 130만 명 정도다. 그들은 주로 이른바 3D 업종에서 일하는데 노동하는 때가 야간인 경우가 많다. 물론 밤샘 노동은 농장보다는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35)
  • 농장주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조선 시대에 지주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 때 많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주 노동자를 노비로 보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주 노동자를 단지 말하는 동물처럼 여기기도 한다. 우리네 밥상에 인권이 얼마나 있는가? 우리가 매일 대하는 밥상은 인권이 있는 밥상인가? 이런 물음을 가져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53)
  • 이 농장 노동자들은 한 주당 6일 반을 일한다. 한 달에 이틀 이내로 쉬며 하루 보통 11시간씩 일한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일하는 시간이 더 길다. 6시에 일과가 끝난다고 해도 저녁에 비닐하우스를 관리하는 일이 계속 있다. 비닐하우스 온도를 관리하는 일이라든가 지하수를 돌본다든가 전기 시설을 점검하는 작업 등이 수시로 있다. 이 농장 노동자들의 한 해 노동시간은 연 3천 시간이 넘는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이다. 한국의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이 2,100시간 정도이고 서유럽 노동자 한 해 평균 노동시간이 1,300시간 정도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들의 노동시간은 참으로 살인적이다. 이주 노동자들을 말하는 동물로 보지 않는다면 결코 강요할 수 없는 노동이다. 고용주에게 절대 권한을 주는 제도 아래서 이주 노동자들은 이런 노동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 강제 출국을 각오하지 않는 한 거역할 수 없다. 이 고강도 노동을 만약 거부하면 당할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주 노동자 대다수는 그냥 굴종하며 지낸다. (73)
  • 지자체들은 전국적으로 이런 불법 가건물을 수십 년 동안 철거하지 않고 방치해 왔다. 고용노동부는 불법 가건물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구 알선해왔다. 요즘 코리아는 해외에 K팝이니 K 드라마니 K 문화니 하며 요란하게 선전하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 자랑 바로 뒤에는 인간의 기본권도 누릴 수 없는 이주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마구 들여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저 자본의 이윤 극대화만 노리고 마구 외국인 노동력을 들여오기에 혈안이 된 게 아닌가 한다. 국가가 자본의 심부름 노릇이나 하면서 말이다. (81)
  •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은근히 스며 있는 차별의식이 있다. 나는 이것을 경제 인종 차별주의라고 칭한다. 이는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거나 피부색이 더 검거나 어두운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의식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동하는 이주 노동자 대부분이 이 차별의식의 대상이 된다. 이 의식이 있는 사람이 직장에서 고용주가 되거나 조금이라도 우월한 지위에 있으면 그 차별의식은 강하게 언행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이 되거나 수당을 아주 쉽게 떼어먹은 짓을 아주 자연스럽게 저지르는 거다. (90)
  • 필리핀 출신 여성 노동자 럿(가명)을 만났다. 그녀는 월급명세서를 내게 보여주었다. 명세서를 보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이 낸 세금 항목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표시했다. 명세서에는 소득세와 주민세라는 글씨가 적혀있었다. 금액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주민세를 매달 꼬박꼬박 내는 주민인데 왜 자신에게는 재난 지원금을 주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녀의 주장에 이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취업비자를 갖고 입국한 사람으로서 한국에서 7년째 노동하며 세금을 냈다. 알고 보니 그 주민세 속에는 교육세도 포함되어 있었다. (101)
  • 이주 노동자들에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소득세, 주민세, 교육세 등 직접세와 간접세 등을 내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재난 지원금 주지 않는 건 국가 범죄라는 생각도 한다. 이주 노동자는 재난 지원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 한 해에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경제에 생산과 소비로 주는 효과가 74조가 넘는다. 그 이주 노동자들은 보통 5년~10년 동안 세금도 낸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이주 노동자들도 내국인과 같이 고통을 당한다. 우리 사회 먹이사슬의 맨 끄트머리에서 기초산업을 떠받들며 고통당한다. (102)
  • 폭염 특보가 내린 날, 오전이나 오후에 쉬는 시간 십 분도 안 주고 일을 강요해도 문제 제기조차 못 하는 이주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법과 제도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거나 항의하려면 강제 출국을 각오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소위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실제 불법체류자가 된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알선을 받아 채소농장으로 간 노동자가 살인적인 노동을 견디지 못해 쉬는 시간을 요구하다가 그냥 떠난 것이다. 사업주에게 쉬는 시간을 요구하고 일요일마다 휴일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업장을 임의로 떠났다. 합법적으로 입국한 이주 노동자는 고용주의 동의 없이 일터를 임의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그 노동자는 즉시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139)
  • 한편 내가 자주 들르는 경기 북부 채소농장들에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거기는 남자 노동자들보다 여성 노동자들이 더 많다. 주로 동남아에서 온 여성 노동자들이다. 캄보디아, 베트남, 태국, 네팔 등에서 온 20~30대 여성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일한다. 한 달에 보통 이틀 정도만 쉬며 하루 11시간 노동한다. 오이나 호박을 수확하는 여름철 한창 바쁠 때는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도 일한다. 농장 한 귀퉁이에 있는 짐승 우리 같은 숙소에 기거하고 세끼 밥을 간신히 챙겨 먹으며 그렇게 일한다. 그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최저임금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152)
  • 우리 사회는 제 필요에 따라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1990년대 초부터 그랬다. 이제까지는 그들을 단기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듯 했다. 5~10년 쓰고 버리듯 했다. 그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제는 정책을 바꾸었으면 한다. 포카(가명)처럼 성실하게 5년 이상 일하고 한국에 정착하고 싶은 의지와 준비가 된 사람들은 정착하도록 받아들여 더불어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초저출산 고령사가 된 마당에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62)
  • 매년 12월 18일은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이다. 공교롭게도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 이틀 뒤에 한파 속에 비닐하우스에서 이주 노동자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고장 난 건 난방 장치만이 아니다. 2004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고용허가제는 올해로 17년이 지났지만, 이주 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고장상태이고 이에 따라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3년 넘게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이주 노동자, 폭우로 수재민이 된 이주 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사망 이주 노동자 등 피해는 더 악화하고 있다. (174)
  • 대책위의 끈질긴 노력 끝에 결국 속행 사건은 산재 승인을 받았다. 2022년 5월, 그러니까 사고 난 지 1년 반 만에 근로복지공단(노동부)은 속헹 씨 사망사건에 대해 산재 승인을 했다. 승인한 사유에서 중요한 점은 그녀의 죽음과 그녀의 노동환경과의 연관성을 인정한 점이다. 특히 주거환경과의 인과성을 인정한 점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속헹 씨가 산재로 동사했음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그녀의 언니와 어머니 등 유가족은 산재 승인 사실을 전달받은 뒤 대책위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192)

얼어붙은 속헹/김달성/밥북 20231103 224쪽 16,000원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 노동자인 눈 속헹(Nuon Sokkheng, 31)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2020년 12월 20일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사망하기 이틀 전부터 난방시설이 가동되지 않았고, 농장주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동료 노동자들은 다른 농장 기숙사로 피했지만 속헹은 그냥 지내보기로 하고 머물렀다. 포천 지역은 이삼일 전부터 한파가 지속되고 있었다. 동료들이 발견했을 당시 속헹은 얼음 같은 방에 쓰러져 있었다. 매년 12월 18일은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이다. 공교롭게도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 이틀 뒤에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주 노동자는 한 달에 이틀 쉬며 하루에 11시간을 노동한다. 한국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이 2,100시간 정도인데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는 연 3,000시간이 넘는다. 고강도 노동을 하며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165만 원을 받는다. 농장주가 기숙사비로 25만 원을 잘라가고 남은 돈은 140만 원이다. 기숙사라 불리는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시설은 열악하다. 속헹이 기거하던 숙소는 검은 비닐하우스 안에 낡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불법 가건물이다. 긴 가건물을 칸막이로 나눠 작은 방을 만들었다. 방 안에는 주방과 세면장이 있다. 옆방의 화장실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춥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거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의식이 있다. 저자는 이를 경제 인종 차별주의라고 한다. 이런 차별 의식은 이주 노동자에게 더 강하게 표출된다. 월급을 현금으로 주며 근무시간에 관한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사업장을 임의로 떠나지 못하는 것을 악용하고 산재는커녕 재해로 인한 부상 치료도 변변하게 해주지 않는다. 국가는 이를 방치하거나 외면한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 지원금은 직접세와 간접세는 물론 건강보험료를 성실히 내는 이주 노동자들을 처음부터 고려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우리가 필요해서 불러들인 외국인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행태를 반복한다. K-○○을 자랑할 때 인간의 기본권도 누리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사람이 얼어 죽는 사회는 불법에 동조하는 야만의 사회이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최저임금과 최저인권을 지키며 사람답게 더불어 살자.


덧1. 오탈자
59쪽 20행 성격의 뿌리이자 → 성경의 뿌리이자

덧2. 지난 2026년 1월 29일 대법원은 속헹씨의 유족에게 한국 정부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속헹씨가 사망한 지 1866일만이다.

덧3. 20260325
3월 10일, 경기도 이천의 한 자갈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대형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23세 이주노동자 고(故) 응우옌 반 뚜안 씨는 24일 베트남 고향 땅에 묻혔다. 사측은 산재 사망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있다.

덧4. 20260720
일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를 먹던 기억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어느 이주노동자의 답변

다름과 틀림

차별과 혐오가 성장하면 틀림의 심각성은 사라지고 그러다 언젠가 다름이 된다. 다름이 틀렸다고 하면 틀림은 다름을 제거하거나 죽인다.

틀림은 소수화를 추구하고 다름은 다양성을 지향한다. 틀림은 틀림도 쪼개며 끊임없이 쳐낸다. 종국에는 극단적 1인으로 나타난다. 공포의 시작이다. 다름은 서로 다른 다름을 포용하며 상생의 폭을 넓힌다. 다름은 다양성을 늘리며 성장한다. 공감의 출발이다.

설령 다름이 투쟁해서 승리하더라도 틀림은 본전을 뽑을 만큼 뽑아서 손해는커녕 이득이다. 반면에 다름은 그 과정에서 더 큰 피해를 보았다. 틀림은 시대를 축냈고, 다름은 시간을 잃었다.

역사는 틀림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다름의 연속이다.